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육체의 이분법과 삼분법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과 삼분법

                                                                     – 이인규- 

 


사람이란 영혼과 육체를 연합적(聯合的)이며 전인적(全人的)으로 가진 존재이다.


즉 생명이란 <영혼 + 육체>의 연합을 말하는 것이며, 사람은 살아서는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지는데,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하나님에게로 돌아가며,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

 


인간의 구성에 대해서 신학적인 견해를 분류하자면, 크게 이분법과 삼분법의 두가지가 있는데, 이분법으로는 영혼 + 육체이며, 3분법으로는 영 + 혼 + 육체가 되어진다.


대부분 장로교는 이분법을 옹호하며, 감리교등은 삼분법을 옹호하는데, 이는 신학적인 차이가 되어질 것이다. 성경은 이분법을 설명하는 부분도 있고, 삼분법을 설명하는 구절도 있다.

 


예를 들면 살전5:23에서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하노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 히4:12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만일 영과 혼이 동의어라면 왜 구분되어 사용되었는가하는 주장이다. 물론 논리적인 근거가 있다. 그러나 히브리서4:12의 경우는 인간의 구성적인 요소를 설명하려고 하는 관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인간을 관절과 골수, 마음과 뜻의 구성요소로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soul)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막12:30을 볼 때에 목숨이라고 번역된 영혼이 마음과 뜻과 힘과 함께 서로 다른 인간의 구성요소라고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삼분법이나 이분법을 어느 것이 옳은가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어쨋든, 삼분법을 주장하는 교회와 이분법을 주장하는 교회 모두의 공통점은, 인간이 세부분 혹은 두부분으로 분리되어 나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없어야만 한다.


다만 영혼과 육체의 두가지 요소 혹은 세가지 요소가 인간을 구성하는 두가지 요소라는 것일 뿐이다.


즉 삼분법을 주장하는 교회도 할지라도, 영혼을 영과 혼으로 다시 분리시킨다는 것이 아니며, 또 인간의 구성요소를 영과 혼과 육의 세가지로 구분하여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론 그러한 삼분법을 각각 구분하고 분리하여 주장하는 교회들이 분명히 있으며, 이단 종파인  베뢰아, 지방교회등이 그러한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분되어지며, 살아 생전에 분리되어지지는 않으며, 인간은 육체와 영혼의 전인적인 존재 라는 것에 대해서는 모든 정통교회는 인정하고 있다.


다만 삼분법의 관점에서는, 그리스도인은 “영”이라는 유기적인 요소를 더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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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이단적인 삼분법에 대해서 주의를 하여야만 한다.


아래는 인간의 요소를 삼분법으로 명확하게 구분한 지방교회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글이다.

 


# 사람의 세 부분, 니 형제님은 그의 그리스도인 생활 초기부터 사람에게 영과 혼과 몸의 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살전 5:23). 그는 혼은 사람의 인격이고 몸은 물질적인 세계를 접하기 위한 사람의 바깥 부분이며 영은 영적 세계를 접하기 위한 사람의 가장 내면적인 부분임을 보았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영 안에서 그분을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


 

# 죄는 사단의 체현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체현이다. 이 두 체현들이 우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리스도는 우리 영 안에 있고, 사단의 체현인 죄는 우리 육신 안에 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이 되시는 삼일하나님, 73쪽)


 

# 세 부분으로 된 사람은 신성한 생명의 수신자와 그릇이 되도록 영을 갖고 창조되었다. 창세기2장7절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사람의 코에 생기를 불어 놓으셨다고 말한다. 이 생기는 사람의 영이 되었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하나님, 58쪽)




지방교회와 같이 육체와 영과 혼을 인간의 구성적 요소로서 세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예 사람을 세부분으로 분리시켜서, 육체에는 사단이, 영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있으며, 혼에는 사람의 인격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베뢰아와 구원파(이요한계열)에게도 전염되어진다.


심지어 이요한계열의 구원파는 구원을 영혼의 구원, 육체의 구원, 몸의 구원으로 분리시키고 있다. 구원을 받은 자는 영혼만이 구원을 받은 것이고, 육체에는 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육체만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전인적으로 죄를 짓는 것이다.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것은 헬라철학의 이원론에서 유래된 것이다.



