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여, 다시 통일의 꿈을 꾸자

 

한국교회여, 다시 통일의 꿈을 꾸자


 



최근 남북공동 평화통일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 평양을 다녀왔다. 외관상으로 평양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무도 많이 심겨 있었고 오래된 저층 아파트를 고층 아파트로 건축하고 문수 물놀이장을 비롯해 위락·복지시설을 많이 해 놓았다. 아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향수를 자극하고 북쪽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정책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평양에 가서 보니 통일이 더 멀게만 느껴졌다. 남쪽에서는 김정은 정권이 불안해 금방 붕괴될 것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니 김 제1위원장이 권력을 공고히 다져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통일은 하나님이 해 주셔야지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첫째, 균형 있는 안목과 사고를 가지고 통일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깊어져가고 있다. 특별히 진보와 보수의 양극화 현상이 극심하다. 극단적 보수는 남북한의 모든 문제를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만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남북 정상회담이나 남북한의 교류와 대화 따위 등을 백해무익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극단적 진보 쪽에서는 사상이나 체제 문제는 뒷전으로 두고 그저 무조건 단일민족이라는 패러다임과 환상적 통일론에 빠져 있다.

우리는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기본 전제로 한 상태에서 민족 교류나 대화, 상호 지원을 열어가야 하는 균형적 태도를 취해야 한다. 또 지나친 환상적 통일론에 빠져서도 안 되고, 환상적 민족주의에 빠져서도 안 된다. 한국교회는 통일 문제를 통합적인 안목과 입체적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마음속으로 깊이 통일을 염원하며 새로운 통일 비전을 꿈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분단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 막대기의 비유를 통해 남북통일의 비전을 심어주셨지 않은가. 두 막대기들을 서로 합하여 하나가 되게 하라(겔 37:17)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의 통일 비전은 갈수록 후퇴해 가고 있다. 2000년 69%, 2004년 30%, 2006년 14%, 2014년 13%만이 신속한 통일을 원하고 있다. 이유는 엄청난 통일비용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이 망하면 우리도 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잠깐 힘들고 어렵더라도 통일을 이루어야 세계 속의 위대한 한민족이 될 수 있다. 과연 통일은 대박이 될 것이다. 부산에서부터 서울, 평양, 러시아, 북유럽까지 유라시아 철도 하나만 놓이더라도 일본과 비교가 안 되는 부강한 민족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자손들에게 얼마나 큰 민족적 유산이 되겠는가.

셋째, 넓은 가슴과 아량으로 북을 포용하며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안보와 사상 문제를 제외하고는 통일을 위한 그 어떤 희생과 섬김의 대가도 지불하고 양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분이겠지만 1990년대부터 중국으로 진출해 갑자기 돈을 번 졸부들이 조선족과 한족들에게 월급 몇 푼을 주면서 온갖 무시와 구박을 했다고 한다. “이 땅이 옛날 우리 고구려 땅이었다”고 하면서.

이 사실이 중국 공안에 보고돼 투자한 기업들을 빼앗기고 알거지가 되어 돌아온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일로 인해서 중국으로 하여금 ‘동북공정’을 더 재촉하게 했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좀 더 잘살고 북한보다 발전했다고 오만하거나 거만한 자세를 보이면 안 된다. 오히려 넓은 가슴과 아량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군사는 대치하고 정부는 조건을 걸면서 회담을 하지만 교회는 무조건적인 섬김과 희생을 계속해야 한다. 마치 독일교회가 그랬듯이. 한국교회가 이렇게 하도록 정부도 도와야 한다.

어느새 우리 가슴에도 통일 비전이 사그라져 버렸지 않는가. 그러나 한국교회가 먼저 통일의 꿈을 꾸지 않으면 누가 꾸겠는가. 옛날 조국강산 방방곡곡, 새벽 차가운 교회 마룻바닥에 눈물을 쏟았던 것처럼 통일을 위해 기도하자. 뜨거운 목젖으로 외쳐보자. 아, 통일이여 어서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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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