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뉴욕 교계의 치킨게임 언제까지 계속될까
[2011-08-10 21:01]
시대의 반항아 ‘제임스 딘’이 주연한 1955년 작 ‘이유 없는 반항’에는 자동차 게임이 나온다. 두 사람이 각자의 차로 절벽을 향해 달리다가 먼저 차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겁쟁이(치킨)가 되어 지게 되는 게임이다. 또는 도로 양쪽에서 두 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방법으로 운영되기도 했다. ‘치킨게임’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가운데서 유행하던 게임이다. 어느 한 쪽도 핸들을 놓지 않거나 핸들을 꺾지 않을 경우 둘 다 승자가 되지만,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후 ‘치킨게임’은 어느 한 쪽도 양보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게임을 말하게 됐다.
얼마 전 미국은 국가 부도 상황을 가까스로 넘겼다. 디폴트 선언을 이틀 앞두고 극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해냈지만 미봉책일 뿐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 이 상황은 치킨게임에 비유되고 있다. 사상 최초로 미국의 신용 등급을 하향 조정한 국제 신용 평가사 스탠다드 앤 푸어스(Standard & Poor’s, 이하 S&P)는 하향 조정의 이유를 경제의 이유보다는 ‘정치’로 꼽았다. S&P 국가 신용등급 책임자인 존 체임버스 전무는 미국 신용 등급 강등 발표 직후 인터뷰에서 “미국의 신용등급을 낮춘 가장 큰 원인은 정치권의 벼랑 끝 대치”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부채한도 조정을 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각자의 의견을 고수한 채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기는 마지막 날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국민의 80% 이상은 타협을 서로 거부했던 의원들을 불신한다고 의사를 표명했다. 극단으로 치달은 이들에게 두 손 두 발 든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를 꽃피운 것은 타협이었다. 미국 정치에서 타협이 사라지고 극단주의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타협은 비겁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정치 후진국에서는 타협이 변절을 뜻하지만 정치 선진국에서는 타협이 상생과 발전의 도구로서 역할을 한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받아내면서 민주주의 정치는 발전하며 조화와 균형을 찾아간다. 이익이 상충할 수 밖에 없는 가운데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용인하는게 필요하다. ‘모 아니면 도’라는 극단주의로는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물론 발전을 위한 대화와 타협에서는 합의를 이행할 것이라는 진실성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요하다.
뉴욕 교계 정치에도 정관 개정과 선거, 나아가서는 2013년 WCC개최를 앞두고, 그리고 이단 문제를 둘러싸고 치킨게임이 현재 진행중이다. 다만 게임의 목적에 차이가 있다. 겁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게임을 하고 있는 당사자들은 교계의 질서,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기 위해 게임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양쪽 모두 목적은 같다. 또한 목적을 위해 타협하지 않을 굳은 의지 또한 대단하다.
뉴욕 교계의 치킨게임은 할렐루야대회를 앞두고 멈춘 것 처럼 보인다. 그러나 속도는 느려졌을지 모르나 게임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게임을 둘러싼 각종 이야기는 시시각각 만들어지고 퍼지면서 당사자들의 차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이미 한국과 미주 한인 교계에서 치킨게임을 치르고 파국울 경험한 이들이 다수 있다. 게임 후를 수습하는데 몇 달, 몇 년이 걸렸다. 아직도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극한 대립각만 세우는 이들도 많다. 수습한 이들도 수습했다는 데 의의를 두기 보다는 기독교계에 대한 우려와 실망을 안겼다는 심각성을 되돌아봐야 한다. 화해와 상생, 주님 사랑, 이웃 사랑을 외치는 교계 지도자들이 기독교인들은 물론, 이를 바라보는 비기독교인들에게까지도 실망을 주었다.
뉴욕 교계의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데 희망이 있다. 파국으로 치닫기 전이기에 양 자 모두 안전한 곳으로 핸들을 돌릴 여유가 있다.
교계 지도자들은 봉사를 위해 나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양상은 뉴욕 교인들을 위해, 교계를 위해 봉사하는 길과는 멀어보인다. 참된 봉사와 상생의 본을 보여주는 성숙한 지도자들, 그들의 판단과 행동이 필요한 때다.
윤주이 기자 jooiee@ch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