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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한 백정, 예수를 만나다 교회로부터 신분질서 타파·인권운동 시작

posted Feb 12, 2017

국민일보 [한국기독역사기행]

천한 백정, 예수를 만나다

교회로부터 신분질서 타파·인권운동 시작

 

서울 종로구 인사동 승동교회(옛 곤당골교회)와 주변 모습. 근대식 적조 예배당과 한옥 교회 부속 건물(주차 차량 쪽)로 구성돼 있다. 교회 초기 백정 출신이 많아 ‘백정교회’로도 불렸다. 강민석 선임기자


주일이던 지난 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1가 롯데호텔 앞. 관광버스가 중국인 관광객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인근 백화점을 향해 종종걸음을 했다. 길가 인도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표지석 하나가 있었다. 옛날 ‘고운담골’으로 불렸다는 유래가 적힌 표지석이다. 고운담골이 변음돼 ‘곤당골’이라고도 불렸다.

1893년 서울에서 새문안교회에 이은 두 번째 장로교회가 시작됐다. 이름하여 곤당골교회(서울 승동교회 전신)였다. 지금의 관철동과 종로·을지로 1~2가 일대가 곤당골이었다. 일제강점기엔 경성부 미동이라고도 했다.

천한 백정, 곤당골교회 나가다 

한국교회사에 있어 이 곤당골교회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신분질서 타파와 인권운동의 시작이 이 교회로부터 비롯됐기 때문이다. 조선은 양반 중인 상인 천인 네 계급의 신분질서 사회였다. 10%에 불과한 양반 계급에 속하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받았다. 이 가운데 기생 무당 광대 포졸 갖바치 고리장 백정은 소위 ‘7 천인(賤人)’으로 취급됐다. 특히 백정은 인도 카스트계급제도의 가장 아랫 계급인 불가촉천민과 다를 바 없었다. 이름조차 가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성리학적 신분질서를 무너뜨리는 복음이 조선 땅에 미쳤다. 남자와 여자가, 양반과 상놈이 뒤섞여 교제를 하고 다 같이 하나님 백성임을 고백한 뒤 만왕의 왕 예수를 따랐다. 봉건적 질서를 사수하려는 수구세력에겐 대역이 아닐 수 없었다. 곤당골교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백정도 하나님 백성으로 인정하고 축복했다. 조선의 종교개혁인 셈이다. 

 

사무엘 무어 선교사(왼쪽)와 그 가족. 조선 선교 헌신과정에서 흩어진 후손을 서울 동막교회가 수소문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곤당골교회에 대해서는 한국 초대 선교사 빈톤의 ‘코리안 레포지토리(1895년 10월호)’와 해리 로버트 박사의 ‘미국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1884~1934)’에 1893년 기술하고 있다. 곤당골교회의 시작은 ‘백정 전도의 개척자’ ‘백정 해방운동의 지도자’로 불리는 사무엘 무어(1846~1906) 선교사였다.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한 무어는 46세 늦은 나이에 아내와 함께 입국했다. 그 무렵 선교사들이 정동 미국 공사관을 중심으로 모여 살았으나 무어는 백성 속에 깊숙이 들어가 선교하겠다며 민가에서 살며 조선말을 배웠다. 알렌, 언더우드 선교사 등이 안전지역 내에서 양반 등 상류층 전도를 시작으로 하방을 이어갈 때 그는 철저히 현지화 선교로 임했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 상권’은 이에 대해 ‘그때 선교사 모삼열(무어)이 경성 미동에 거주하면서 아직 방언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매일 신도와 함께 시가 전도를 하니, 당시 함께 다닌 조사는 김영옥, 천광실이고…모 목사는 신덕과 자선이 가득하여…믿든지 안 믿는지 상관없이 모두들 그를 어진 사람이라 칭찬하고 그의 집은 인의예지가 있는 집이라 일컬었다’고 기록했다. 

