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을 멀리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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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을 멀리 한다면…

햇빛, 물, 공기는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사람들은 이 선물을 당연히 여기고 없을 때에만 소중함을 느낀다. 마실 물을 비싼 돈을 주고 사 마셔야 물 귀한 걸 알고, 대기 오염과 미세 먼지로 마스크를 쓰고 숨을 쉬어야 맑은 공기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낀다. 햇빛 역시 그러하다.

햇빛은 지구를 환하게 비춰주고, 지구를 따뜻하게 만들어 공기를 순환시키고, 바닷물을 하얀 구름으로 바꾸어 준다. 무엇보다 햇빛은 식물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광합성을 일으키며, 식물을 기반으로 한 먹이 피라미드를 완성시킨다. 한마디로 햇빛은 생태계의 필수요건이다.

햇빛의 혜택은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을 비롯한 척추동물은 피부를 통해 햇빛의 자외선B를 받아 비타민D를 생성해서 칼슘 흡수를 쉽게 하고 그 덕분에 튼튼한 뼈를 만들어 대지를 활보한다.

햇빛을 이용하여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한지도 오래다. 태양광선을 통해 건강을 증진시키는 ‘일광요법(Heliotherapy)’은 고대에도 있었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가 BC 400년경 폐결핵 치료를 위해 일광요법을 사용한 이래, 일광요법은 1950년 결핵약이 발명되기 전까지 결핵을 치유하는 데 널리 사용됐다. 특히 1903년 덴마크의 닐스 핀센 교수는 피부결핵인 심상성낭창에 대한 특수 광선 치료 효과를 확인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또한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BC 450년경에 페르시아 군인의 두개골이 이집트 군인의 두개골보다 약한 이유가 그들이 착용하는 터번 때문에 햇빛을 덜 받아서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약한 두개골은 구루병과 그 원인이 유사하다.

최근 외신 보도에 따르면 비타민D의 코로나19 예방, 치료 효과에 대해서 각종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비타민D 연구의 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서구에서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골다공증 예방 효과만 알려져 왔던 비타민의 새로운 효과에 대한 연구가 줄을 잇고 있다.

21세기 초부터 각종 암과 당뇨병 등의 지역별 발생률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매우 흥미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위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많은 질병들의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곧 햇빛 노출과 건강에 대한 각종 연구의 시발점이 됐다.

햇빛의 자외선A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산화질소(NO)를 생성해 혈압을 내리게한다. 자외선B는 유사 마약 성분인 베타엔도르핀을 생성하여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시키고, 행복감을 높여주며,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통증을 제거해준다. 즉, 우울증을 예방하며 치료를 도와준다. 또한 생체리듬(Circadian Rhythms)을 조절하여 수면을 포함한 생체활동 전체를 정상으로 유지시켜 준다. 자외선 부족에 대한 연구는 비타민D에 대한 연구를 촉발시켰고, 비타민D의 세계가 한꺼풀, 두꺼풀씩 벗겨지고 있는 것이다.

세계 여러 학회에서는 비타민 D에 대한 강좌가 수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수많은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의학계뿐만이 아니다. 신문, 방송과 같은 미디어에서도 비타민D에 대한 연구 결과가 연이어 소개되면서 일반인 사이에서도 비타민 D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지 오래다. 우리나라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러한 관심의 시작은 2007년도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비타민D는 《타임》과 《디스커버리》에서 가장 획기적인 의학 발견의 하나로 선정됐다. 비타민D에 대한 재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다른 여러 매체에서도 앞 다투어 비타민D의 새로운 약리 작용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비타민D 부족 및 결핍에 대한 논문들도 세계 곳곳에서 발표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영양소 결핍, 특히 비타민이나 미네랄 결핍은 특정 질환을 앓고 있거나 체질 특성 등에 따른 극히 개인적인 경우에 나타나지만, 특이하게도 비타민D 결핍은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임상연구가 증가하면서 덩달아 여기 참여하는 사람들의 결핍이 발견된 측면도 있지만 비타민D를 측정하는 기법이 보편화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렇게 비타민D의 새로운 약리 작용과 비타민D 부족 및 결핍에 대한 이슈가 동시에 터지다보니 사람들의 관심은 비타민D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비타민D의 효능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그냥 알고만 있지 않았다. 미국 의학전문 미디어인 《메드스케이프》가 내과 의사들을 대상으로 평소 건강관리를 위해 복용하는 건강기능식품에 대한 설문 조사를 했더니 가장 많이 복용하는 것은 ‘비타민 D’로 나타났다. 의사가 복용하니, 일반인도 가까이 했다. 비타민D는 지난 5년간 미국 국민이 가장 많이 복용하는 건강기능식품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는 종합 비타민, 칼슘과 비타민 C가 3, 4위였고, 5위는 비타민 B군이다.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과 오메가3 제품은 8~10위 정도이다.

유럽도 마찬가지. 2018년 영국 런던에 글로벌 본사를 둔 시장조사기관 민텔의 발표에 따르면 영국 국민이 가장 선호하는 단일제제 비타민으로 비타민D가 전해 1위였던 비타민C를 누르고 선정됐다.

이미 미국과 유럽에서는 비타민D의 가치가 널리 알려져 있다. 정부 차원에서 여러 가지 경제적, 의학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비타민 D 복용을 권유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변화가 우리나라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1세기에 들어서야 비타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관심이 온통 비타민C의 작용에 쏠려 있었다. 건강에 조금이라도 신경을 쓴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비타민C 정도는 먹고 있거나,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복용하고 있는 비타민은 비타민C이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최신 의학 정보 부족에 의한 결과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이미 세계 의학계에서는 비타민D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진지 오래다.

비타민D에 대한 관심은 21세기 초가 처음이 아니었다. 1930년대에 비타민D가 구루병을 치료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난 뒤 비타민 D가 첨가된 비타민D 강화우유 및 유제품이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커스터드, 미국에서는 맥주, 독일에서는 셰이빙 크림 및 비누에도 비타민 D를 첨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1950년대 영국에서 특이한 얼굴 모양에 지적 장애와 성장 및 발달지연이 동반되며, 심장질환과 고칼슘혈증 증상을 보이는 유아가 보고됐다. 당시 영국소아과협회 및 의료 기관은 그 원인으로 비타민D 과다 복용을 지목하며 비타민D 강화 제품의 판매를 금지하고 비타민D 첨가량을 줄일 것을 권고했다. 각국 정부는 비타민D 복용 용량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1961년 뉴질랜드의 심장전문의 윌리엄스 박사가 이 증상이 염색체 결실에 의한 것임을 발견하면서 이 아이가 비타민D에 과민하게 반응한 것이 선천성윌리엄스증후군이었기 때문임이 밝혀지긴 했지만, 한번 자리 잡은 비타민D에 대한 편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세계보건기구(WHO),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이 피부암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햇빛을 적극적으로 피하라는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에 비타민D 결핍 인구가 세계적으로 급증하게 됐다. 이러한 조치는 피부암 발병률을 줄였을지는 모르지만 더 큰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사례가 핀란드이다. 1964년 핀란드 정부는 기존의 비타민D 하루 권장량을 4,500IU에서 2,000IU로 감소시켰고, 1975년에는 1,000IU로, 1992년에는 400IU로 다시 감소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이후 소아당뇨 발병률로 문제를 드러냈다. 핀란드는 제1형 당뇨병의 발생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된 나라로, 아래 그림을 보면 비타민D 일일 권장량이 감소됨에 따라 1형 당뇨병 발생률이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