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성전, 잔인한 테러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지난 15일 이집트 콥트교 신자들을 집단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동영상에는 주황색 죄수복의 남성 21명이 해변에 무릎 꿇린 채 앉아 있고 이후 피로 물든 바다와 함께 참수 메시지가 나온다.
콥트교는 이집트에서 자생한 기독교 교파다. 예수의 제자 마가가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예수의 인성은 인정하지 않고 신성만을 강조해 로마교단으로부터는 분리됐지만 기독교 최초로 수도원을 건립했었다. 현재 이집트 인구의 10%로 추정되는 1000만명 정도가 신자로 알려지고 있다.
콥트교도 참수는 IS의 이제까지의 테러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례를 보면 IS와 이슬람 무장단체의 살해 대상은 주로 중동지역에 파견된 구호활동가나 언론인 등이고 대부분 서방국가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번 참수 대상은 IS에게는 이교도인 아랍권의 ‘기독교인’이었다.
이슬람과 서방의 대립에는 항상 뿌리깊은 종교적 갈등이 잠재해 있다. 드러내기를 꺼리고 인정을 하지 않을 뿐 불편한 진실은 존재한다. 테러가 발생하면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국한시키고 동기도 석유문제 팔레스타인 사태 등 경제.외교적인 문제로 규정해 봉합한다. 테러의 대립 주체는 항상 ‘아랍’과 ‘서방’이고 수면 아래 가려진 종교는 양측 모두 거론을 자제해 왔다.
이번은 양상이 다르다. IS는 참수 동영상에서 희생자들을 ‘이슬람에 적대적인 콥트교 신자들’이라며 ‘참수는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라고 밝혔다. 콥트교 참수를 두고 ‘종교 전쟁’으로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슬람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IS 등 테러단체를 ‘급진 이슬람(radical Islam)’ 대신 ‘폭력적 극단주의(violent extremism)’로 표현해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있지만 콥트교 참수의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콥트교 참수는 IS가 이교도 살해를 통해 아랍세계의 ‘종교적 동질성’을 각성시켜 잔혹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참수행위 자체는 비난을 받지만 이슬람을 모독하는 이교도에 맞섰다는 종교적 명분은 아랍의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은 항상 종교전쟁이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선은 항상 자신이고 이교도는 악일 뿐이다. 기독교도 종교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고 종교재판을 통해 무고한 피를 뿌렸다. 근세 들어 서방국가들이 제3세계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면서 기독교의 우월적 위상을 강요해 식민지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갖게 한 것도 지금 겪고 있는 종교갈등에 일조를 했다.
종교적 믿음이 광신이 되면 합리성은 결여되고 이성은 마비된다.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는 광적인 신앙은 일종의 허상을 만들고 이에 빠지면 끝까지 고수하게 된다고 했다. 참수와 화형 등의 만행을 저질렀을 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란 질책에 ‘신께서 명령하셨다’라는 답이면 충분히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이슬람이 적극적인 포교의 전통없이 지금의 신자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관용의 정신을 꼽는다. 이슬람 경전 코란 109장(불신자편)에는 ‘불신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숭배하는 것을 내가 숭배하지 않고 내가 경배한 것은 너희가 경배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참수한 IS가 새겨야 할 경구다.
인명살상에 면죄부를 주는 종교는 없다. 이교도 참수를 ‘거룩한 성전’으로 미화해도 IS는 잔혹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콥트교는 이집트에서 자생한 기독교 교파다. 예수의 제자 마가가 이집트 북부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세우면서 시작됐다. 예수의 인성은 인정하지 않고 신성만을 강조해 로마교단으로부터는 분리됐지만 기독교 최초로 수도원을 건립했었다. 현재 이집트 인구의 10%로 추정되는 1000만명 정도가 신자로 알려지고 있다.
콥트교도 참수는 IS의 이제까지의 테러와는 성격이 다르다. 전례를 보면 IS와 이슬람 무장단체의 살해 대상은 주로 중동지역에 파견된 구호활동가나 언론인 등이고 대부분 서방국가 출신이었다. 그런데 이번 참수 대상은 IS에게는 이교도인 아랍권의 ‘기독교인’이었다.
이슬람과 서방의 대립에는 항상 뿌리깊은 종교적 갈등이 잠재해 있다. 드러내기를 꺼리고 인정을 하지 않을 뿐 불편한 진실은 존재한다. 테러가 발생하면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국한시키고 동기도 석유문제 팔레스타인 사태 등 경제.외교적인 문제로 규정해 봉합한다. 테러의 대립 주체는 항상 ‘아랍’과 ‘서방’이고 수면 아래 가려진 종교는 양측 모두 거론을 자제해 왔다.
이번은 양상이 다르다. IS는 참수 동영상에서 희생자들을 ‘이슬람에 적대적인 콥트교 신자들’이라며 ‘참수는 이교도에 대한 성전’이라고 밝혔다. 콥트교 참수를 두고 ‘종교 전쟁’으로의 확산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슬람 지도자들의 요청에 따라 IS 등 테러단체를 ‘급진 이슬람(radical Islam)’ 대신 ‘폭력적 극단주의(violent extremism)’로 표현해 종교적 색채를 배제하고 있지만 콥트교 참수의 파장은 가라앉지 않는다.
콥트교 참수는 IS가 이교도 살해를 통해 아랍세계의 ‘종교적 동질성’을 각성시켜 잔혹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참수행위 자체는 비난을 받지만 이슬람을 모독하는 이교도에 맞섰다는 종교적 명분은 아랍의 공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잔인한 전쟁은 항상 종교전쟁이었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200여 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이를 증명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선은 항상 자신이고 이교도는 악일 뿐이다. 기독교도 종교의 이름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살상했고 종교재판을 통해 무고한 피를 뿌렸다. 근세 들어 서방국가들이 제3세계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면서 기독교의 우월적 위상을 강요해 식민지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갖게 한 것도 지금 겪고 있는 종교갈등에 일조를 했다.
종교적 믿음이 광신이 되면 합리성은 결여되고 이성은 마비된다. 아일랜드 시인 토머스 무어는 광적인 신앙은 일종의 허상을 만들고 이에 빠지면 끝까지 고수하게 된다고 했다. 참수와 화형 등의 만행을 저질렀을 때 ‘왜 그런 행동을 했는가’란 질책에 ‘신께서 명령하셨다’라는 답이면 충분히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
종교학자들은 이슬람이 적극적인 포교의 전통없이 지금의 신자를 갖게 된 이유 중 하나로 관용의 정신을 꼽는다. 이슬람 경전 코란 109장(불신자편)에는 ‘불신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숭배하는 것을 내가 숭배하지 않고 내가 경배한 것은 너희가 경배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을 뿐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교도를 참수한 IS가 새겨야 할 경구다.
인명살상에 면죄부를 주는 종교는 없다. 이교도 참수를 ‘거룩한 성전’으로 미화해도 IS는 잔혹한 테러리스트일 뿐이다.
김 완 신 / 중앙일보 LA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