무어는 당시 원고 없이 한국말로 설교하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초가에 살며 쌀밥과 김치로 식사하고, 상인 및 천인과 어울렸기 때문에 언어 향상이 빨랐다. 또 수 주 만에 식모를 전도하고 매일 20~30명씩 평민을 접촉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 첫 조직교회가 곤당골교회였다. 영국 출신 감리교 목사이자 종교신학자인 제임스 헌틀리 자료에 따르면 ‘창설 교인은 16명이었고 첫 해에 43명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고 했다.

무어는 조선 최초의 근대식 병원 제중원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책임자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와 협력했다. 

1894년 미동 권역 관자골(현 관철동)에 사는 박가라는 백정이 장티푸스에 걸려 사경을 헤맸다. 무당에게 굿을 청했으나 효험이 없었다. 그 무렵 박가의 예닐곱살 된 아들 봉주리가 곤당골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봉주리는 무어 목사에게 울며 호소했고, 무어 목사는 심방 뒤 에비슨에게 알려 목숨을 살렸다. 그 이름도 없던 백정 박가가 훗날 기독인권운동가 박성춘(1862~1933)이고 아들 봉주리는 한국인 첫 양의 박서양(1887~1940)이다.

 

1960년대 서울 마포 동막교회. 사무엘 무어 선교사가 세웠다.


병고침을 받은 박성춘은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무어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고종의 시의였을 정도로 고귀한 신분이던 에비슨이 자신처럼 천민의 병을 고쳐주고, 지체 높은 서양 선교사 무어가 낮고 낮은 자신을 사랑과 긍휼로 대하자 감격했던 것이다. 박성춘은 요나의 아들 시몬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고 제자가 됐듯 무어의 제자가 되어 백정 선교에 앞장섰다. 관자골 백정을 비롯해 수원 평택 양주 포천 등의 백정에게 복음을 전했다. 곤당골교회는 부흥했다. 

한데 문제가 생겼다. 일반 교인이 백정과는 도저히 예배를 함께 할 수 없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무어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찌 백정이라고 하대하려는가”라고 나무랐다. 무어는 앞 뒤 안 가리고 불상을 깨뜨릴 정도로 보수 복음주의자였다. 그러자 그들은 타협안으로 백정들을 예배석 뒷자리로 앉혀 구별해 준다면 출석할 수 있다고 버텼다. 무어는 거부했다. 그러자 그들은 따로 회중을 만들었다. 홍문삿골교회다. 지금의 광교 신한은행 금융센터(전 조흥은행 본점) 지점이었다. 

무어는 그럼에도 개의치 않았다. 예수의 사랑이 인종 대륙 종파 지식 직업 등과 무관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를 외치며 곤당골교회를 베이스캠프로 삼아 도성 권역과 연안 선교에 집중했다. 마포나루에서 ‘기쁜소식호’를 타고 황해도 연안을 오갔다.

1898년 홍문삿골교회가 화재로 전소됐다. 그들은 회개하고 곤당골교회와 합병 후 구리개(현 롯데백화점 건너편)에 회당을 마련했다. 당시 108명의 교인이 있었고 그 중 백정 출신이 30명이었다. 한편 박성춘은 무어의 권유에 힘입어 백정 해방을 위해 진력했다. 그는 1898년 대한제국 내부아문에 서울 관자골 백정들의 참혹한 형편을 탄원했다. 경남 진주 형평사운동(1923년)도 이런 영향을 받았다. 
한편 곤당골교회는 1904년 인사동 승동교회로 바꾸고 새출발했다. 박가 박성춘은 장로가 됐다.

 

1904년 무렵의 승동교회. 장로교 두 번째 설립 교회다.


미북장로교선교회 본부의 1906년 통계에 따르면 무어는 1900년까지 25개 예배 처소를 세웠고, 그 교인이 850명이었다고 한다.  

