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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는 동사입니다

posted Sep 29, 2020

Bishop Hee-soo Jung at EFK in Bangkok.jpg

지난 7월 10-12일 방콕에서 열린 한반도포럼에서 정희수 감독(미 위스콘신연회)이 성서에 기초한 한반도 평화에 대하여 발표하고 있는 모습. 사진 제공,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평화는 동사입니다.

오늘 저는 매우 친숙한 성경 구절로 이 시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이사야 11장 6~9절의 말씀을 사람들은 곧잘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그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겁 없이 손을 넣으리라.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공동번역 개정판, 이하 동일)

우리는 이 성경 구절의 단어들을 폭력과 고통 그리고 상처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로 여깁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인들은 이 말씀을 하늘나라에 대한 묘사, 성공적인 삶을 위한 목표, 죽음 후에 받을 보상 등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먼 시간과 장소에 대한 비전이 아닌, 지금 이곳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이 땅에서의 우리 목적이 오늘날의 온 인류를 위한,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면요?

평화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하나님의 ‘샬람shalam (현대화되고 미국화된 말로는 샬롬shalom)’은 전쟁과 다툼 또는 불화의 부재가 아닌, 넉넉함과 온전함 그리고 성취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보살핌을 받고, 결핍이나 궁핍이 없는,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사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샬람’은 정의와 연민, 평등과 안전을 통해 약속되는 평화입니다.

그리스어에서 가장 흔히 사용되는 단어는 ‘이레이네이eiréné’이며 폭력과 전쟁의 부재보다 훨씬 더 큰 개념입니다. ‘이레이네이’의 문자적인 의미는 ‘함께하기’ 또는 ‘온전함을 이루기’입니다.

이레이네이’는 ‘샬람’과 마찬가지로 공포, 경쟁, 폭력이 필요 없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곳엔 우주적 온전함과 위로 및 안전이 있습니다. 누구도 기본적인 인간의 기본적 필요가 결핍되지 않고, 아무도 다른 사람의 희생 위에 이득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도 착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 성서를 보면 평화에 대한 비전은, 종종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의 입을 통해, 주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하시려는 일로 다가옵니다. 그렇게 주어진 평화의 약속은 약속이자 위협입니다.

이사야는 앞으로 다가올 화해와 보상 및 회복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평화는 궁극적인 목표로 표현되고, 더 나아가 이사야 60:17에서는 인격화되기까지 합니다.

“내가 놋쇠 대신 금을 가져오며, 철 대신 은을 가져오며, 나무 대신 놋쇠를 가져오며, 돌 대신 철을 가져오겠다. 내가 평화를 너의 감독자로 세우며, 공의를 너의 지배자로 세우겠다."

그와 같은 평화의 비전은 이상주의적이고 단순하여, 현실 부정으로 간주되고 무시되기 쉽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평화로운 나라에 대한 비전은 반문화적이며 이상주의적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현실을 호도하거나 터무니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화로운 나라로의 비전이 내포한 결점은 비전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 그것을 행하실 것이라고 그일을 하나님께 미루는 생각입니다.

예레미야서 8장 8-9절과 11-12절(개역 개정)의 회복된 평화의 비전에 대한 말씀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는 평화를 외치고, 평화를 선포하고, 평화를 장려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은 평화를 부정하고 파괴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평화의 말씀과 평화의 행동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단순히 추상화된 하나의 개념으로 취급할 때,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주님의 말씀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로운 나라라는 예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동시에 그것이 이상주의적이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불평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의도치 않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부주의하게 상처를 가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보면, 유대인과 기독교인 그리고 이슬람인에게 평화는 하나의 개념이나 이상이 아닌,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특징입니다. 이 3대 유일신 종교는 평화를 핵심 가치이자 실천해야 할 사항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우연히 생겨나는 일이 아니라, 설계와 의지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우리는 평화를 바라는 바를 표현하거나, 희망하는 바를 나타내는 명사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의 성서와 신학을 통해 보면, 평화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와 현실로 인도하는 일련의 행동과 과정, 즉 동사입니다.

회복과 보상, 화해와 정의 그리고 평등은 우리가 전력투구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평화는 어렵고도 중요한 작업입니다.

