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지붕 위의 바이올린’

우크라이나와 ‘지붕 위의 바이올린’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의 포스터. 사진 출처, IMDb.

 

우크라이나와 ‘지붕 위의 바이올린’

 

글쓴이: 김영일 교수(전 협성대학교 대학원장, 현 버클리 신학대학원 방문교수)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의 배경과 줄거리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인 1905년경 현 우크라이나의 작은 유대인 마을인 아나테브카(Anatevka)에 살던 테비예(Tevye) 가족의 이야기다.

 

이 작품의 원작은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20세기 초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 작가 숄렘 알레이헴(Sholem Aleichem, 1859-1916)이 우크라이나에 살던 유대인들의 전통과 사회를 배경으로 쓴 자전적 소설 <테비예와 딸들(Tevye and His Daughters)>이다. 이 책을 원작으로 탄생한 뮤지컬 <지붕 위의 바이올린(Fiddler on the Roof)>은 1964년 9월 미국 브로드웨이 임페리얼 극장에서의 초연을 시작으로 3,000회 이상의 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고, 이후 1971년, 노먼 주이슨(Norman Jewison) 감독에 의해 뮤지컬 영화로 제작되었다.  

 

조상이 물려준 유대인의 전통과 신앙을 고수하며 살아가던 테비예는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부모와는 다른 삶을 꿈꾸는 딸들의 간청과 그들의 애정 어린 눈빛에 결국 딸들의 사랑과 행복을 바라며, 변화를 수용하게 된다. 이것은 곧 새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는 오랜 시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적용되던 완고함과 갈등에서 벗어나 수락과 변화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넘어가는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유대인의 수난 역사와 디아스포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추려 보면, 1,000B.C.에는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었고, 993 B.C.에는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어 최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은 992 B.C.에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단되어, 북이스라엘 왕국과 남유다 왕국으로 유지되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721 B.C.에 멸망하고, 남유다 왕국도 586 B.C.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605-562 B.C.)에게 정복당했다. 이 과정에서 2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었다. (왕하 24:10-17)

 

‘바벨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1라고 부르는 이 사건을 통해, 바벨론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는데, 이를 ‘디아스포라(Diaspora)’라고 한다. 유대인의 강제 이주와 대학살 등의 비극적 역사는 바벨론 유수 전후로도 많이 발생하였다.

 

헬라어 ‘διασπορά’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통해(through)’라는 뜻의 ‘디아(dia)’와 ‘씨를 뿌리다(to sow)’라는 뜻의 ‘스페이레인(speirein)’이 합성된 단어로, ‘흩어 뿌려진 씨앗들을 통해’라는 의미다. 이 말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조국 유대교의 종교 전통 규범 및 생활양식을 그들의 삶 속에 유지하는 유대인들을 일컫는 고유명사로 쓰였다.

 

디아스포라는 또한 신약성경에 3번(요한복음 7:35, 야고보서 1:1, 베드로전서 1:1) 등장한다. 지극히 유대교적인 이 단어가 영어에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이후였다. 어느 인종이든 상당수의 인구집단이 다른 지역 또는 특정 국가로 이주하여 오래 살 때 그들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2

 

하나님은 때때로 선지자들을 보내시어 하나님과의 언약을 망각하고 죄 된 삶을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고 경고하셨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반역죄를 범하기 일쑤였고, 결국 위에서 언급했듯이,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성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끌려가기에 이른다. (예레미아 52장)

 

나라를 잃고, 낯선 이국땅인 유프라테스 강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은 자신들의 죄악을 회개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고향을 향한 마음을 달랬다. 그것을 잘 묘사한 작품이 베르디(Verdi)의 오페라 <나부코(Nabucco)>다. 그중에서도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 sull’ali dorate)’은 그들의 비통함과 간절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편 137)

 

    

사회 변화

 

사회학적 관점에서 사회를 인식하는 이론에는 크게 세 가지 학파가 있다.