 

과연 성경에서는 영과 혼을 서로 다른 인간의 구성요소로서 구별하는지 알아보자.


요한복음12:27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내 마음(soul, 프쉬게, 혼)이 민망하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다음 장, 요13:21에서 예수님은 “심령(spirit, 프뉴마, 영)에 민망하셨다”고 하신다.


마리아는 “내 영혼(soul, 프쉬게, 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spirt, 프뉴마, 영)이 내 구주를 기뻐한다고 눅1:46-47에서 말하였다.


과연 마리아가 혼에만 주체가 되는 인격을 갖고 있었는가?


마리아의 혼과 영도 주를 찬양하였다. 누가는 혼과 육을 분리하지 않았다.


즉 마음, 심령등은 모두 전인적인 개념을 갖는 것으로 해석하여야만 한다.





또 이미 죽은 사람들의 영혼에 대해서 히12:23 “온전케 된 의인들의 영들(프뉴마)”, 벧전3:19의 “옥에 있는 영(프뉴마)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계20:4에서는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프쉬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영과 혼에 대한 구별이 사실상 없다.


또한 죽음에 있어서도 혼이 떠난다는 표현(창35:18, 왕상17:21, 눅12;20)과 영이 떠난다는 표현(시31:5, 전12:7, 눅23:46, 요19:30)등 사실상 명확한 구분이 되어 있지 않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부자에게 “그 영혼(soul, 혼)을 도로 찾으리라”(눅12:20)고 하였고, 스데반은 “주 예수여 내 영혼(spirit, 영)을 받으시옵소서”(행7:59)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는 인간이 죽었을 때에 영 따로 혼 따로 각각 활동한다는 어떤 구절도 없으며, 하나님 앞으로 혼과 영이 각각 구분되어 간다는 성경구절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여야만 한다.

 

 

예수님은 “몸은 죽어도 영혼(soul)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soul)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라고 몸과 혼의 이분법으로 말씀하셨고,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육신은 멸하고 영(spirit)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해“(고전5:5)라고 몸과 영의 이분법으로 말하였다. 또 야고보는 ”영혼(영, spirit, 프뉴마)이 없는 몸은 죽은 것“(약2:26)이라고 말한다.





또 죄에 있어서도 혼이 죄를 짓는다는 구절과(벧전1;22, 계18:14), 영에 죄가 있다는 구절(시78:8, 잠16:18, 전7:8, 잠16:2)도 사실상 구분이 없다.

 

 

또 영으로만 하나님과 교류를 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혼으로도 하나님과 교류를 하고 대화를 한다는 성경구절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무색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시25:1. 시 62:1, 시 103:1, 눅1:46)

 

 

게다가 성경은 “내 영혼(네페쉬)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바사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시63:1)라고 말하기도 하고, “내 영혼(네페쉬)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레브)과 육체(바사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시84:2)라고도 말하며, 영과 혼과 몸의 전인적인 예배를 언급하고 있다. 결코 혼과 영과 육을 구분하여 각각 따로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헬: 소마)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12:1)

 

 

우리의 “몸”을 드리는 것이 영적예배이다….. 이와 같이 인간은 전인적인 존재인 것이다.

 

 

 

시편 69장1절에서는 물이 영혼까지 흘러 들어오면 사람이 빠진다는 표현이 있다.


그때의 영혼은 호흡하고 숨쉬는 인간자체를 가르킨다.


물이란 물질은 영혼까지 흘러 들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이 단어는 다양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오류를 범하기 쉬운 것이다.


 

 

영과 혼은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보더라도 ‘상호 호환’되어지는 용어이며 다양한 개념을 갖고 있다. 또 인간의 구성요소를 혼과 영과 육, 이와 같이 세부분으로 구별할 수는 없으며, 영혼을 영과 혼의 두부분으로 나눌 수도 없다.


