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봅니다”… 시력 잃은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


 제임스 패커 리젠트칼리지 명예교수는 최근 시력을 잃은 후 인터뷰에서 “나이듦은 하나님이 더 나은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이라며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살아가자”고 말했다. 

 

“더 이상 볼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하나님을 봅니다”… 시력 잃은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


“실명은 ‘본부’로부터 내려 온 명백한 사인” 천국 향한 여정에 있어


 

금세기 최고 복음주의 신학자인 제임스 패커(J. I. Packer) 리젠트칼리지 명예교수가 최근 시력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미국 개신교 단체인 ‘복음연합(The Gospel Coalition)’에 따르면 패커 교수는 지난해 성탄절 즈음, ‘황반변성’에 의해 실명(失明)했다. 중심 시력을 담당하고 있는 황반부에 이상이 생겨 치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신경은 손상되지는 않았지만 글을 읽거나 쓸 수 없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하지만 패커 교수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는 복음연합과의 인터뷰에서 “하나님은 그가 하시는 일을 안다. 실명은 ‘본부(headquarters)’로부터 내려 온 명백한 사인이 아니겠느냐”며 자신이 천국을 향한 여정에 있음을 담담히 밝혔다. 패커 교수는 올해로 89세(1926년생)이다. 매일 30분간 천국을 묵상하고 있으며, ‘성경 암송’으로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다고 근황을 밝혔다. 

그는 ‘나이 듦’에 대해 “하나님이 더 나은 세계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방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욥기 1장 21절 말씀을 암송하면서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다. 나는 거의 아흔 살이 됐다. 이제 주님이 데려가실 것”이라며 “일생 동안 주님의 선하심을 충분히 경험했다. 어떠한 의심도 없다”고 했다. 

패커 교수는 삶 속에서 구약의 ‘전도서’를 통해 지혜를 얻었다. 그는 젊은 시절 냉소주의에 빠져있을 때 전도서를 읽고 치유됐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전도서를 재차 언급했다. 그는 “전도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계획하고 주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어리석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라며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지혜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 십년 째 성경 묵상과 암송을 반복해온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앞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성경을 암송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목적 그리고 일하심을 더욱 집중하게 한다”며 “이 모든 것이 심령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패커 교수는 생명력 있는 교회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개혁교회는 은혜의 교리와 은혜의 삶을 재발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회 안의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며 “하나님의 목적은 주님의 영광을 기념하는 교회 자체에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요즘 교회들이 제도와 교파적 경계를 초월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교회다움(churchliness)을 향한 시도일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교회 안에 만연된 개인주의 극복 대안으로 청교도들의 개성(individuality)적 신앙을 예로 들었다. 그는 “청교도들은 교회에 충실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님의 은혜를 위해 교회를 세웠다”며 “청교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Communion with God)를 가장 중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 교회를 향해 4가지 단어로 권면했다. “모든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십시오”(Glorify Christ every way).

패커 박사는 마틴 로이드 존스, 존 스토트와 함께 20세기 복음주의의 대표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79년부터 교수로 활동하며 개혁적 복음주의 신학의 지평을 넓혀왔다. 300여권의 책과 사전 편집, 기고문 등을 써왔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등 ‘지식’ 시리즈로 유명하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