구약과 신약 성서 전체를 통해서 본 평화의 사역은 평화의 기초를 다지고, 건설하며, 유지하는 세 가지 핵심 기능을 필요로 합니다. 이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고유의 기술적 조합이며 기능입니다.

저는 평화의 필수 요소들을 집을 짓는 일에 비유하고자 합니다. 평화의 기초 다지기, 평화의 구조물 세우기 그리고 지속적인 관리와 청지기의 역할을 하는 평화 유지가 바로 그것들입니다.

평화는 멀리 떨어진 목표가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야 할 환경과 현실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태복음 5장 9절,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다.’라는 말씀을 순수하게 예수님의 가르침과 축복으로 여겼다면, 우리의 세계와 교회는 정말로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존재 목적과 사역을 ‘평화의 기초 다지기’로 이해했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우리가 바울처럼 우리의 믿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분열의 담을 무너뜨리고, 우리를 갈라놓는 적대감을 파괴하고, 평화의 마음과 정신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다고 이해한다면, 우리는 매우 다른 선택을 하고 근본적으로 다른 행동을 할 것입니다.   

분쟁 해결과 중재 그리고 갈등 조정은 사업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행들과 그들이 근거로 삼는 이론들이 필수적이고 중요하지만, 그것들은 평화의 기초 다지기의 초기 도구일 뿐입니다.

평화의 기초 다지기는 우리의 생각과 말과 실천에서 진정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문화와 가치 및 세계관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가 정상적이라고 하는 경쟁, 권력 투쟁, 통제 및 특권 등은 평화를 매우 싫어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건설하기 전에 우리는 기존의 것을 깨부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려운 작업이며,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평화의 기초 다지기는 기존의 것들을 해체한 다음에야 비로소 건강하게 재건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종말은 이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시무시한 인종적 편견, 압제자의 특권 의식과 독점권, 경제적 불평등은 당연시되었고, 권력자들에 의해 합법적인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많은 사람은 인종차별정책이 문화 사회 현실에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에, 이를 종식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꼈습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인식과 편견 그리고 경향 해체의 필요성을 느낄 때까지 진정한 변화는 시작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행동과 믿음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자, 건강하고 생산적이며 치유의 행동으로 기존의 것들을 대체할 공간이 생겨났습니다.

평화 건설은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한 태도와 헌신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바울이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 서술한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라는 짧은 목록을 기꺼이 선택하고 구체화합니다.  거기에 자비와 정의와 연민에 대한 헌신을 추가하면, 우리는 평화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도구와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양한 변혁과 지속적인 과정을 거치면서, 평화는 끊임없는 책임 의식과 헌신 그리고 참여를 확대 재생산을 요구합니다.

평화의 기초 다지기는 변화의 필요를 깨닫고 수용하는 소수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평화 건설은 평화로운 삶을 위한 구조와 실천 그리고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함께 일할 재능 있고, 숙련되고, 헌신적인, 더욱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요구합니다.

평화 유지는 새로운 현실을 유지하고자 하는 광범위하고 매우 보편적인 수용과 참여를 요구합니다.

요한복음 14:25-27에서 예수님은 평화에 관한 훌륭하고 설득력 있는 말씀을 전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너희에게 이것들을 말하였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고,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그 말씀에는 위로와 배려의 약속 너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해야 할 기본적인 임무와 사명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하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주시면, 우리는 이 성령의 열매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평화의 기초를 다지고, 건설하고, 유지하라는 섬세한 사명입니다.

평화의 사역에 수동적인 구경꾼이 된다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입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는 평화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정부와 군사 지도자들에게 넘겼습니다. 우리는 평화란 군사력과 전쟁 기계와 고가의 방어 무기를 통해서만 ‘쟁취’되는 것이라는 개념에 굴복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화가 성육신(incarnational)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성령의 형태로 내어주신 ‘샬람’과 ‘이레이네이’의 평화가 되어야 합니다.

한반도의 현 상황을 살펴보면 평화의 기초를 다지고(peace-making), 평화를 건설하고, 잠재적인 평화 유지 등의 사역을 하기에 매우 적합합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과 남북한 지도자들의 만남을 전 세계가 희망찬 감동을 가지고 지켜봤습니다.

