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道). 진리(眞理). 생명(生命)

 

★ 길(道). 진리(眞理). 생명(生命) ★


만일 애굽이 피라미드(Pyramid)을 쌓지 않고

로마와 같이 길을 닦았다면 역사 방향이 달라졌을 것이며,

 만일 진시황이 만리장성 대신 미국과 같이 하이웨이를 건조했다면

오늘의 인류는 한문을 배우기에 바빴으리라.

사가와 문호들이 즐겨 쓰던

그 “전 세계의 길은 로마로!”란 명언은
오늘  “전 세계의 길은 미국으로!”
바뀌어도 잘못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렇듯 길은 문화와 인류의 생동 요소요,

혈맥이며, 채널이요 관문이며, 교량이요, 연결이다.

예수님이 직접 당신을 소개하기를 “나는 그 길”이라 했으니

얼마나 소탈하고 꾸밈없는 직접 표현이랴.

진리는 형용사로 사용되지 않고 명사로 쓰면서

 희랍 원어에는 상기 세 가지
명사 앞에 일일이 정관사를 붙인다.

이것은 예수 자신이 “길, 진리, 생명” 자체 이심을 역설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위해 죽었고,

간디도 진리를 외치다가 숨졌다.

그러니 예수님은 진리를 위해 죽은 것이 아니라

죄인을 위하여 불의한 자를 구원하기 위해
경건치 않은 자의 구속을 위해 대신 죽으셨다.

그러기에 칼 라일의 말대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성자의 죽음이라면

예수의 죽음은 하나님의 죽음’이란 말은 참된 표현이다.

일찌기 저기에 영원이 있고(플라톤),

진리를 죽도록 연구해야 하고(불가),
진리를 보급하던 명인들이(헬레니즘)

다 사라진 뒤 33세의 약관인 목수 출신,
나사렛 촌양반이 “내가 곧 진리”라 했으니

 C. S. 루이의 말대로

 “이 말을 사실로 받든지 아니면 사기 행각자의 거짓으로 돌리든지”

판가름을 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생명의 정의는 언제나 “영생”을 의미하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생명으로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요 10:10) 오신 것이며,
자기는 죽고 우리를 대신 살리기 위해 오신 것이다.

죄로 죽은 우리가 영생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살다가 영원 세계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이 주님의 초림의 목적이요,

재림의 목적이 된다.

신 ․ 구약에서는 언제나 생명과 결부시켜

하나님은 창조자요 인생은 피조물이며,
하나님은 목자요 우리는 양이며,

하나님은 아버지요 우리는 인정받는 자녀라 했으며,
하나님은 심판주요 우리는 죄인이다.

 생명관계로 결합되지 않는 그 어떤 관계도 중요한 일은 없다.

기독교의 복음은 수양을 역설하는 행위 규범이나 철학.

진리를 깨달아야 속죄되는 이치나
혹 열반이나 연옥에서 적선을 해야 천국에 올라가는 자연 종교와는 다르다.

타 종교에서 인간 자력을 강조하고

그 무엇(제3인칭)을 요구하는 조건이 있으나,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3인칭이 아니라

 2인칭 단수 영원한 당신만이 전부이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믿고 진실하게 사는 당신이길 …..

 

글 보낸이 : 김광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