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가족들에게 아버지의 모습은 과연 어떤 존재일까?
먼저 아버지란 사전적 의미는 그저 남성으로서 자녀를 둔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지칭하는 말로 너무나 간단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아버지란 힘들고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며 뛰는 30대의 아버지들, 정말 의욕과 미래가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40 중만이 되면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명퇴’준비이다. 일명 ‘명퇴’의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가정에 돌아오면 늠름하고 믿음직스런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50대에서 명퇴가 현실화 되면서 독립해 자영업으로 전환하는 이들도 많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은 어느덧 중. 고등학생이 되어버리고 빠른 이들은 대학진학을 이미 해 버렸다. 60대의 갈 곳이 없어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거리를 방황하게 하지만, 현대 사회는 60대는 환갑잔치는커녕 아직 젊은 나이로 취급, 60대의 자신도 물론이거니와 실버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실버는 일을 할 수도 없으며 일하면 오히려 젊은이들의 눈총을 받는다. 실직자가 많은 현실에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로서 70이 되어야 그나마 젊은 노인취급을 받는 오늘날은 80대가 평균 수명이라고 한다.
결국 5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을 방황하고 거리로 몰아낸 사회, 가정은 어떠할까,,,
자녀를 낳고, 그리고 돌보면서 자녀들은 곧 자기의 분신처럼 생각하며 모든 정성을 기울였건만 정작 자녀들은 연령별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5세 이전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버지이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6-7세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로 인식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8세 이상으로 접어들면서, 아빠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아, 그리고 학교 선생님 말이 더 맞는 말씀을 하신다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조금더 성장하여 14세가 되면 서서히 ‘세대차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20세가 넘어가면 기성세대는 이제 지났다고 인식하며 점차 아버지는 자녀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들을 생각해 보면 필자도 이미 과정을 겪었거나 겪는 중의 내용도 분명히 있다.
이제 자녀가 30세가 넘으면 아버지의 의견을 무시는 하지 않지만 일리는 있다고 여겨진다. 40대가 되면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다가 50대가 되면 과연 아버지는 훌륭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자녀도 결국 자신의 자녀와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으리라,, 60이 넘은 자녀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하는 말이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조언을 들었을 것인데……”라고 말한다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라고 한다.
6월 19일은 아버지의 날로 지키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일찌감치 명퇴 당하고 갈 곳 없는 아버지들, 그리고 집안에서는 자녀들에게 세대차이와 같은 이유로 잔소리 꾼 아버지로 사춘기 자녀들과 대화가 단절된 그림자 아버지……
하루 단 한번 저녁식사를 하며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도, 바쁘다고 얼굴보기 힘든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생일만 되면 식당에서 외식을 하며 함께 해 보려 하지만 더 이상 식당에는 관심은 없고 차라리 돈으로 주지…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아버지는 돈으로 주면 밖으로 나갈 것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시큰둥한 아이들을 보며 함께 식사를 하지만 불편해 하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마음 한 구석에 쌓이는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아버지가 정작 생일이 되어도 자녀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럼에도 황소처럼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 나아가려는 아버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의 아버지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요즈음의 청소년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사모곡이란 시조가 있다.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아마도 386세대의 사람들이 과거 고교시절 때 고전이란 과목에서 배웠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어머니의 사랑만 낫처럼 날카로울 정도로 깊고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같이 무딜까?
아버지의 사랑은 비롯 호미 같을 지라도 깊고 넓은 사랑은 그 어머니의 사랑보다 은은하고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자녀들이여!
부모와 대화하는 따듯한 한 마디의 말, daddy 사랑해요~ 한마디 해 보자.
이 말은 생일날 값비싼 넥타이 선물 보다, 가슴에 꽂아준 한 송이의 꽃보다 더 기분 좋고 향기로울 것이다.
만약 아버지와 서먹했던 사이가 되었다면, “아버지 오늘 우리 함께 저녁 먹으러 가요” 라고 한마디 전해 보자.
아마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기뻐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대화가 통할 것이니까,
왜냐하면, 자녀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좋으니까,
왜냐하면, 가장 가까이서 자기 분신과도 같은 자녀들을 볼 수 있으니까,,,
바로 흑백사진과 같았던 그림자의 아버지는 다시 컬러사진처럼 활발하게 바로 당신 앞에서 웃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 1~4)
할렐루야!
