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식물인간을 깨어나게 한 사랑(실화)
난… 작고 볼품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었다.
동생에 비하여 난 항상 뒤쳐졌었다.
공부는 물론이거니와 운동까지난 동생에게 뒤처졌다.
그래서
‘누구의 형’ 이라는 식으로의 소개를 많이 받았다.
이제 내 나이 20. 남들은 다들 좋은 나이라고 한다.
한번쯤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나이. 약관 20세.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인생 중 가장 최악의 순간이었다.
남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몰라도난 여자 친구가 없다.
여자 친구 없는 것이 뭐 대수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글쎄…나에겐 그것마저 큰 콤플렉스였다.
말 그대로 다들 하나씩 ‘끼고’ 다니지만…
내 옆에는 항상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모임에서의 단체 활동으로봉사 활동을 나가게 되었다.
그곳은 조그마한 교외에 있는 요양원.
주로 이제는 더 이상 차도가 없는신체가 불편한 사람들
식물인간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2층의 206호실.
내가 맡은 담당환자가 있는 곳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할아버지 할머니겠지.
난 206호실 앞에 서서문을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조용했다.
그 흔한 TV도 없었고 라디오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란 것은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아니었다.
조그마한 소녀
긴 머리를 땋아 한쪽으로
늘어뜨린 소녀가 누워 있었다.내 내가 잘못 들어온 것인가…
난 허둥지둥 밖으로 나가 다시 확인했다.
206호. 206호.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맞는 병실이었다.
순간 밖에서 들어오는 한 사람.
“어서 오세요.
앞으로 일주일간
우리 아이를 보살펴줄 사람이군요.”
“아… 전…”
“잘 부탁해요. 저 아이의 애미 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엉겹 결에 나도 고개를 숙였다.
조용히 침대 앞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저 10여 년 전
저 아이가 10살 때 교통사고가 났다고 한다.
몸의 상처는 다 치료가 되었지만
그때 이후로 식물인간이 되었다고 한다.
10년 전 10살이라면…. 20살…
하지만 아직도 중학생 정도로만 보일뿐이었다.
아마 활동을 하지 않는 탓으로
성장이 느린 것이리라 생각했다.
어머니는 매우 지쳐보였다.
10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이곳에서
생활 했다고 했다.
그러며 잠시 눈 주위를 훔쳤다.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 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다음날.
난 병실로 찾아갔다.
어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난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그녀를 천천히
바라보았다. 빛이 너무 밝다.
난 창가로 다가가서 블라인드를 조금 내렸다.
그리고 다시 의자로 가서 앉았다.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관을 통해서 들어가고 관을 통해서 나왔다.
내가 할일은 없었다.
이제 서야
내가 왜 이 병실로 배정받았는지
이제 서야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나 ” 이거였군…”이거였군…”
“나에게는 아무 능력도 없으니…”
“후우…”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계속 잠을 잘 뿐이었다.
어머니가 말하길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고했다.
다음날. 난 책 한권을 들고 갔다.
TV도 라디오도 없는 병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난 책을 한권 들고 병실로 갔다.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다가
문득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그녀가 눈을 뜬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비로소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녀는 불안한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곧 그녀의 어머니가 들어왔고
그녀는 다시 안심했다는 듯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날 난 들고 간 책 한권을
모두 읽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난 다른 책 한권을 가지고 병실로 갔다.
그녀의 어머니가 일찍 나와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정답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 또래가 흥미 있어 할만한
연예인 이야기였다.
인사를 건네자 어머니도 간단하게 인사를 받으시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야기를 알아들어요?”
난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
어머니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았다.
“나도 잘 몰라요. 하지만
알아들을 것이라고 믿어요.”
그녀의 어머니는 바쁜 일로 곧 나갔고
또 병실에는 그녀와 나 밖에 남지 않았다.
의자에 앉아 책을 폈을 때
문득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그녀의 하얀 손이 보였다.
난 천천히 그녀의 손을 잡아 이불 안으로
넣어 주다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깨어 있었다.
