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여자
남자가 예쁜 여자를 만나면 3년이 행복하고,
착한 여자를 만나면 30년이 행복하고,
지혜로운 여자를 만나면 3대가 행복하다는 어느 카스 글을 보면서 많은 남성들이절대 공감하는 내용일 것 같아 그 글을 나는 계속 읽어나갔다.
세 남자가 죽어 옥황상제 앞에 섰는데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 테니 말해보라고 했다.
첫 번째 남자는 부자가 돼달라고 했고
두 번째 남자는 권세를 구했는데
세 번째 남자는 여자를 원했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마음을 편하게 하는 착한여자와 살림 잘하는 부지런한 여자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입만 열면 향기로운 말이 터져 나오는
지혜로운 여자를 구했다.
그러자 옥황상제가 벌떡 일어나 화를 내면서,
‘이 정신 나간 녀석아~~~ 그런 여자가 있으면 널 주겠니?
내가 차지하자…!!!’
나는 이 내용을 보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쁜 사람 대신 못 생긴 사람을 만나면 3년 동안 불행을 느끼고,
착한 사람 대신 사악한 여자를 만나면 30년이 불행할 것이고,
지혜로운 사람 대신 미련한 사람을 만나면
3대가 불행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외모는 볼품없다 해도
성품이 착하고 지혜롭게 배필의 역할을 잘 감당한다면
배우자와 가족 모두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외모가 잘나도 환경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얼굴값 하듯 마음씨가 바르지 못하고 이웃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지혜 없는 사람과 산다면
3대가 가기 전에 하루하루가 지옥이 따로 없듯이
아무 낙 없이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오매불망
첫째도 예쁜 여자 둘째도 예쁜 여자 셋째도 예쁘고 배경 좋은 여자만 찾는다.
나이가 들어도 사람 보는 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아직도 진정한 지혜의 가치를 모르거나 아니면 철이 덜 든 아이처럼 여전히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이 좋다는 가치관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마치 돼지에게 돼지우리를 깨끗하게 청소해 놔도잠시 후 또 시궁창 속에 들어가 들어 눕거나 돼지에게 진주를 줘도 밟아버리듯 삶의 지혜를 안다는 자체가 얼마나 복된 인생인지 우린 살아가면서 수없이 경험해 보지만바보같이 선택은 항상 현세적인 것만 추구하기에 돼지의 포만감은 있을지 몰라도 독수리의 눈이 없어때를 바로 대비하지 못한 채 껄껄하다가 좋은 세월 다 보내는어리석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카알라일은 머리는 명석하나 성격도 괴팍하고 재산도 없고
장래성도 보이질 않아 결혼 당시 아내였던 웰시에게
사람들은 불행한 결혼을 했다고 수근 거렸다.
하지만 웰시는 남편을 믿었기에 결혼 이후 시골로 내려가 바느질을 하면서조용히 그의 곁을 지킬 때 남편은 성격도 변하고 병도 고쳐지면서 저작에만 몰두한 결과
<프랑스혁명사>라는 고전적인 명작의 저자로 에덴버러 총장으로유명한 평론가로 전 런던 시민들의 우상처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오로지 그의 아내 웰시 여사의 섬김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렇듯 지혜는 평범한 것을 위대한 것으로
고통을 보석으로 만드는 마법과 같은 힘이 있기에 지혜 있는 자를 얻는 다는 것은
세상 어떤 보화와 바꿀 수 없는 가장 값진 진주와 같은 것이다.
“아름다움은 얼굴에 있지 않다.
그것은 마음속의 빛이다.”
칼린 지브란 말이 무색할 지경으로
사람들은 여전히 외적인 신데렐라만을 찾고 구하고 있다.
사람들은 정말 모를까.
완전한 외적인 아름다움도 사실 내적인 향기에서 비롯됨을 안다면 그는 지혜로운 사람임에 틀림없다.
내면의 향기란 외모와 상관없이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상대의 말을 잘 경청하고 공감하는 매너가
타인의 관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사람을 말한다.
그야말로 타인의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여자다.
21세기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고 상대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매력을 발 빠르게 훔치는 여성이
우리가 그리도 찾고 있는 지혜로운 여성이 될 것이다.
바이블에서도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지만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헌다고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성이다.
현숙하고 지혜로운 여인 신데렐라는 지금 이 시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야곱은 형의 분노를 피해 하란의 한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났다.
이상하게도 종 엘리에셀도 이삭의 아내가 될 리브가를 우물가에서 만났다.
수백 년 후 모세도 아내가 될 십보라를 만난 곳도 역시 우물이 아니었던가.
몇 천 년 이후 예수도 수가성을 지나다 한 여인을 만난 곳도 역시 우물가다.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지혜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땅 속에 있는 물과 함께 여자를 지혜로 보는 것은
그들은 가정을 세우기 때문이다. 우물가에서 시작 된 세 족장의 가정은
그 곳에서 지혜로운 여성을 얻어 고난의 과정 속에서도 지혜롭게 잘 극복하여
존귀한 가정을 일구었음을 상징하고 있었다.
왜 물과 여성을 지혜로 비유하며 상징했을까.
깊게 생각할 것 없이 답은 쉽게 나온다.
조용히 흘러간다. 물은 모든 것을 덮는다.
물은 모두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물은 결국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게 하는 근원이다.
지혜로운 여인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아무리 옳아도 시끄럽지는 않는 덕이 있기에 물처럼 조용히 흘러간다.
지혜로운 여인은 물처럼 모든 것을 덮는다는 것은
앞뒤전후 모든 상황을 봐가며 지혜로운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지혜로운 여인은 모두에게 생명이 되기에 가업을 이룰근
외적이고 내적인 많은 열매를 거두게 하므로
30년 아니 3대가 행복하다고 말한 것이다.
주여, 룻의 지혜로운 선택,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
에스더의 지혜로운 결단이 제게도 있게 하옵소서.
하지만 최고의 지혜는 십자가(十字架)입니다.
당신의 은혜로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내 십자가를 감당케 하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글보낸이: 김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