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중독과 불륜 유혹 시대에 다시 본 플로베르 『보바리 부인』

그림 ① 센 강변의 아가씨들(1856~57), 귀스타브 쿠르베(1819~77) 작,
캔버스에 유채, 174×206㎝, 프티팔레 미술관, 프랑스 아비뇽
캔버스에 유채, 174×206㎝, 프티팔레 미술관, 프랑스 아비뇽
지난주에는 6년간 회사 돈 10억원을 횡령해 명품을 사던 30대 여(女)경리가 구속됐다. 지난 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그럼, 다음의 사건은 언제 일어났을까? ‘지방 의사의 미모의 부인이 지루한 일상을 견디지 못해 바람을 피우고 빚을 내 사치품을 사고 데이트 비용으로 쓰다가, 빚 독촉을 받고 차압이 들어오자 자살했다’. 역시 최근 뉴스 같지만 사실은 19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그리고 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1857)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권장도서 리스트에서 빠지는 법이 없는 고전의 줄거리치고는 좀 막장 드라마 같지 않은가?
실제로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80)는 당시 보수적인 제2제정 정부로부터 “공중도덕을 해친 죄”로 고발까지 당했다. 하지만 판결은 무죄였다.
실제로 『보바리 부인』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1821~80)는 당시 보수적인 제2제정 정부로부터 “공중도덕을 해친 죄”로 고발까지 당했다. 하지만 판결은 무죄였다.

1991년 개봉된 영화 ‘마담 보바리’의 한장면.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보바리 부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이 소설에서 에마 보바리의 연애는 미화되지 않는다. 첫 정부(情夫)인 바람둥이 독신 지주 로돌프는 에마가 함께 달아나자고 하자 부담을 느껴 모습을 감춰 버린다. 두 번째 정부인 젊은 미남 서기 레옹과의 관계에서는 나중에 서로가 환멸과 권태를 느낀다. 에마는 두 경우 모두 진부한 현실에 반항하는 ‘로맨스’로 생각하고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시작했으나, 하나같이 현실에 엉킨 구질구질한 ‘불륜’으로 끝날 뿐이다. 심지어 에마가 비소를 삼켜 자살할 때도 평소 동경하던 소설의 여주인공들처럼 우아하게 숨을 거두지 못한다. 그녀는 끊임없이 구토를 하고 나중에는 제발 좀 빨리 끝나라고 악을 쓰게 된다.
그런데 이런 냉혹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에마에 대해 구체적인 비난이나 훈계의 메시지는 찾을 수 없다. 이게 『보바리 부인』을 고발한 정부 당국의 불만이었으리라. 플로베르는 자연이 의미심장한 현상을 일으키나 그 의미를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 자연과 같은 소설을 쓰고자 했다. 그는 에마에게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다. 사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에마의 일탈보다도 그녀를 둘러싼 지방 소도시의 풍경과 인간 군상의 모습에 할애돼 있다.
에마의 시신 앞에서 밤샘을 하는 조문객 중에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약제사 오메는 신부(神父)와 한바탕 종교 논쟁을 벌인다. 에마의 죽음과 남편의 비탄에 그들이 느꼈던 얼마간의 슬픔과 동정은 이미 뒷전이다. 그러다 그들은 나란히 잠들어 버린다. 에마의 최대 피해자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만이 깨어 있으면서 절규할 뿐이다. 프랑스의 화가 푸리의 작품(그림 )은 이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인간을 정밀하게, 또 종종 냉소적이면서도 되도록 객관적으로 묘사했기에 『보바리 부인』은 후대에 “사실주의 문학의 성서”로 각광받게 됐다. 이 소설이 출판된 바로 그해에 “사실주의 미술의 기수” 귀스타브 쿠르베는 ‘센 강변의 아가씨들’(그림 )을 살롱에 출품했다.
그림 ② 보바리 부인의 죽음(1889), 알베르-오귀스트 푸리(1854~96) 작
그런데 이런 냉혹한 묘사에도 불구하고 에마에 대해 구체적인 비난이나 훈계의 메시지는 찾을 수 없다. 이게 『보바리 부인』을 고발한 정부 당국의 불만이었으리라. 플로베르는 자연이 의미심장한 현상을 일으키나 그 의미를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런 자연과 같은 소설을 쓰고자 했다. 그는 에마에게만 초점을 맞추지도 않았다. 사실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은 에마의 일탈보다도 그녀를 둘러싼 지방 소도시의 풍경과 인간 군상의 모습에 할애돼 있다.
에마의 시신 앞에서 밤샘을 하는 조문객 중에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약제사 오메는 신부(神父)와 한바탕 종교 논쟁을 벌인다. 에마의 죽음과 남편의 비탄에 그들이 느꼈던 얼마간의 슬픔과 동정은 이미 뒷전이다. 그러다 그들은 나란히 잠들어 버린다. 에마의 최대 피해자면서도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만이 깨어 있으면서 절규할 뿐이다. 프랑스의 화가 푸리의 작품(그림 )은 이 장면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인간을 정밀하게, 또 종종 냉소적이면서도 되도록 객관적으로 묘사했기에 『보바리 부인』은 후대에 “사실주의 문학의 성서”로 각광받게 됐다. 이 소설이 출판된 바로 그해에 “사실주의 미술의 기수” 귀스타브 쿠르베는 ‘센 강변의 아가씨들’(그림 )을 살롱에 출품했다.