또한 생명이 있는 한 영혼은 육체와 분리 되어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영과 혼을 구분할 때에는 오직 의미나 개념상의 구별을 할 수 있는데, 영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을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말할 때에 부르는 용어로 보며, 이에 대해 인간의 정신면을 인간자체에 있어서만 생각하는 때에 그것은 혼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여 영은 인간성의 특수한 방면으로, 사람과 하나님을 결합케 하는 것, 혼은 속 사람의 세속적 행동과 관습에 제한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고 본다.

 

 

즉 삼분법이니 이분법이니 하는 주장은 무용한 논쟁인 것이, 인간을 세 부분이나 두 부분으로 분리하여 나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구약성경에서 영혼을 일컫는 히브리어 네페쉬는 원래 호흡과 관련된 말이다(창 2:7 참조). 영혼은 일차적으로 생명과 동일시되었다.


그러나 영혼은 생명력에만 국한되지 않고, 감정과 정서의 기관이다.


영혼은 순전히 정신적으로만 이해된 적은 거의 없었다.


인간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곧 영혼이다. 영혼은 전 인격을 뜻하기도 하고 어떠한 경우에는 죽은 시체를 뜻하기도 하였다.


인간은 영혼으로 인하여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분리적인 구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영혼이고 동시에 몸(바사르)이다. 인간은 정신적인 것과 육체적인 것의 합성물이 아니다.


몸은 하나님과 마주하는 인간의 존재, 인간과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의 일시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몸도 하나님을 갈망하는 의미에서 영혼이기도 하다(시 63:1, 84:3).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영(루아흐)이라고 말한다.


인간도 영을 소유하고는 있지만, 인간은 영 자체는 아니다.


영은 영혼인 인간 안에 움직이는 힘이고, 생명의 모체가 되는 힘의 분위기를 가리킨다.


이 힘은 하나님에게 근원을 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일시성의 상징인 몸은 영과 반대편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약성경에서도 특히 바울이 몸(소마)을 말할 때마다, 그것은 전인(全人)을 뜻한다.


인간은 몸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자신이 곧 몸이다. 육(사르크스)은 인간의 육체성에 매여 있는 죄성을 말한다. 그러므로 죄에서의 해방은 육에서의 해방을 뜻한다. 그러나 바울은 헬레니즘의 이원론보다는 구약성서의 노선에 더 가까이 서 있다. 육은 하나님의 영원성에 비추어 본 인간의 허무성을 말한다. 육은 영혼이나 몸과 대칭되는 악한 죄성을 갖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본질을 표시할 때 신약성경이 사용하는 단어는 프뉴마(영)인데, 이것은 인간 자신의 분리적인 측면을 나타내기 보다는, 단순히 인간의 영 혹은 인간을 뜻한다.


영혼(푸시케)이라는 단어도 몸과 대칭되는 의미를 갖지 않고 히브리어의 네페쉬처럼 전인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물론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영혼은 분리되어진다.


이처럼 성경은 전반적으로 헬레니즘의 인간이해와는 달리 인간을 전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인간은 전인적으로 창조되고 살다고 죽으며, 그리고 부활에 참여한다.





기독교에서는 모든 분류를 이원론(영혼과 물질, 선과 악)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시되고 있다.


영혼과 육체는 개념적으로 인정되지만 독립적인 실체로는 부정된다.


그러나 이 두 측면은 서로 의존해 있다.


영혼과 육체는 인간 생명의 단일적인 구성이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갖는 측면들이며, 서로에게로 환원될 수 있는 측면들이 아니다.


영혼은 인간의 육체성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고, 역으로 인간의 몸도 죽은 육체가 아니라 그 모든 생활양상에서 영혼의 작용을 받고 있다.


영혼은 몸에, 몸은 영혼에 매여 있다. 영혼과 몸은 서로 관통하고 침투하며 일체를 이룬다.





다음의 구약 성경구절은 영과 혼이 각각 구별된다기 보다는 서로 호환되어진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욥 32:8] 사람의 속에는 심령(네솨마) 이 있고 전능자의 기운(루아흐)이 사람에게 총명을 주시나니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사 42: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네솨마)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루아흐)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사 57:16]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루아흐) 과 혼(네솨마)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