순간 놀라 어쩔 줄 모르다가 그냥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책을 다시 펴들었을 때
난 내 심장이 무척 두근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도
내 심장은 계속 두근거렸다.
결국에는 휴게실로 나가 커피 한잔을 마시고
겨우 진정이 됐다.
다음 날.
병실에 들어가자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난 다가가서 인사를 했다.
바보 같은 짓인 줄 알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녀가 살아있다’. 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순간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가 날 보더니 웃었다.
웃었다?
식물인간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들어와 무슨 일인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난 사실대로 말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웃었다.
“왜… 왜 그런 거죠?”
“당신도 느꼈군요. 저 아이가 웃는 것을…”
“느끼다니요?
그럼 정말로 웃은 것이 아니란 말입니까?”
순간이지만 다시 어머니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저도 몇 번이나 보아서 의사 선생님에게 말했지만
제 착각이랍니다.
저 아이는…”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이 두 눈밖에 없어요.
하지만 잘 되었네요.
당신도 저 아이가 웃은 것을 느낄 수 있다니
저 아이와 잘 통했는 것 같군요.”
하며 웃어보였다.
다음 날.
이제는 병실을 찾는 것이 내 일부분이 되었다.
그리고 나 혼자 책을 읽는 대신에
그녀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동화부터 시작해서 전쟁 소설까지
난 닥치는 대로 읽어주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자지 않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었다.
오늘은 막차를 타고 집에 돌아갔다.
다음 날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깜빡
가져올 책을 놓고 와버렸다.
병실에 들어가자 이미 그녀는 깨어있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30분 전부터 깨어있었다”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웃어보였다.
난 그녀에게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미안하다고 생각하며
책을 가지고 오지 않은 대신
내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읽었던 여러가지 책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머니는 돌아가고 밤늦게까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이미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밤늦게 까지 이야기를 계속했고
그녀도 잠들지 않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새벽 3시.
난 그녀가 무척 편하게 느껴져서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의 이야기.
열등감을 느끼는 나.
여자 친구가 없는 나
이런 내 얘기를 했다.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 들이었다.
누가 알게 될까봐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내 스스로 하고 있었다.
왜일까… 그녀는 식물인간이니까…
그래서 내가 마음 놓고 하는 것인가?
난 밤새도록 그녀에게
넋두리를 하다가 지쳐 잠이 들었다.
일어났을 때
내 뺨에 따뜻한 것이 놓여 있었다.
그녀의 손이었다.
그녀는 계속 깨어있었다.
“당신이 올려놓은 거 에요?”
난 놀라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답할리 없었다.
그녀는 계속 누워서
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제.. 제가 밤중에 실례를 한 모양이군요.
죄송합니다.”
난 병실을 뛰쳐나왔다.
다음날
난 늦게 서야 병실을 찾았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병실.
언제나 똑같은 모습의 그녀.
그녀의 어머니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맞이하였다.
“어제는… 일찍 들어 가셨더군요…”
“네… 사정이 있어서…”
난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을 이었다.
“오늘 마지막 날이네요…”
“네에. 저 아이가 무척…
좋아하는 듯 했는데.
아쉽네요.”
나는 다시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끼며
애써 어머니의 시선을 피했다.
“당신이 오고 난 후로부터
저 아이가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지금까지는 저런 일이 없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좋은 일이라고 하시더군요.”
“네에…”
난 언제나처럼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말했다.
“저 오늘 마지막 날이에요.
지금까지 고마웠구요…
어제의 일은 죄송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난 또 한 번 그녀의 웃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용서 했다는 뜻인가…
그리고 나도 그녀를 향해 웃어주었다.
다음 날.
난 하루 종일 안절부절 해 있었다.
친구들도 부모님도 모두 괜찮으냐는 질문뿐이었다.
뭔가를 하지 않는 것 같은데…
뭔가를 빼먹는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덜렁거리는 녀석.
또 뭔가를 빼먹고 헤 메는 군…
바보… 바보… 바보…’
그러기를 일주일.
난 원인을 찾아내었다.
