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나.- 1

 

 

하 나님은 한 사람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으시고 남자와 여자를 합하여 부부라는 공동체를 형성하셨다. 결혼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남자와 여자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다. 결혼생활을 통하여 두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치유하면서 성장해나간다. 하나(아담)에서 둘(하와)이 만들어졌으나 이제 결혼을 통해서 둘이 하나가 되어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인격적이고 관계적인 연합, 그리고 성적인 연합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다.



결 혼생활은 하나님의 여러 가지 목적을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결혼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창조 명령을 실현하는 도구요, 장소다. 또한 자녀를 출산하고 사랑과 훈계로 양육하는 권리와 책임이 결혼으로 형성된 가정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결혼은 삼위일체 하나님 사이의 사랑과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사랑을 보여주는 모델 역할을 한다. 결혼 관계 속에서 희생적 사랑을 경험하고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모델이 된다.



그 러나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모든 결혼 언약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목적을 실현하는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려는 끊임없는 노력과 자기희생이 필요하며, 그 바탕 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바로 이 부분에서 결혼의 이상과 현실이 충돌하면서 수많은 결혼이 깨진다. 하나님은 모든 결혼이 이 땅에서 흔들림 없이 유지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분명한 뜻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죄로 물든 인간은 이기적인 욕구를 앞세우면서 신성한 결혼 서약을 깨뜨린다. 결혼을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장 숭고한 하나 됨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자기희생은 자아실현이라는 이름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그 결과 오늘날처럼 수많은 가정이 자기중심성이라는 폭군 앞에서 무기력하게 파괴되는 것이다.



이혼 증가의 원인



이 혼이 만연했던 로마 사회에서 대조 사회를 이루었던 초기 기독교인들은 결혼과 가족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었다. 그 결과 이혼은 기독교 사회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세속화 흐름에 굴복한 기독교인들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부부 사이의 갈등 해결책으로 이혼이라는 대안을 손쉽게 선택했다. 그 결과, 오늘날 두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 상황이 되었다.



무엇이 이혼의 급격한 증가를 촉진한 것인가. 몇 가지 원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원인                                                    배경


가족보다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함.        경제적 문제로 가정의 결속력은 쉽게 와해됨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                 독립적인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용기가 커짐


가족, 결혼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결혼이 반드시 영속적이 아니라는 생각


결혼에 대한 이해와 준비 부족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


이혼에 대한 사회적,법적 제한 완화

종교적 기능의 둔화                               결혼의 신성함을 무시한다.


개인주의                                              자아성취의 한 수단, 개인의 행복이 우선


섬김과 희생의 부재                               결혼과 헌신적 관계라는 의식이 점차 약화됨

부족한 의사소통                                   갈등을 해소할 수 시간과 기술이 줄어듬


성적 유혹의 증가                                  대중 매체의 영향


평균 수명의 증가    




이런 현상은 비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세속 문화의 흐름에 저항 없이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결국 그리스도인들도 자기중심성이라는 우상 앞에 굴복하면서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상실하였다.



그 러나 문제 회피 방식으로 택하는 이혼은 또 다른 큰 문제를 야기한다. 이혼은 한 사람의 생에서 스트레스 지수를 가장 높이는 혹독한 경험이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수치로 나타내기 어려울 정도다. 또한 이혼은 사회에도 심각한 부담을 초래한다. 사회적 결속력이 약화되고 복지에 대한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국가들이 이혼을 줄여보려고 이혼을 고려하는 부부들을 대상으로 이혼 숙려 제도를 강화하고 상담을 받을 것을 강제한다. 그럼에도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풀려고 하기보다는 회피하고, 상호 노력을 통한 장기적인 만족보다는 즉각적이고 표피적인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세대에서 이혼은 손쉽게 선택하는 해결책이 되어버렸다.



이혼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결 혼을 제정하신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 이 땅에서 어떠한 난관 속에서도 지속되기를 원하셨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가 너무 크고 숭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의 영향으로 많은 것들(자아·인간관계·자연)이 파괴되었고 결혼 관계 또한 예외가 아니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이혼이 현실이 된 것이고, 이 현실에 대해 하나님은 일정한 가르침을 줄 필요가 있었다.



결 혼과 이혼에 대해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많지는 않지만 충분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이해하는 과정에서 의견의 불일치가 발생하듯이 이혼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혼에 대해서 크게 세 가지 다른 견해들이 발전했다.