 

그 하나는 기능주의(Functionalism) 혹은 구조주의(Structuralism)로, 사회란 수많은 요소가 서로 연관을 맺고, 상호의존적으로 하나의 큰 구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주장한 학자로는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 등이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상징적 상호작용주의(Symbolic Interactionism)로, 미시적 접근 방법을 통해 사회를 구체적으로 그리고, 세밀하게 관찰하며, 사회구성원인 사람들의 감정과 행동의 의미 및 상징과 몸짓 등에 초점을 맞추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인간은 느끼고 생각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의미와 상징을 인간관계 속에서 표출한다. 대표 학자로는 조지 허버트 미드(George Herbert Mead), 허버트 블루머(Herbert Blumer), 어빈 고프먼(Erving Goffman) 등이 있다.

 

 

마지막 하나는 갈등주의(Conflict Theory)로, 카를 마르크스(Karl Marx)에 의해 정립된 시각이다. 사회 속 갈등의 역할과 불공평한 힘에 관심을 두는 이 이론은 사회가 항상 변화하며, 그 변화는 필연적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회 속에는 갈등과 의견 충돌이 항상 존재하며,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힘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강제적인 힘 혹은 권력이 그 사회 안에 현존한다고 본다. 따라서 갈등주의적 관점에서 사회는 항상 변화하지만, 그 속에 있는 그룹 간의 힘의 불균형이 지속되어, 상호 간에 힘의 줄다리기가 계속 진행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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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한 장면, 사진 출처, IMDb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전통과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향해 몰아치는 도전의 대립 현상은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주목할 만한 주제다.

 

아버지 테비예가 이국땅에서 숱한 역경을 겪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긍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율법과 유대 전통에 따라 살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 시대의 젊은이들인 그의 딸들은 전통에 어긋나는 이방의 새로운 가치관을 쉽게 수용했다.

 

당시 유대인의 전통에서 결혼이라는 의례는 중매인이 정해주는 대로 짝을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장녀 자이틀(Tzeitel)은 부모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가난한 양복점 직공을 사랑한다며 그와의 결혼 허락을 청했고, 둘째 딸 호들(Hodel)도 아버지의 허락 없이, 진보 사회주의자 페르칙과의 결혼을 선언한다. 게다가 셋째 딸 챠바(Chava)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군인과 사랑에 빠져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첫째 딸의 결혼식장에서 테비예 부부는 아장아장 걷던 딸이 어느새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서운함, 걱정과 기대 등 온갖 감회가 교차했을 것이다. 자식의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마디를 치르면서 불안하면서도 기쁜 부모의 마음과 오랜 전통에 신실하고자 하나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유대인들의 고단한 현실은 그들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른 합창곡 ‘Sunrise, Sunset’에서 진중하고도 슬픈 멜로디로 표현되었다.

 

어쩌면, 새로운 내일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야 하는 인간들에게 사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요소일지도 모른다. 매일 해가 뜨고 지는 과정 중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도, 햇빛이 쨍한 날도,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정치적 상황 

 

우크라이나가 세계사에 등장한 것은 882년 ‘키이우 루스 공국’(882~1240)이 건립되면서부터다. 지금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벨라루스 일대에 자리를 잡았던 키이우 루스 공국은 몽골 제국이 키이우 루스 공국을 침공한 이후 정치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러시아는 옛 키이우 루스 공국의 영토를 거의 성공적으로 통합하며 강국으로 발전한 반면, 우크라이나는 여기저기 편입되면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17세기부터 러시아에 흡수되기 시작한 우크라이나는 18세기 후반 러시아에 합병되었다가 1917년 러시아혁명으로 러시아제국이 무너지자 독립 국가를 수립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크라이나는 1922년 러시아가 주도한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다가 이후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마침내 독립국이 되었다.

 

러시아어로 ‘우크라이나’는 ‘변경(borderland)’이라는 의미의 명사다. 러시아제국의 중심지인 모스크바를 기준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는 변경 지역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모두 자신이 키이우 루스 공국의 역사를 계승한 직계자라 주장하고 있다.