소설처럼 이 그림도 퇴폐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앞쪽 여인은 야외에서 모자와 장갑을 벗는, 당시 숙녀라면 절대 해선 안 될 짓을 하고 있는 데다 드레스를 반쯤 올려 깔고 엎드린 채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지 않은가. 이들은 에마 같은 소(小)부르주아지가 아니라 그리제트(Grisette)라고 불리는 하층 여인들로, 파리에서 트렌디한 모자가게 점원 등으로 일하며 보헤미안 예술가들과 어울려 ‘좀 노는 언니들’이었다. 이런 여자들이 공공장소에서 나른한 자태로 뒹구는 장면을 그렸으니 문란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사를 보여줘, 그래야 천사를 그리지”라고 말하곤 했던 쿠르베는 눈에 보이는 현실 세태를 그대로 그릴 것을 고집했고, 선대 화가들처럼 관능적인 여인을 비너스 여신으로 포장해 그려서 고상한 척할 생각도 없었다. 이것이 쿠르베의 사실주의였으며 플로베르와 상통하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화가와 소설가는 생전에 별 친분은 없었으나 후대에 한데 묶여 현대적(Modern) 문화의 창시자들로 연구되곤 한다.
게다가 나른한 권태 속에 은근한 갈증과 욕망을 보이고 있는 쿠르베의 여인들은 플로베르가 에마를 묘사한 구절, “그녀의 주름지는 옷자락이나 발을 굽히는 태도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야릇한 그 무엇이 발산되고 있었다”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들의 그림과 소설은 현실 세태를 그대로 보여 주면서도 그 섬세한 묘사가 이렇게 시적인 아름다움을 띠기도 한다.
『보바리 부인』이 오늘날까지 회자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사실주의가 외부적 사건뿐 아니라 인간 내면에도 적용돼 심리묘사가 정밀하고 개연성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심리묘사를 통해 드러난 에마는 비정상적으로 음탕하거나 탐욕스러운 인간이 아니다. 다만 낭만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 너무 강할 뿐이다.
에마는 수도원 학교에 다닐 때 성당 행사에도 열심이었다. 신앙심이 깊어서가 아니라 성당이 자아내는 “낭만적인 우수”가 좋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통속적인 TV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예쁜 성당에서 청순가련한 얼굴로 기도 드리는 장면이 쓸데없이 나오는 것과 같은 이유다. 에마는 그저 뭔가 멋지고 드라마틱한 게 너무나 좋았다. 그러나 스스로 예술가가 돼 그 성향을 독창적이고 생산적으로 꽃피우기에는 그녀가 처한 환경, 교육 수준과 자질, 모든 게 모자랐다. 결국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에 대한 그녀의 갈망은 사치품 쇼핑과 불륜이라는 가장 속되고 민폐 끼치는 형태로 나타나고 만다.
플로베르는 이런 에마의 심리를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성별도 신분도 다른데 어떻게 가능했을까? 『보바리 부인』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그는 에마의 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 자신”이라고 종종 대답했다. 그 자신에게 공상적이고 유치하게 낭만적인 일면이 있었고 그것을 에마에게 투영한 것이다. 단 플로베르는 에마와 달리 자신의 일면을 냉정하게 관조하는 능력이 있었다.
플로베르는 소설에 작가의 주관(主觀)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녀는 욕망 속에서 사치의 관능적 쾌감을 마음의 기쁨과 혼동했다” 같은 구절에서는 에마와 작가 자신의 어리석은 면에 대한 냉소와 연민이 나타난다. 오늘날 명품 옷을 입거나 고급 차를 타면 고상한 존재가 되며 낭만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에게도 이 문장이 해당되지 않을까. 사실 수많은 광고가 그런 착각을 열심히 부추기며 “이걸 사면 멋진 사람, 멋진 인생이 되는 거야”라고 속삭이지 않는가. 그러나 그 유혹에 끝없이 굴복하면 보바리 부인처럼 ‘뭔가 아름다운 것’에 대한 동경이 가장 추한 꼴이 되는 걸 보게 되리라. 그게 현실이다.
문소영 기자

“빛나는 비늘로 덮인 머리 없는 뱀”
강물에 비친 달 비유한 구절
5년간 보석처럼 문장 다듬어
강물에 비친 달 비유한 구절
5년간 보석처럼 문장 다듬어
플로베르는 친구의 권유로 『보바리 부인』을 쓰게 됐다. 그가 쓴 낭만적인 작품을 친구에게 읽어 주자 친구가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써보라며 『보바리 부인』의 바탕이 된 실화 ‘들라마르 부인 자살사건’을 들려준 것이다. 그런데 플로베르가 이 소설을 완성하는 데는 5년이나 걸렸다. 그는 글을 쓰면서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단어를 고르고 골라 “오직 하나뿐인 딱 맞는 낱말”을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 다. 그렇게 보석을 연마하듯 문장을 다듬어 강물에 비친 달빛을 “빛나는 비늘로 덮인 머리 없는 뱀”에 비유한 구절 등 『보바리 부인』의 유명한 아름다운 구절들이 탄생했다.
글 보낸이: 라 종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