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ng M.Lee 성서-창세기를 떠 올리는 이영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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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 창세기를 떠 올리는

이영미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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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미 작가의 작품

 

구약성서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는 대목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 ”네 아내 사라에게 복을주어 그가 아들을 낳고 열국의 어미가 되게하고(17:16) “  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22:17) 라고 말씀하신 대목을 떠 올려 보면서 한아이를 들처 업은채 하늘의 별, 아니 우주를 품으려는 한 여인을 본다.<코멘트: 권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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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영미의 작품

 

구약성서 아브라함시대의 상수리나무는 그 크기가 거대하고 숲을 이루어 그늘을 만드는 큰 나무로 알려저 있다.

아브라함이 그의 조카 룻과 갈라서 정착한 곳이 마무레 상수리 나무 숲 이었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은 곳으로(창세기13:18) 상수리 나무 아래는 여려가지 의미로도(창세기35:4)거룩한 장소로 묘사되고있다.

작가는 상수리나무의 특징인 나무잎새와 도토리의 열매의 묘사에 공을 들인 흔적도 여인이 업드린 곳이 상수리 나무 아래임을 암시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코멘트: 권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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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노트>

나는 내 그림에 대하여 정확하게 한마디로 ‘무엇이다’라고 규정 혹은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민 1.5세로서 1985년 경 회화를 공부하던 브루클린 Pratt campus에서의 기억은 어지러운 Post Modernism의 정돈되지 않은, 충분히 이해되지 않는 여럿의 다른 이미지 들의 파편의 난무 속에서 critic 을 이겨낼 home work 을 준비하던 흐린 기억과 소호지역의 겔러리 탐방의 알수없던설렘(첼시가의 겔러리 형성 이전)의 간헐적 기억들과 또렷한 기억이라곤 내 스무살의 혼돈과 삶에 대한 끊임없던 질문들 뿐이다.
 
그리고 오랜시간을 이어온 끈질긴 질문의 흔적으로서 나의 그림이 남아있다.
우리 모두는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인생이라 불리는 강도를 만나 횡포를 당하고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행이도 ‘선한 사마리아인 이라 불러도 좋을 구원자’를 만난다.(부디 모두가 그러하길…)
 
언제인가 기도중에 내가 물었었다. 
“내게 그림은 무슨 의미 인가?”고.그리고 그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얻은 답은 “위로다!”였다.
 
방대한 미술사 속에서 내 그림과의 연결 고리를 찾고 몇몇 대가들의 흔적을 입혀 나의 그림을 적절한 시조위에 닮은꼴로올려놓는 일은 관객의(혹은 평론가)의 몫으로 남겨 놓겠다. 
그러나 부디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나의 그림이 그대에게 소정의 위로가되길 소망한다.
또한 간결 하고자 애쓴 도형과 색상에서 포기된 많은 것들과 진정성을 찾고자 여러번 반복한 겹쳐진 스케치의 흔적 속에서, 그리고 그것이 노출되기를 꺼려하지 않은 나의 용기가 발견 되어지길 소망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린 공동의 슬픔과 환희의 그 근원점 어디선가에서 같은곳을 바라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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