먼저 아버지란 사전적 의미는 그저 남성으로서 자녀를 둔 자녀와의 관계에 있어서 지칭하는 말로 너무나 간단하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보면 아버지란 힘들고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가정을 이루고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일하며 뛰는 30대의 아버지들, 정말 의욕과 미래가 보이는 듯 하다. 그러나 40 중만이 되면 서서히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명퇴’준비이다. 일명 ‘명퇴’의 불안에 휩싸이기 시작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가정에 돌아오면 늠름하고 믿음직스런 아버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50대에서 명퇴가 현실화 되면서 독립해 자영업으로 전환하는 이들도 많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은 어느덧 중. 고등학생이 되어버리고 빠른 이들은 대학진학을 이미 해 버렸다. 60대의 갈 곳이 없어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거리를 방황하게 하지만, 현대 사회는 60대는 환갑잔치는커녕 아직 젊은 나이로 취급, 60대의 자신도 물론이거니와 실버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실버는 일을 할 수도 없으며 일하면 오히려 젊은이들의 눈총을 받는다. 실직자가 많은 현실에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로서 70이 되어야 그나마 젊은 노인취급을 받는 오늘날은 80대가 평균 수명이라고 한다.
결국 50대에서 80대에 이르기까지 무려 30년을 방황하고 거리로 몰아낸 사회, 가정은 어떠할까,,,
자녀를 낳고, 그리고 돌보면서 자녀들은 곧 자기의 분신처럼 생각하며 모든 정성을 기울였건만 정작 자녀들은 연령별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5세 이전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버지이다.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6-7세의 아이들은 아버지는 모르는 것이 없는 만물박사로 인식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8세 이상으로 접어들면서, 아빠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아, 그리고 학교 선생님 말이 더 맞는 말씀을 하신다고 인식하기 시작한다.
조금더 성장하여 14세가 되면 서서히 ‘세대차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20세가 넘어가면 기성세대는 이제 지났다고 인식하며 점차 아버지는 자녀로부터 소외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들을 생각해 보면 필자도 이미 과정을 겪었거나 겪는 중의 내용도 분명히 있다.
이제 자녀가 30세가 넘으면 아버지의 의견을 무시는 하지 않지만 일리는 있다고 여겨진다. 40대가 되면 아버지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생각을 하다가 50대가 되면 과연 아버지는 훌륭했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 자녀도 결국 자신의 자녀와 똑같은 과정을 겪고 있으리라,, 60이 넘은 자녀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하는 말이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조언을 들었을 것인데……”라고 말한다 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라고 한다.
6월 19일은 아버지의 날로 지키고 있다.
사회적으로는 일찌감치 명퇴 당하고 갈 곳 없는 아버지들, 그리고 집안에서는 자녀들에게 세대차이와 같은 이유로 잔소리 꾼 아버지로 사춘기 자녀들과 대화가 단절된 그림자 아버지……
하루 단 한번 저녁식사를 하며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도, 바쁘다고 얼굴보기 힘든 자녀들과 함께 살아가는 아버지는 어린 시절의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생일만 되면 식당에서 외식을 하며 함께 해 보려 하지만 더 이상 식당에는 관심은 없고 차라리 돈으로 주지… 하는 마음이다.
그러나 자녀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아버지는 돈으로 주면 밖으로 나갈 것을 알기에 아무 말 없이 시큰둥한 아이들을 보며 함께 식사를 하지만 불편해 하고 마음은 다른 곳에 가있는 자녀들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마음 한 구석에 쌓이는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아버지가 정작 생일이 되어도 자녀들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럼에도 황소처럼 일을 하며 가정을 꾸려 나아가려는 아버지는 그림자와 같은 존재의 아버지가 아닐까…
이것이 바로 요즈음의 청소년 자녀를 둔 아버지들의 모습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오는 사모곡이란 시조가 있다.
호미도 날이 있지마는
낫처럼 들을 까닭이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나를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더 말씀하지 마시오 사람들이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도다
아마도 386세대의 사람들이 과거 고교시절 때 고전이란 과목에서 배웠을 것이다. 과연 이렇게 어머니의 사랑만 낫처럼 날카로울 정도로 깊고 아버지의 사랑은 호미같이 무딜까?
아버지의 사랑은 비롯 호미 같을 지라도 깊고 넓은 사랑은 그 어머니의 사랑보다 은은하고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자녀들이여!
부모와 대화하는 따듯한 한 마디의 말, daddy 사랑해요~ 한마디 해 보자.
이 말은 생일날 값비싼 넥타이 선물 보다, 가슴에 꽂아준 한 송이의 꽃보다 더 기분 좋고 향기로울 것이다.
만약 아버지와 서먹했던 사이가 되었다면, “아버지 오늘 우리 함께 저녁 먹으러 가요” 라고 한마디 전해 보자.
아마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기뻐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대화가 통할 것이니까,
왜냐하면, 자녀가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좋으니까,
왜냐하면, 가장 가까이서 자기 분신과도 같은 자녀들을 볼 수 있으니까,,,
바로 흑백사진과 같았던 그림자의 아버지는 다시 컬러사진처럼 활발하게 바로 당신 앞에서 웃고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 1~4)
할렐루야!
[이 게시물은 T_KCCCN님에 의해 2015-08-15 22:51:51 독자기고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