 

사실, 두 나라는 같은 슬라브족이며, 역사적으로 볼 때 한 뿌리이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를 증오하며, 독립국임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가 호시탐탐 우크라이나를 위협하고 협박해왔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서유럽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1905년 1월 22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평화 행진을 하던 노동자들에게 군대가 발포해 수천 명이 희생되었다. 러시아혁명의 시발점이었던 이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민중의 거대한 분노를 진정시키기 위해, 러시아 황제 차르는 유대인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고, 그들을 향한 정치적 탄압과 대학살(포그롬, pogrom)을 조직적으로 행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유대인 추방이라는 극악의 정책이 시행되자 유대인 게토인 아나테브카 마을의 사람들도 마을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되었다. 지금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2022년 12월 6일 기준으로 1,407만 명 이상의 피란민이 발생하고 사망자 수도 7,000여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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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한 장면, 사진 출처, IMDb

 

테비예와 바이올리니스트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할까? 아니, 왜 바이올린 연주자가 등장할까?

 

영화는 고요한 새벽,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그때, 한 사람이 지붕 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시작한다. 흥겹고 경쾌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느낌의 음악이다.

 

이 바이올리니스트는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러시아 군대가 마을에 들이닥쳐 유대인들을 몰아내고, 테비예도 눈이 내리는 겨울에 달구지에 짐을 싣고 고향을 떠나 미국으로 가게 될 때, 그의 뒤를 따르는 그림자처럼 또다시 등장한다.

 

테비예는 힘들 때나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하늘을 향해 말을 건넸다. 하늘은 열리지 않고 하나님도 침묵을 지키셨지만, 바이올린 연주자는 위에서 또는 뒤에서 나타나 테비예에게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이스라엘 역사의 핵심은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들을 선택하셨고,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면 그들을 응원하고 지켜주신다는 믿음을 신앙 전통으로 이어간다는 점이다.

 

계속되는 걱정과 근심 그리고 고난 속에서도 테비예가 하나님을 굳게 믿고 기도했을 때, 바이올린 연주자가 그림자처럼 테비예를 따라다니며, 흥을 돋우고, 용기를 주며, 다시 일어나 전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듯이, 가파른 지붕 위에서 연주하는 불안정한 상태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전통을 유지하려 애쓰는 불확실하고 애잔한 이들의 삶을 위무하는 은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가족의 소중함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사랑은 특이하다.

 

우유 배달을 하며 아내와 다섯 딸과 함께 가난한 살림을 이끄는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 테비예는 딸들의 탈전통적 윤리에 직면한 후,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갈림길에 서서 마음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얼마 동안 씨름했겠지만, 결국 딸들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 유대 전통의 틀에서 벗어나 변화를 추구하였다.

 

즉, 상황적 윤리에 마음이 기울어져, ‘꼰대’3 심리를 털어내고 전통 대신 가족의 사랑을 선택한 그를 통해, 우리는 이 영화에서 자식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행복의 길을 빌어주는 부모의 온유한 마음, 넘어져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마음으로 뒤에서 응원해주는 부모의 깊은 애정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다.

 

가파른 지붕 위에서 연주하는 불안정한 상태의 바이올린 연주자는 전통을 유지하려 애쓰는 불확실하고 애잔한 이들의 삶을 위무하는 은유적 표현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바라보는 마음도 아슬아슬하고, 안타깝고 위태롭기만 하다. 

 

주) 1. 유다왕국이 신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당하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에 억류되어 약 70년간 포로 생활을 했던 사건을 말한다. 유수(幽囚)는 ‘유배되어 갇히다’라는 뜻이다.

 

2. 이러한 집단을 유대인은 ‘게토(Ghetto)’, 히스패닉은 ‘Barrio’, 폴란드인은 ‘Polino’, 중국인은 ‘China town’, 메노파는 ‘Reva place’ 등으로 부른다.

 

3. ‘꼰대’라는 표현은 자신의 옛 사고방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노년층을 지칭하는, 청소년들의 은어인데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표현이다. 정확한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영남 사투리의 ‘꼰대기’ 혹은 프랑스어의 ‘콩테(comte)’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