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내 수니파와 시아파,무엇이 다르고 왜 싸우는가?
무슬림 세계에 두개의 계파가 있다. 무슬림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수니와 수니를 제외한 20% 미만의 시아파다. 수니파와 시아파는 모두가 이슬람이지만 그 차이는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차이만큼 크다. 수니와 시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마호메트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에 대한 견해 차이에서 시작된다. 즉 수니파들은 마호메트와 혈연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이슬람의 통치자가 될 자격이 있다고 보지만 시아파는 마호메트가 남긴 유일한 남자 혈육인 알리(제4대 후계자)의 혈통만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호메트가 사망한 직후 1대 후계자(칼리프)로 아부 바크르가 선출되어 초기 혼란을 수습하고 대 제국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 2대 후계자(칼리파)로 된 오마르는 그의 재위 10년 동안 페르시아를 정복하는 등 대제국을 이룩한다. 3대 후계자로 선출된 오스만은 마호메트가 죽은지 20년이 되도록 정립되지 않았던 코란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 냈다. 4대 후계자(칼리프)로 마호메트의 사촌동생 알 리가 선출되어 마호메트 사후 처음으로 가족 중에서 후계자가 나왔다. 마호메트 사망 직후에는 알리가 너무 어려 앞 3명의 후계자가 나온 후에야 4대째에 직계가족이 나온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마호메트 사후 4대 칼리프까지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열은 없었다.
시리아 총독인 우마이야 가문의 '무아위야'는 3대 후계자(칼리프)의 충신이었는데, 그의 암살에 대한 불만을 품고 4대 후계자인 알리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5대 후계자(칼리프)에 오른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가 그의 아들을 6대 후계자로 앉히면서 시작되었다. 일부 반대 세력들은 4대 후계자(칼리프) 알리의 둘째아들 후세인을 그들의 지도자로 내세웠지만 암살당한다. 암살당한 후세인은 이슬람 제국의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죽은 순교자로 추앙되었고, 그의 순교일이 현재 시아파 최대의 기념일이다. 알리와 그의 아들 후세인을 따르는 자들은 본격적으로 반기를 들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시아파의 시작이다.
초기 시아파는 주류로부터 철저히 탄압 당했고 탄압이 계속될수록 시아파는 지하 조직을 결성해 더욱 격렬히 저항활동을 벌였다. 이렇게 해서 주류 수니파와 반대파 시아 간의 갈등의 역사가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것이다. 수니파나 시아파나 하루 다섯번의 예배를 드리고, 희사(자카트)를 하며, 라마단에 금식을 하고, 메카로 성지 순례를 가는 등 기본적인 이슬람의 다섯가지 의무사항은 공통적이다. 다만 수니와 시아의 가장 큰 차이는 종교지도자 '이맘'에 대한 정의의 차이다. 수니는 이맘이 종교적인 지위에 지나지 않으나 시아는 이맘이 종교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의 지위까지 더해진 것이다. 따라서 시아파의 대표적인 국가 이란을 비롯해 시아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파키스탄 등 대부분의 시아파 종교 지도자들은 사회 전반에 걸쳐 정치적인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시아파의 원인이 저항에서 시작된 만큼 시아파는 대체로 수니파보다 과격한 성향을 가지고 있다. 당시 1백년 동안 수니파로부터 탄압받으면서 형성된 기질인 셈이다. 최근들어 시아파가 다시 조명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시아파 중에서도 소수의 극단적인 저항운동 때문이다. 시아파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두 가지로 볼수 있는데, 시아가 이슬람 내의 반이슬람적인 폭력집단이라는 생각과 이란의 반아랍적 정서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강근목사
이강근선교사 webmaster@pck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