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선 STORY- 1, 2

이지선 STORY <1,2>

*‘지선아 사랑해’로 온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이지선씨가 한동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는 소식을 며칠전 전해드렸습니다. 이지선씨는 2002년 12월 국민일보 [나의 길 나의 신앙] 코너를 통해 소개하면서 화제를 얻었는데요. 당시 이지선씨가 우리 지면을 통해 전해준 감동 스토리를 다시 한 번 보시죠. 15년이 지났는데도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지선씨의 스토리는 여전히 감동스럽습니다.   (국민일보)

[나의 길 나의 신앙] 교통사고 딛고 새인생 이지선씨 (1) 

국민일보 | 2002.12.05 

*만취운전 사고 피해로 온몸 중화상<뉴스 광장> 만취운전 6중 추돌사고(2000.7.30)
 

이지선씨. 강민석 기자

앵커:“어젯밤 11시30분쯤 서울 한강로1가에서 서울 후암동 마흔두살 김모씨가 만취 상태에서 갤로퍼를 몰다가 마티즈 승용차 등 6대와 추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경기도 안양시 갈산동 23살 이모씨가 온몸에 2도의 중화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갤로퍼 승용차 운전자 김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5%의 만취 상태였습니다” 

2000년 7월30일. 

아무렇지도 않게 늘 남의 이야기로만 들어오던 뉴스속 ‘이모씨’가 되었습니다. 그 뉴스속 이모씨의 실제는 뉴스처럼 그렇게 짧지도 간단하지도 않았습니다. 돌이킬수 없는 3도의 중화상이 온몸에 남았고 죽음과의 싸움은 그 ‘긴급 후송’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올해로 스물다섯살이 된 ‘이모씨’는 1978년 5월24일과 2000년 7월30일 2개의 생일을 가지고 있는 저 이지선입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길에서,귀한 지면을 빌려 이제 겨우 시작한 제 길을,남보다 조금은 무거운 한 발자국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쁨으로 뗀 그 한 발자국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엄청나고 무서운 불속에서 저를 건지신 하나님과 자기 팔을 태우면서 동생을 구해낸 오빠의 용감함과 사랑에 감사하며 이제 덤으로 사는 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합니다. 

공직에 계신 아버지와 사랑많은 어머니,많이도 싸우고 자랐지만 유별나게 친했던 세살 많은 오빠와 저 이렇게 네 식구가 사는 우리 집은 평범하지만 매우 단란한 가정이었습니다. 아빠의 전근지를 따라 부산 대전 대천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대학생이 되면서 경기도 안양 평촌신도시로 이사했고 학교가 가까웠던 오빠와 함께 작은 자동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돼서야 정말 하고 싶었던 공부를 찾았고 대학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여름방학에도 도서관에 다니며 준비했습니다.
 

화상의 상처를 이겨내고 밝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지선씨(오른쪽)와 어머니 심정 씨가 우산을 쓰고 나들이에 나섰다. 국민일보DB

제게 두번째 생일이 된,하마터면 사망일이 될 뻔했던 2000년 7월30일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던 가족 여름여행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이었습니다. 그날 주일예배를 마치고 오빠와 저는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습니다. 참 이상한 날이었습니다. 공부를 하려고 앉았지만 오빠도 저도 왠지 집중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집에 갈까 말까,저녁을 먹을까 말까,만나서 같이 먹을까 말까…별 것도 아닌 일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시간만 흘렀습니다.