그 요양원 그곳에 뭔가를 놓고 온 것이 틀림없었다.
책을 놓고 온건 가…
아니면 내 물건이라도…
다음 날.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는 무척 놀라는 듯 했지만
난 인사를 하고 그녀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등에서는 땀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점심시간도 저녁시간도 잊은 채
이야기를 계속했다.
배고프지 않았다.
피곤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시간이 내겐 둘도 없이
중요한 시간이었기에…
나는 그 후로 계속 그녀를 찾아갔다.
그녀의 어머니도 언제나 날 반갑게 맞이해 주었고
오히려 고맙게 여기고 있었다.
나 역시 어머니가 고마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남으면
무슨 책이든 읽어 이야기할 주제를 찾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난 그날 밤도 언제나처럼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얼마나 이야기 하고 있을까
문득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고 있었다.
내가 이야기 해줄 때면 언제나 웃고 있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겨우 입을 열었다.
후후
“그래요… 난… 그러니까…”
난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더듬거렸다.
오늘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꼭 해야만 했다.
입의 침이 마르고 입술이 바짝 말라버렸다.
하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당신을 좋아해요.!”
20년 만에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좋아한다는 말.
그렇게 하기가 힘들었던 건가…
하지만 난 그녀에게 말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지금 내가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야기 뿐 이었지만…
좋아한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순간. 그녀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 움직였어?”
난 급히 간호원을 불렀다.
그녀에게 말을 했지만 ‘기대하지 말라’며
의사를 부르려 나갔다.
곧 의사가 들어왔고 진찰을 조금해 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노’였다.
“확실히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게 일주일후
그녀의 병실을 찾아 갔을 때
그녀의 침대는 비어있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간호원
난 간호원에게 목소리를 높여 물어보았다.
그녀는 매우 놀라 더듬거리며 대답해 주었다.
“어제저녁… 손가락을 움직였어요.
닥터도 확실하게 보았구요.
그래서 큰 병원으로 옮겨갔습니다.”
난 병원의 이름과 위치를 알아내고
단숨에 달려갔다.
요양원과는 비교도 할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
그 사이에서 그녀의 어머니를 찾아냈다.
어머니는 날 보자 매달려 울기 시작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 아이가 차도가 있는 것은
모두 당신의 덕입니다.
근육이 되살아나고 있데요.
이제 움직일 수 있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겨우겨우 그녀의 어머니를 진정시킨 후
그녀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언제나 같은 그녀…
난 그녀의 손을 잡고 이야기 했다.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이제 움직일 수 있데요.
정말 다행이에요. “
그렇게 말하고 있는 나도 울고 있었다.
‘정말… 기뻐도 눈물이 나오는구나…’
난 그날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병원은 요양원처럼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난 시간이 남는 대로 찾아가
그녀를 만났다.
그러기를 6개월 그녀는 정말 큰 차도를 보여주었다.
신문과 방송사에서는
10년만의 기적이라며 몇 번이고 찾아왔었다.
정말이지 이것은 기적이었다.
그녀가 움직일 수 있다니…
그러자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이제는 곧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되겠구나…
그녀도 다른 정상인과 같이 되면…
나를 만날 일은 없게 될 꺼야…’
나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 않겠지…
6개월 전 그녀를 좋아했다고 말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가 그때 말을 할 수 있었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
관심 없는 것은 당연해…
그 후로 난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전과 같은 허탈감.
이번에는 더 힘들었다.
몇 달 간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가끔 신문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때면
당장이라도 찾아가고 싶었다.
그녀가… 지금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후후 잊어버리자.
이젠 끝난 일이야…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대문 앞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그녀의 어머니였다.
아 안녕하세요.
어머니가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건네오며 다가왔다.
어찌해야 할까.
‘지금까지 찾아가지 않은 것을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찾아오시지 않아서
제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죄…죄송합니다.”
“그간 사정이 있으셨겠죠?…?
“저와 아이가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끔씩이라도 들려주세요.
