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 하나님 되심을 알기 위해서

글쓴이: 김정호 목사(뉴욕 후러싱 제일 연합감리교회)
올린날: 2024년 5월 15일

UMC 총회에 참석했던 김정호 목사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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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총회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 3일, 700여 대의원들이 참석하여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래리 맥코믹, 연합감리교뉴스.
노스캐롤라이나 샬럿에서 열린 연합감리교회 총회 마지막 날인 2024년 5월 3일, 700여 대의원들이 참석하여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 래리 맥코믹, 연합감리교뉴스.

연합감리교회 총회가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라는 주제로 4월 23일부터 5월 3일까지 두 주간 샬럿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총회는 수십 년간 끌어왔던 동성애자 안수 금지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이미 약 7,600개의 교회가 해당 문제로 인해 교단을 떠났기 때문인지, 반대표를 던졌던 총회 대의원들 대부분이 교단을 떠났기 때문인지, 장정에 동성애 관련 언어를 삭제하자는 안건의 찬성 비율이 93%가 넘었습니다. 이는 또한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 대부분의 지지를 받은 것이며, 우리 한인교회보다 더 전통주의적 보수신앙을 고수하는 아프리카에서 온 대의원 중 절대다수가 지지했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번 총회는 더 이상 이 사안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을 하지 말자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큰 진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안건이 예상과는 달리 원만하게 통과되자, 그 이후의 안건들도 비교적 순조롭게 통과되는 것 같았습니다.

성소수자들이 목사가 되는 길은 열렸지만, 동성애를 지지하는 문구가 채택되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전통적 신앙’을 고수하고자 하는 교회나 목사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법안이 만들어졌는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1. 감독은 파송할 때, 해당 교회의 신앙 전통에 맞는 목회자를 파송한다.

2. 동성 결혼 주례 및 장소 제공 여부와 권한은 개체교회와 담임 목사에게 있다.

3. 이와 관련하여 어떤 교회나 목사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이번 총회의 결정이 한인 교회에 큰 변화를 불러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연합감리교회뿐 아니라, 미국 내 모든 교단과 교회가 교인 수 급감이라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동성애자 목사 안수 논란이 있는 진보적 교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보수신앙을 고수하는 남침례교회도 지난 20년간 4백만 명의 교인이 줄어들었을 만큼 모든 교회와 사회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따라서 이런 교인 감소라는 상황에 나온 총회의 결정은 전통적 신앙에 익숙한 일선 교회에는 더 큰 도전과 어려움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스스로 동성애자라고 밝힌’ 목회 후보자에 대한 안수 금지 조항이 삭제된 후 휴식 시간에 사람들이 서로 껴안으며,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 김응선 목사, 연합감리교뉴스.

이번 총회의 결정은 성소수자들의 인권이나 존엄을 파괴하는 언행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통적 신앙을 가졌다고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단에 남아서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말은 안 될 말입니다.

또한 이번 총회 결정은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이 대륙마다, 나라마다, 심지어 개인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등이 용납되지 않는 것처럼, 성소수자의 인권도 존중되어야 하며, 이 말은 곧 동성애자 감독이나 감리사가 되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변화가 한인교회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입니다.

총회를 마치면서 전도서의 ‘때(time)’를 생각했습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도서 3:1)

이제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때가 어느 때인지 분별하는 현명한 지혜입니다. 지금은 무너진 것을 세우고 상처를 치유하고 평화를 이루고 사랑할 때입니다. 사람의 피부색으로 인격을 판단하면 안 되는 것처럼, 성소수자들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그들을 환영하며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연합감리교회 총회의 결정입니다.

앞으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될 것입니다.