1906년 기준 북장로교선교회의 조선 선교 실적 중 무어가 세운 집회 장소가 17%, 총 세례교인의 13%, 총 교인의 10%, 헌금 총액의 10%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어의 현장에서 만난 ‘탄핵 찬반’  

무어를 찾는 여행은 옛 서소문터(현 jtbc 앞)에서부터 시작됐다. 무어가 선교여행을 떠날 때 서소문을 통해 만리재로 나가 마포나루에 닿았기 때문이다. 그는 도성 밖 민중을 위해 마포 동막교회, 신촌 대현교회, 용산교회 등을 세웠다. 

동막교회는 1900년 마포 도화동 초가 7칸 집에서 시작됐다. 독을 짓는 이들이 많이 사는 독막의 변음이 동막이다. 지금의 동막교회는 1906년 서울 마포구 대흥동 운현궁 소유터에 자리했다.

 

지난주일 서울 대한문 앞. 19세기 말 신분 갈등으로 시위가 들끓던 곳이다.


2017년 2월. 서소문터에서 승동교회까지 이르는 구간은 한국사회 민낯을 보여주고 있었다. jtbc 앞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보도에 항의하는 이들이 인도에 텐트 설치하고 시위 중이었다. 탄핵 반대 태극기 시위는 덕수궁 대한문 앞, 시청 앞 서울광장에도 펼쳐져 있었다. 광화문광장엔 세월호 참사 규명 집회 시설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또 서울광장에는 탄핵반대 시위대와 달리 동성애대책을 촉구하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1898년 10월. 이상재 등 독립협회 지도자 구속 등에 항의해 종로에서 민중대회가 열렸다. 그들은 국정개혁을 촉구했다. 그때 헌의육조를 채택해 상정했는데 이 민중대회 첫 개막연설자가 박성춘이었다.
기독교사회운동가 오리 전택부(1915~2008) 선생은 “오늘날 소위 민중신학자들은 다른 나라 해방신학은 곧잘 알면서 우리나라 민중신학의 뿌리를 통 모르고 있다”며 무어 목사와 곤당골교회 이야기를 강조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인권·신분 싸움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도 광장에서 다른 형태로 계속되고 있다. 자유를 위한 싸움일 것이다. 그러나 적을 만드는 싸움이다. 하지만 성서가 말하는 자유는 다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 


■ 무어 선교사가 1900년 세운 서울 서남지역 모교회 동막교회 곽재욱 목사의 ‘기쁜소식’
“교회 개척기 만화로 소개” 

 

곽재욱 목사

“‘한 손에는 성경, 다른 한 손에는 신문.’ 이 말은 현대신학의 교부라고 일컫는 칼 바르트가 남긴 금언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 읽기에 미숙합니다. 세상 속에 복음을 전하려면 이슈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복음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다(多)미디어시대 효과적인 도구인 만화를 활용했어요.”
 
서울 대흥동 동막교회 곽재욱(사진) 목사가 한 권의 만화 ‘기쁜소식’을 내밀었다.
 
무어 선교사가 1900년 세운 서울 서남지역 모교회 동막교회 1000여명의 교인들은 자부심이 대단하다. 한글을 깨친 아이부터 원로 교인들까지 ‘기쁜소식’을 통해 무어 선교사와 그 제자 천광실 조사의 교회 개척기를 쉽게 배우기 때문이다. 만화에선 마치 복합형 가상현실(AR)을 보듯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도성과 마포의 복음 전파가 눈앞에 펼쳐진다. 

“수천부를 제작해 전도용으로 씁니다. 특히 어린이 및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이죠. ‘이렇게 훌륭한 분들이 우리 교회를 세우셨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무어 선교사님에게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곽 목사는 무어가 졸업한 매코믹신학교와 그를 파송한 교회를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또 역사교회에 걸맞게 고딕양식의 낮은 교회 건축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예배당을 지향했다. 

“무어 선교사의 메시지는 근본을 해치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우리끼리 믿는 예수가 아니고 균형과 조화를 통해 세상 사람과 같이 믿는 예수가 되도록 ‘성경과 신문’을 들어야죠.”  

국민일보      글=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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