현재까지, 구체적인 행동으로 연결된 것은 거의 없지만, 그들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는, 통일과 회복이 가능한지를 의문시하는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북미 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현장을목격했습니다.  

평화 기초 다지기의 선제 작업은 일반적으로 의식을 고양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대안적인 미래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 기초 작업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치와 군사에 관련된 상층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한 평화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기도로 시작하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평화를 위한 기도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깨닫기 위해 진지하게 기도할 때, 우리는 평화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평화를 위해 간절히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평화를 우리들 일상생활의 중심 가치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평화는 크고 작은 방식으로 우리 삶 속에서 실현됩니다. 따라서, 우리 마음과 정신에 평화를 느끼고 경험하지 못한다면 평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가족이나 이웃과 평화롭게 살 수 없다면, 어떻게 우리가 낯선 사람들과 심지어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 수 있겠습니까? 평화는 개인과 신앙 공동체의 영성 한가운데에서 시작됩니다.

모두를 위한 평화의 기초 다지기 두 번째 필수 요소는 교육입니다.

평화를 배우는 것은 평화 실현을 위한 기초입니다. 우리를 평화로 인도하는 가치관, 신념 및 실천사항은 무엇일까요? 건강한 관계를 이루기 위한 핵심 요소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공손함, 존경심, 인정, 관심 그리고 다른 사람을 향한 긍정적인 고려일까요? 분쟁 해결, 경제적 정의, 공정한 무역에 기여하는 요소와 힘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우리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특권 의식에서 공익을 향한 자비로운 사고방식으로 이동하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까요?

모든 시기와 문화에서, 자유 사상가와 철학자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이러한 개념에 관여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고, 이러한 개념과 실천을 일상 속에 강화하는 것이 우리를 평화의 기초 다지기와 평화 건설 및 평화 유지를 위한 사역에 집중하게 합니다.   

다음 필수 요소는 전도입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평화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모두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보훈 설교와 누가복음 6장 평지 설교의 공통된 핵심 개념은 평화와 정의의 복음 선포입니다.

먼 곳에서 먼 훗날 다가올 평화의 비전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은 현시점에서 평화를 이루어 나갈 생각과 행동 및 실천에 대한 우리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권력, 힘, 정복, 군사적 우위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평화의 삶을 살도록 교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화를 위한 무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평화를 위한 도구’만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평화는 위협, 강압, 강요 또는 폭력을 통해 실현될 수 없습니다. 한 그룹이 다른 그룹에 평화를 받아들이게 강요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뜻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평화의 기초 다지기에 참여하는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은 적극적인 참여입니다.

저는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단체들 사이에 다리 놓는 일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사적으로 말하곤 합니다. 저는 타종교와의 대화, 교회일치 운동에 다리를 놓기 위해 노력하고, 불의에 항의하는 사람들과 동행합니다. 또한, 일치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평화 활동을 지지하며 불의에 도전하는 편지를 정치 지도자들에게 보냅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화의 비전을 펼치기 위해 저의 능력과 교육, 재능과 영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을 찾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일을 해야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어렵고도 중대한 과정과 새로운 관계를 위한 인내와 성숙한 대화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를 위해서 많은 희생적 리더쉽이 요구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평화는 우연히 얻어지지 않습니다.

평화는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건설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유지되어야 합니다. 거기에는 항상 비용이 듭니다. 참되고 지속적인 평화는 값싼 것이 아니며, 다른 한 편의 희생 위에 군림하지 않습니다.

평화는 경멸, 두려움, 의심, 은밀함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화는 이 땅에 세워진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우리 자신의 뜻보다 우선시하고, 모든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비전을 추구하기 위해, 이 세상 모든 의제를 미루어 놓으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고귀한 사역으로,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사역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하나님의 심오한 진리를 맡은 청지기’(고린도전서 4:1)이며, 평화는 가장 축복받은 신비 중 하나인 것을 세상에 증거하는 일입니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요 14:27)"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십니다.

평화로운 나라는 우리가 경험한 실체는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우리의 삶이요, 세계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평화의 기초를 다지고, 건설하며, 유지하는 일에 다 함께 노력합시다.

"나의 거룩한 산 어디를 가나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사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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