제 페북에도 벌써 글로벌감리교회로 간 목사들이 연합감리교회를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저는 그동안 글로벌감리교회로 간 교회들에 대해 비난하고 조롱하는 연합감리교회에 속한 사람들의 글을 못난 짓들이라 여겼는데, 이제는 그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히 교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신문에, 연합감리교회나 연합장로교회와 같은 교단은 성경의 진리와 성령을 떠났으니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비난의 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물론 성령은 어느 누가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양 그런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 두려운 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얼마 전 차정식 교수의 ‘신념은 지성이 아니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에서 차 교수는 한국의 어느 신학교에서 벌어지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신앙고백이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교수를 징계하려는 사건에 관해 쓴 것입니다. 차 교수는 참된 신앙은 이데올로기화된 신념이 아니라, 합리적인 사고와 논리적인 분석, 그리고 의미를 규명하고 해석하는 사유의 힘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지성이 결여된 신념은 파괴적으로 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총회 결과를 보면서, 제가 그동안 목회를 잘 못했다는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지난 수년간 교단 분리 문제로 인한 갈등을 보면서도, 진정한 연합감리교회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목회를 했다는 것을 회개합니다.

연합감리교회 목사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신학하는 과제’(Theological Tasks)를 수행하는 것인데, 그동안 저는 그것이 부재한 목회를 했습니다. 또 연합감리교인은 사고하는 지성을 겸비한 신앙을 존중하고, ‘거룩한 대화’의 중요성을 이해해야 하는데, 성도들을 그러한 측면으로 충분히 훈련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기 도취적 신념에 빠진 사람들이 목사가 되거나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것을 방치했습니다.

‘신학하는 과제’는 성경과 전통, 이성과 경험의 조화를 책임 있게 판단하는 분별력을 키우는 것인데, 저는 그러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런 훈련이 있는 목회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교단 분리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 어마어마한 괴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감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교인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제국주의적 권력의 횡포와 교인들을 식민지 백성으로 여기는 것 같은 무례함을 본 것이 여전히 큰 충격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만을 잘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연합감리교회에서 주체적이고 책임감을 가진 한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최선 다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번 총회의 주제인 시편 46:10 말씀 “너희는 가만히 있어(잠잠히)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처럼, 하나님만 ‘하나님 되심’을 알기 위해 잠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총회의 주제와 달리,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교단은 시끄러웠습니다. 사람들도 가만히 있거나 잠잠하지 않았고, 교단 분리 문제로 교회들도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물론 초대교회도 시끄러웠고, 분쟁과 분열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령 충만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떤 역사의 현실에서도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십니다.

저는 이번 총회에서 보여준 한인총회 리더들의 리더십에 감사합니다. 한인총회 회장단은 총회에 참석한 한인 지도자들을 모아서, 교단의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담당하자며, 마음과 뜻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을 실천하고자, 현재 교단 세계선교부(GBGM)에 속한 140명 선교사 모두에게 최소한 한 달에 $100 이상 지원하기로 발표했습니다. 무척 자랑스럽고 감사했습니다.

사람은 삶의 자리에 따라 살아가는 모습과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동네에 있던 우물과 개천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시카고에서는 미시간 호수, 애틀랜타에서는 차타후치 강을 즐겼습니다. 지금은 뉴욕에서 대서양 바다에 자주 나가서 걷는데, 내가 어디에 사는지, 어느 시대에 사는지에 따라 제 주변의 환경이 바뀌는 것처럼, 삶의 지혜와 방식도 변합니다.

연합감리교회는 바다와 같은 거대한 교단이지만, 각 교회는 서로 다른 강, 호수, 바다처럼 다양한 현장이 존재합니다. 어디든 물이 고여 있으면, 곧 썩어서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물은 계속해서 흘러야 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샘물이 생수의 강이 되어 흐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천과 강의 물이 흘러 바다로 가야 하듯, 연합감리교회는 각각 색이 다르고 맛이 다른 개천과 강 같은 교회들이 모여서 흐르고 모아져서 이루어진 바다와 같은 연합체입니다. 때론 각 교회가 바다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울지라도, 바다는 모든 것을 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품는 것이 바다의 정체이며, 연합감리교회도 그와 같습니다.

바다는 언제나 기회와 동시에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파도가 닥칠지 알 수 없기에 이제 우리는 파도타기를 배워야 합니다.

셀틱 영성 전통 기도문 가운데 아이리시 어부들의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바다는 너무 크고 우리가 탄 배는 너무 작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하나님 되심을 알기 위해서 잠잠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