어찌 되었건 아이의 은인이니까요…”
우연일지도 모르는 이 일을…
그녀의 어머니는 내덕으로 알고 감사했다.
그리고 계속되는 그녀의 말.
그녀는 “지금 굉장한 차도를 보여
재활 치료도 받고 있다”고 한다.
“저… 혹시 저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네. 당신이 처음올 때부터
모두 기억하고 있어요.”
어머니의 말에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면 그날 밤 내가 했던 모든 말.
내가 했던 고백들도 전부 기억하고 있다는 말…
예상하던 바였다.
“그럼. 꼭 한번 들려주세요.”
그녀의 어머니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난 텅빈 골목에서 혼자 서서
어머니가 사라진 공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난 커다란 용기를 내어 그녀를 찾아갔다.
얼마만인가…
그녀를 보는 건.
병실에 찾아가자 그녀의 어머니가
홀로 앉아 있었다.
침대는 비어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같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인사를 건넨 후
그녀를 찾자 재활 치료중이라고 하였다.
어머니와 함께 찾아간 재활치료실.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많은 환자들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녀를 손으로 가르켜 보았다.
여전히 긴 머리를 땋고
금속으로 된 지지대에 몸을 싣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그녀가 보였다.
얼굴에서는 땀이 흘러내리고
옷은 땀으로 흥건했지만
그녀는 걸음을 옮기는 것을 쉬지 않았다.
마치 갓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처럼
그녀는 위태위태했다.
어느덧 그런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서 있었다.
난 그대로 돌아가려 했다.
이제 건강한 모습을 봤으니…
내가 걱정할 일은 없었다.
몸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안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툰 발음이었다.
외국 사람이 부르듯 서툴게 부르고 있는 소리였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였다.
그녀가 날 보며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부르고는 내게로 걸어왔다.
서툰 걸음…
그런 걸음으로 몇 번이나 넘어질 번
하면서 걸어왔다.
그러면서도 내 이름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정든 아버지를 만난 듯…
결국 내 이름을 부르다가
부르다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자신의 다리를 원망하며
그녀는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주변의 환자들과 간호원은
그녀를 위해 길을 내주었고
모두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점차 내게로 옮겨왔다.
여전히 울먹이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
“이제…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힘을 내요….”
난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외쳤다.
힘들게 다가온
그녀는 쓰러지듯 내게 안겼다.
곧 이어 주변에서 들리는 박수소리와 함성소리…
난 그녀를 안고 천천히 앉았다.
그녀는 계속 울먹이면서 익숙하지 않은
발음으로 계속 말을 했다.
“에… 에… 칮아오지… 아.. 안았..어요…”
원망하듯 말하는 그녀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이 날 싫어 할까봐…
난 당신이 떠나버릴 것이
두려워 찾아오지 못했어요.’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미안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그녀는 계속 울먹이며 말했다.
“말… 지.. .지금까지… 다..단신을
찾아 가려고 열심히 했어요.”
난 순간
가슴이 벅차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그 때 말… 기… 기아억 하고…
있…있어요…”
그녀는 계속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말을 이었다.
내 귀에는 그녀의 말뿐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 나도.. 좋아… 좋아해요.”
“이… 이말 하고 .. 시.싶었.. 어요…”
그리고 그녀는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난 그런 그녀의 젖은 등을 토닥거리며 달랬다.
내가… 내가 왜 쓸데없이 걱정을 했을까..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난 울먹이는 그녀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고마워요.”
“그리고… 그리고… 정말 좋아해요.”
‘사랑한다는 말… ‘할 자신이 없었다.
‘사랑해요”사랑해요’
입안에서만 맴돌다가
난 ‘좋아한다.’라는 말이 나와 버렸다.
그녀는 훌쩍 거리며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더 이상은 놓쳐버리고 싶지 않기에…
떨어지고 싶지 않기에…
“그..그럴 때는..사라…사랑이라..는
말을 써도 조..좋을..꺼에요.”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난 그녀를 더욱 세게 안았다.
……………………………………………………
이 청년은 충남 모 대학교 사회복지과 재학 중이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