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천재 피아니스트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통일 전도사’ 김철웅 교수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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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천재 피아니스트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통일 전도사’ 김철웅 교수의 삶

 

“북한에서 3·1운동은 민족주의 형태로 교육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한처럼 3·1절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패한 운동이라는 거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가 등장하기 전에는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런 식입니다.”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45·서울교육대 연구교수)씨는 북한에서 회자되고 있는 3·1운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그는 “앞으로 3년이 분수령이 될 것 같다”며 “북한이 북·미,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조선왕조 500년처럼 오래 버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서로 양보해야 한다”며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민경제를 잘 챙겨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방송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씨를 2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만났다. 그는 현재 “행복하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북한에서 처벌받지 않은 것, 무사히 북한을 빠져나온 것, 탈북 후 중국교회에 들어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남한 생활 잘하고 있는 것 등 감사할 것 투성이입니다(웃음).”

 

그의 부친은 북한에서 고위 당 간부였다. 4세에 대학교수인 어머니 손에 이끌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8세에 평양음악학교에 들어갔고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차이콥스키 음악원 교수의 눈에 띄어 1995년부터 4년간 러시아에서 유학했다. 이후 평양 국립교향악단 최연소 수석 피아니스트로 활동했다. 승승장구했다. 북한에서 잘나가던 그는 2001년 탈북해 이듬해 12월 대한민국에 왔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곡 ‘가을의 속삭임’을 연주하다 신고를 당했다. 자기비판서 10장을 쓴 것이 탈북한 계기”라고 털어놨다. ‘김철웅이 반동 음악을 연주한다’고 누군가 신고한 것이다. 

 

“덜컥 겁이 났어요. 보위부에 끌려갔거든요. 평양에서 쫓겨나는 것을 죽음이라고 생각했고 결국 탈북을 택했습니다. 북·중 국경 강을 건너며 나도 모르게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한 기억이 납니다.”

 

북한의 현실에 염증을 느낀 것도 탈북 이유 중 하나다. 명색이 피아니스트인데 체제 선전만 해야 하는 자신이 한심했던 것이다. 그는 이제 피아니스트를 넘어 ‘북한 인권 운동가’다. 종편 TV조선 ‘모란봉클럽’에서 북한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준다. 남한사람에게 북한을 제대로 알게 하고 싶은 것이 그의 소망이다. 방송 후 탈북민에 대한 시선이 부드러워졌다고 느낀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두 번이나 중국 공안에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북송 열차에서 뛰어내려 가까스로 도망쳤다. 다시 한국행을 시도했으나 내몽고에서 중국 공안에 또 붙잡혀 북송됐다. 죽도록 매를 맞았다. 앞이 캄캄했다. 하지만 하늘이 도왔다. 교도소의 책임자가 아버지 후배였다. 풀려났고 재탈북 후 그는 벌목공, 머슴 등 막노동을 전전했다. 배고픔에 시달렸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따뜻하게 안아줬다.

 

“거리를 전전하는데, 교회에 가면 피아노가 있다는 소릴 들었어요. 피아노가 너무 치고 싶어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이후 피아노 반주자로 섬겼고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연주하며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목사님을 통해 한국행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 매주일 오전·오후 예배를 빠지지 않는다. 교회 집사 직분도 받았다. 

 

그는 북한인권시민연합과 국제장애인문화협회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소외계층에 관심이 많다. 합창이나 콩쿠르 심사위원을 맡는다. 사단법인 ‘예술로함께’ 대표로 2013년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남북 가곡의 밤’을 열고 있다. 북한가곡을 소개해 문화적 이질감을 줄이는 데 힘쓰고 있다. 북한가곡을 남한의 작곡가들이 편곡해 연주하는 ‘평화 음악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탈북청소년들과 함께 ‘아리랑 남북청소년 오케스트라’도 설립하고 창립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한국정부와 교회가 탈북민에게 장려금 등 많은 것을 제공했다고 생각한다. ‘통일가교’ 역할을 열심히 해 교과서에 남는 인물이 되는 게 꿈이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