그리고 밤 10시10분 학교 후문에서 오빠를 만났습니다.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있는 날이면 늘 거기서,그 시간에 오빠를 만나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오곤 했습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오빠를 만나 차에 탔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날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됐습니다(그후로는 기억이 나질 않아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를 대신 씁니다) 
 

졸업 앨범 찍던날 친구가 찍어준 사진

용산쯤 와서 신호등이 바뀌어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습니다. 오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뒤에서 “끼익” 하고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어디서 사고나는가 보다”하고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미 사고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필자 약력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졸업 △2000년 7월30일 6중 추돌사고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음 △일본 도쿄에서 공부하며 홈페이지 지선이의 주바라기 운영 △동경중앙영광교회 출석 

정리=김병철 기자

 

[나의 길 나의 신앙] 교통사고 딛고 새인생 이지선씨 (2) 

국민일보 | 2002.12.06 

*오빠 도움으로 화염속 기적같이 생존신호에 걸려 정지해 있던 우리 차에 술을 마시고 이미 작은 사고를 내고 도망치던 갤로퍼 지프가 돌진해와서 충돌했습니다. 우리 차는 그 충격으로 앞차를 추돌하고 튕겨져나와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서 오던 차와 다시 충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차는 두바퀴 돌아 다시 그 갤로퍼에 쳐박혀버렸습니다. 
 

이지선 페이스북 캡처

오빠가 정신을 차린 것은 차가 빙글빙글 돌고있을 때였습니다. 머리 뒤쪽이 후끈하여 일어나 옆을 보니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안전벨트를 풀고 열려진 창문(오빠는 늘 창문을 열고 다녔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으로 어떻게 나왔는지도 모르게 순식간에 빠져나와 조수석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혹시 제가 그 옆으로 떨어졌는지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때 무심코 오빠가 차 뒤쪽을 보니 흰 양말을 신은 제 다리가 보였다고 합니다. 갤로퍼와 우리 차 사이에 다리가 걸쳐져 있었고 이미 제 상체는 불길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충돌과 함께 연료통이 터졌고 차가 몇 바퀴 돌면서 불이 붙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불 위로 떨어졌고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오빠는 저를 꺼내려고 제 두 다리를 잡고 끌어당겼지만 움직이지 않아 제 상체를 위로 띄우듯 당겨서 저를 끄집어냈다고 합니다.  
 

국민일보 DB

오빠는 불길에 휩싸인 저를 보고 급한 마음에 불을 끄려고 저를 껴안았습니다. 그때 오빠 팔에도 불이 붙었고 순식간에 피부가 타서 벗겨졌습니다. 그래서 오빠는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불을 껐다고 합니다. 불을 다 껐을 때쯤 한 택시기사 아저씨가 수건을 들고와 도와주었을 뿐 사고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그때 “빨리 비켜요!차가 폭발해요!”라고 누군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리고 오빠가 바삐 저를 안고 몇 발자국 옮겼을 때 우리 차가 폭발했습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1∼2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정말 모든 일이,엄청난 일이 ‘순간’에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정신이 든 저는 오빠에게 “오빠,지금이 몇 년이야? 2000년이야?”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꿈이라고 생각되었나 봅니다. 무의식적으로 저는 꿈이라고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말을 했다고 합니다.  

“오빠,나 이렇게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착한 오빠는 제가 아파서 고통받을 때마다 아마 이 말을 되뇌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괜한 짓을 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내게 미안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빠의 슬픈 눈에서,어쩔 때는 눈물을 참기 위해 웃는 그 슬픈 웃음에서 그런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국민일보DB

얼마전 오빠와 함께 TV를 보는데 뮤직비디오에서 애인이 타고 있던 차에 불이 나자 밖에 있던 여자가 어찌할 바를 몰라 울부짖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걸 보던 오빠가 농담반 진담반으로 “저렇게 밖에서 보고만 있어야 되는건데 괜히 꺼내어 가지고 이 고생을 시킨다. 그렇지? 네가 발을 내밀고 있어서 그랬지.으이구∼”하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는 살맛 나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백번 잘 꺼냈지!”라고 대답했지요. 오빠가 참 좋아했습니다. 처음엔 저를 구해낸 것이 실수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이 실수가 아니었음을 우리 하나님께서 계속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미 제 안에서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으로 믿습니다. 이전의 저였으면 믿지 못할,다 이해하지 못할 평안을 맛보게 하시는 분,이 모습이라도 ‘행복’을 느끼게 하시는 분,이전보다 더 크고 풍성한 것들을 알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합니다. 

정리=김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