첫 째,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견해다. 이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혼은 하나님이 설정한 이상적인 결혼에 어긋나며(창 2:24),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 위반이다(잠 2:17, 말 2:14). 예수님뿐만 아니라 바울도 모든 이혼을 비난했다(눅 16:18, 막 10:1~9, 마 19:1~9, 마 5:32, 고전 7:8~15). 이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파괴하는 것과 동일하다.



둘째, 성경이 명백하게 기록하고 있는 두 가지 경우에만 이혼이 허용된다는 견해가 있다. 배우자가 간음했을 때(마 5:32)나 비신자 배우자가 이혼하기를 요구했을 때(고전 7:15)가 바로 그 경우다.



셋 째, 이혼을 좀 더 포괄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두 가지 경우 이외에도 이혼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결혼 서약은 포괄적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결혼 서약을 지속적으로 어길 경우에는 결혼 서약을 깬 것으로 봐야 하고 그럴 경우 형식상의 이혼이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제 이혼과 관련 있는 핵심적인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면서 어느 견해가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잘 이해한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먼저 반드시 기억해두어야 할 것은, 이 세 가지 견해들이 이혼에 관해서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다르지만, 이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의 주된 관심은 이혼이 허용되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는 결혼 관계를 유지시키려는 하나님의 간절한 의도를 읽는 데 두어야 한다. 어떤 이혼도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1. 마가복음 10장 2~12절



유 대인들은 모세 율법을 따라 이혼 관습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어떤 경로인지는 몰라도 예수님이 이혼에 반대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모세 율법과 상치된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이혼 문제를 제기한다. 예수님의 권위를 실추시키려고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이다.



이 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은 질문의 배경이 되는 모세 율법(신 24:1~4)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지 묻는다. 바리새인은 “모세가 이혼을 ‘허락’했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신다. 신명기 율법은 모세 당시 이미 이혼 관습이 성행하고 있었고 단지 모세는 남자가 이혼 후에 다시 처음 아내와 재결합하는 것만을 ‘금지’하고 있을 뿐이다. 모세의 의도는 적극적인 허용이 아니라 수동적인 허용이며, 이혼이 남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 증서’를 써 주라고 ‘명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 예수님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본래 의도를 밝히신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나님(theos)과 사람(anthropos)을 분명하게 대조하고 있다.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의도를 망쳐놓는다. 모세의 율법은 인간의 죄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더 악하게 발전하지 않게 막고 약자(여자)를 보호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시하시는 참된 제자도는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를 완전히 성취해야 한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계셨다. 그것은 이혼에 관한 ‘규정’이나 ‘허용 범위’와 같은 것들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새 시대를 사는 제자들은 하나님의 의도를 망치는 이혼을 당연히 거부해야 한다.



2. 마태복음 19장 3~12절(마 5:31~32)



마가복음 10장 2~12절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혼에 관한 논의를 창세기 2장의 창조 원리 안에 두면서 하나님의 이상적인 의도(ideal intention)는 결혼의 영속성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그 러나 이러한 의도가 이혼을 원천적으로, 율법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아니다. ‘이상’을 제시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대로 ‘규정’으로 자리 잡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10장 2~12절과 달리,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이혼을 허용하는 조건을 한 가지 제시하는 것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난다.



여 기서 논란의 핵심은 ‘음행’(9절)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학자들은 ‘음행’(porneia)(9절)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놓고 오랜 세월 동안 논란을 거듭해왔다. 어떤 사람들은 음행을 결혼한 자의 간음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구약적 배경에서 간음은 사형죄에 해당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이혼의 사유로 제시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미 사형받아 죽을 사람과 이혼한다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porneia’가 간음을 의미하는지도 불확실하다. 간음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헬라어는 ‘moicheia’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학자들은 ‘음행’(porneia)은 여러 종류의 성적인 비행(간음, 근친상간, 동성애, 짐승과의 교접, 혼전 부정, 기타 현대적 성적 비행)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성적 충실성이 결혼 서약의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지만, 결혼 서약은 성적 충실성을 넘어 더 광범위한 상호 충실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음행’은 결혼 서약을 실질적으로 깨는 지속적인 비행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NIV 성경은 ‘porneia’를 ‘marital unfaithfulness’로 번역하고 있다.)



