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에서 술에 취해 잠든 롯과 양 옆의 두 딸. 동굴 밖으로 유황불에 타고 있는 소돔성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National Gallery of Art·Web Gallery of Art 제공
<성경 속 여인들>
욕망과 지혜 넘나드는 파격의 여성성이 역사의 동력으로
롯의 아내와 그 두 딸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징벌하시면서도 아브라함과 그 조카 롯의 집안 식구들은 특별히 구원하셨다(창 19:12∼38). 이 과정에서 롯의 아내와 두 딸의 이야기는 흥미롭다. 이들에게서 여성성의 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 가나안을 향할 때, 먼저 세상을 떠난 형 하란의 아들 롯과 그 가족까지 함께 데리고 떠났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땅 가나안에 정착하지 못해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면서도 재산은 많아졌다. 그러자 두 집안의 종들이 다투는 일도 벌어졌다. 아브라함은 조카와 분가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롯은 기름진 소돔 땅을 차지했고 아브라함은 광야에 남았다.
소돔과 고모라는 인간 문명이 만든 도시였다. 사람들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며 살았으나 욕망을 추구하면서 죄악이 넘쳐났다. 더구나 성적으로 타락한 도시였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기로 작정하고 아브라함에게만 이 사실을 알렸다. 아브라함은 두 도시를 구원해줄 것을 간청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청을 받아들이면서 의인 열 사람이 있으면 징벌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 가족들을 구해 주시고자 천사를 통해 방법을 일러준다. 하지만 롯의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황불로 타고 있는데 롯의 가족들은 천사의 지시대로 성을 빠져나와 도피한다. 천사는 이들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화려하게 살았던 그 도시를 잊을 수 없었다. 정신없이 달아나던 여자는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순간 소금 기둥이 돼버렸다.
아버지와 동침한 딸들
화를 면한 롯과 두 딸은 잠시 피해 있었던 소알성을 떠나 깊은 산속 동굴에서 살게 됐다. 하루는 두 딸 중 맏이가 동생에게 제안했다.
“우리 약혼자가 아버님 말씀을 듣지 않고 도피하지 못해 결국 우리는 혼자 몸이 됐다. 결혼할 사람도 없고 자식을 낳을 수도 없는 처지가 됐으니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버지를 술 취하게 만든 후에 아버지와 동침해서 자식을 낳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합시다.” 동생은 언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들 자매는 여자이기에 자식을 낳는 것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로서는 어긋나지만, 지금 우리가 도리를 따질 때가 아니지 않니. 자식을 낳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으니….” “맞아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가 끊어질 테니….” 그렇게 자매는 약속했다.
롯이 들에서 사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매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빚어놓은 술을 아버지에게 권했다. 롯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먼저 언니가 술 취한 아버지 롯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 날이 밝아 술에서 깬 롯은 아무 기억이 없었다. 다음 날 밤에도 롯은 술에 취해 정신을 잃자 동생이 아버지와 잠자리를 했다.
열 달이 지나 두 자매는 모두 아들을 낳았다. 롯은 그제서야 자초지종을 알았으나 따지지 않았다. 언니가 낳은 아들은 모압 조상이고, 동생이 낳은 아들은 암몬 조상이다. 이 두 자매는 두 종족의 어머니가 되었다.
욕망 속 여성, 지혜의 여성
성경의 이야기로서는 특별하다. 하나님은 왜 이런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하도록 했을까.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아버지와 딸의 이러한 관계는 오늘의 관습에선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와 딸이 동침해 낳은 자식이 한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즉 부녀 동침 모티브는 세계 여러 지역의 일반 신화에도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야기는 인류의 보편성을 갖게 된다.
신학적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롯의 아내 처지와 그 두 딸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여자의 욕망과 지혜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것은 여성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여성성의 한 부분이다.
롯의 아내는 유황불로 진멸되는 도시를 뒤로 하고 성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남편, 두 딸과 함께 도망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화려한 도시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보고 싶었다. 그 많은 보화와 즐거웠던 생활을 포기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과거에 대한 아쉬움과 두고 온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는 과거에 집착해 미래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딸들은 달랐다.
시간과 삶에 대한 인식의 차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삶에서 과거는 지나간 시간이다. 구원의 시간이 아니다. 구원은 미래에 있다. 과거의 믿음, 과거의 치적, 과거에 의해 구원받지 못한다.
지나간 시간은 그 자체로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쓰일 때 창조적 의미를 갖는다. 오히려 지나간 시간에 얽매이면 과거만 있을 뿐 미래는 없다. 화려했던 소돔과 고모라 시대는 지나간 과거인 데도 롯의 아내는 이를 버리지 못해 되돌아본 것이다. ‘버릴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다. 여성성의 하나로 화려한 욕망의 유산을 즐긴다는 것을 롯의 아내를 통해서 엿볼 수 있다.
여성의 파격이 역사의 원동력으로
어머니에 비해 두 딸은 현명했다. 그들에게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았던 과거보다 다가올 미래가 더 소중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았기에 죄악의 도시에 사는 처지가 아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지만 죄악의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깊은 산속 동굴에 살고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식을 낳아 앞으로 역사를 이어가는 일이었다. 그 일은 여자의 고유한 몫인 여성성을 발휘하는 것이다. 여기서 모성의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자매는 자식을 낳을 수 없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성을 잃게 될 것이 안타까웠다. 방법은 없었다. 방법이 있다면 유일한 남성인 아버지와 동침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 문제이기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런데 두 딸은 윤리보다 역사가 단절되지 않도록 자식을 낳는 일이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그 일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과거, 즉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뛰어넘어야 했다. 현재의 상황, 즉 동굴 속의 남성과 여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도 부녀의 혈연관계는 기정사실이었기에 그에 따른 갈등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아버지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아버지를 ‘술 취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가문의 역사를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여성은 다소 혁명적이다. 롯의 딸들은 그의 어머니와는 또 다른 지혜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에도 여성은 화려했던 과거를 버리지 못한 채 갇혀 있기도 하고, 롯의 딸처럼 미래를 위해 파격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롯의 두 딸이 선택한 인생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윤리의 파괴, 성에 대한 파격적인 행위로만 인식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파격은 역사를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국민일보 글=현길언 작가
1940년 제주에서 출생했다. 제주대와 한양대 대학원 등을 마치고 제주대와 한양대에서 25년간 학생들을 가르 쳤다.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용마의 꿈’ ‘유리벽’ ‘문학과 성경’ ‘솔로몬의 지혜’ 등 30여권을 냈다. 현대문학상과 대한민국문학상, 기독교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계간 ‘본질과 현상’ 발행·편집인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 충신교회 원로 장로다.
글 옮겨온이 권 문 웅 기자 moonk20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