여 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혼이 가능한 (허용되는) 경우를 제시하셨다는 점이다. 마가복음에 나타난 ‘절대 불가’와는 달리 마태복음에는 허용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즉 이혼은 ‘절대 불가’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가능한’ 것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의 강조점은 결혼생활의 유지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예외는 말 그대로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해당될 뿐이지 그것이 결혼 생활의 이상을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3. 고린도전서 7장 10~16절



바 울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전통을 따라 불신자와 결혼생활을 하는 신자들에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은 에스라의 명령과 전혀 다른 것이다(스 10). 에스라는 안 믿는 배우자와의 결혼 생활의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바울은 그들과 자녀들을 구원할 수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의 가르침의 핵심은 ‘화해’에 있지 ‘이별’에 있지 않다. 그래서 안 믿는 배우자라도 같이 살기를 원하면 구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속해서 함께 살 것을 명령한다.



그 러나 안 믿는 배우자가 이혼을 요청할 경우에는 이혼이 가능하다고 덧붙인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결혼의 언약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인 것이다. 안 믿는 배우자는 결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기를 거절하며 따라서 결혼을 통해 의도하신 진정한 하나 됨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어 떤 학자들은 이 예외 규정을 확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이 결혼을 제정하신 의도를 고려하면 안 믿는 배우자의 예는 결혼 서약을 본질적으로 거부하는 모든 배우자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각 교회와 교인들이 처한 상황 속에서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됨을 말살하는 지속적인 신체적 폭력, 가족에 대한 유기, 결혼 생활에 필수적인 의무의 지속적인 불이행, 심한 부도덕 행위와 같은 것들은 사실상 결혼 서약을 무시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결혼관계가 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불신자가 배우자를 버린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구절의 주된 초점은 ‘화해’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안 믿는 배우자라 할지라도 평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여 기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바울이 가르침을 주고 있는 정황(context)이다. 바울은 이방인 선교의 현장에서 결혼과 이혼에 대한 가르침을 준다. 그는 마가복음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이혼의 가능성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가르침이 아니라 주님의 가르침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태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당시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결혼과 이혼에 대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또한 동시에 결혼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즉 결혼의 유지가 다른 어떤 것보다 우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목회적·선교적 상황 속에서 이혼 문제와 관련된 새로운 이슈가 제기될 때에 하나님의 원리를 유연하게 적용했다. 그것이 마태에게는 ‘음행’의 경우, 바울에게는 ‘안 믿는 배우자의 이혼 요구’가 있을 경우에 이혼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 시대에 결혼과 이혼의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종합



결혼과 이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결론을 도출해볼 수 있다.



(1)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은 이혼 문제에 대해서 율법적으로 접근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혼이 언제 허용되는가?” 하는 질문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고와 질문의 방향을 바꾸신다. 남자와 여자의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결혼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예를 들어, 결혼은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는 도구다. 또한 결혼은 두 사람 사이에 친밀한 연합을 이루어 참된 교제의 모델을 체험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멋진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마 6:33). 그러므로 자아실현과 행복 추구는 뒷자리로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이혼은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을 먼저 이해한 바탕 위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2) 이혼은 하나님이 정한 이상형이 아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 되게 하시는 것이며, 인간이 그것을 인위적으로 나눌 수 없다. 분리는 하나님의 의를 성취하는 과업에서 실패한 것을 의미한다.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용납에서 잘 드러나듯이 하나님은 남편이나 아내 모두 자기희생적인 사랑으로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하신다(엡 5:21~33). 그러므로 그 어떤 종류의 이혼도 하나님의 의도를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계획이 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결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3) 어떤 경우에는 이혼이 허용된다는 것도 분명하다. 마가복음 10장 2~12절에서는 이혼에 대해 어떤 예외 조항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후대의 저술로 보이는 마태복음 19장 3~12절(마 5:31~32)과 고전 7:10~16절에는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를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비록 결혼의 유지가 하나님의 뜻이지만 이혼이 절대 불가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성경은 이혼을 권장하지는 않는다는 점 역시 분명하다.



여 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태복음 19장 3~12절과 고린도전서 7장 10~16절에서 제시하는 이혼 허용 조건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바울이 이혼이 가능한 경우로 제시한 것(불신 배우자의 이혼 요구)은 복음서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바울이 자신이 처한 선교적 상황 속에서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확대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마가와 마태의 차이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마가는 이혼 허용 조건에 대해 어떤 경우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태는 예수님께서 한 가지 조건을 덧붙인 것으로 기록한다. 마가와 마태가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마가는 더 원칙적인 면을 부각시킨 것이고 마태는 자신의 독자들의 상황 속에서 결혼과 이혼에 관한 예수님의 원리를 적용시킨 것이다. 바울도 이와 동일하게 자신의 상황 속에서 예수님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우리가 처한 상황 속에서 결혼과 이혼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이해하는 가운데 이혼이 허용되는 경우들을 좀 더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2-로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