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활동하는 아트 큐레이터 – 권 이 선

<한 동 신이 만난 사람>

 

뉴욕의 아트 큐레이터 – 권 이 선





  

최 근 뉴욕 롱아일랜드 시티에 새로 오픈한 예이스 갤러리(대표: 방주리) 에서 눈이 번쩍 띄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거리의 상점과 건물 등 도시풍경을 나무로 만든 조희정 작가와 중세와 르네상스의 고전을 콜라쥬기법으로 재구성한 조엘 카레이로 작가의 2인전, <무형의 그리드(Intangible Grid)>. 이 전시회는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베테랑 큐레이터 권이선(미국명 리즈 권) 씨의 기획이다. 2011년 한 해를 보내며, ‘뉴스로’의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예술 문화비평가 한동신 오픈워크 대표가 아트 큐레이터인 권이선씨(31)를 만났다.<편집자 주> 

 


“제 가 생각하는 큐레이팅이란 미술작품의 의미를 재생산하는 또다른 창의적인 작업이라 생각합니다.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여 주면서 단순한 나열이 아닌 작업의 발전이 그의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문맥안에서 어떻게 진화(進化)되었는지 그 의미를 짚어 보고, 관람자에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의 일을 돕는 것이지요. 즉 큐레이터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떠한 주제와 이슈를 들어 올릴 줄 알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여 주는 예술가와 수용자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 선명하게 정의를 내리는 것에도 나타나듯이 ’뉴스로’와 3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권이선 씨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을 보였다.


   

한 동신(이하 한): 권이선선생의 이력을 보면 흥미로와요. 고려대학교에서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에서 미술 이론으로 석사를, 그리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예술문화경영을 전공으로 석사를 졸업하였습니다. 기획자 혹은 이론가로써 필요한 예술의 모든 분야를 골고루 접한 것 같은데요.


권 이선(이라 권): 네 저도 어릴때는 실기를 잠깐 하기도 했습니다만 작가가 되어 창작활동을 하는 것 보다 여러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평하는 것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러면 한 세계에 몰입하는 대신 문화예술 전반을 더 다양하고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요. 대학 때 이미 기획자, 예술 행정가로써의 목표가 뚜렷해 여러 도시, 여러 뮤지엄을 다니며 ‘예술작품’ 자체와 ‘전시’를 보는 눈을 키우는데 노력하였습니다.

 전시 보는 것을 좋아했던 저를 돌이켜보면, 아트와 디자인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환경에 자란 것도 큰 영향이 듯 합니다. (권이선씨의 부친은 서울대학교 미대 학장을 연임한 건축공학박사 권영걸교수, 어머니는 현 한국여류조각가협회 회장으로 있는 조각가 이종애씨다)


 

한: 한국에서 발행되는 건축잡지인 ‘BOB’에서 권선생의 글을 읽을 때가 있는데, 작가 선정과 인터뷰 내용 그리고 이미지들을 보며 항상 감탄하곤 합니다.


권: 그동안 여러 훌륭한 작가들을 인터뷰 해왔습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회고전을 가졌던 록시 페인 Roxy Paine, NYU 교수인 미디어 작가 대니엘 로진 Daniel Rozin,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 때 스코틀랜드 대표작가였던 마틴 보이스 Martin Boyce 등등 국제적으로 명성있는 작가들을 셀 수 없이 많이 다뤘습니다.

 매달 원고를 준비한다는 것이 시간을 많이 요하는 일이긴 한데 큐레이터이다 보니 지나고 나면 그것이 다 자료가 되어 기쁩니다. 특히 해당 작가의 작품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줄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는 것이 제가 가장 크게 신경쓰는 부분이지요. 사실 작가를 선정하고 인터뷰를 하는데 드는 시간이 상당하잖아요? 그래서 오늘 저를 인터뷰하는 한선생님의 노고를 제가 잘 압니다.(웃음)


 

한: 미국엔 언제 왔습니까?


권: 2005년에 왔습니다. 대학원 공부때문에 왔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졸업하고 결혼하고 커리어 쌓고 애키우고,,,하며 머물게 됐네요.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의 미술계 사정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이곳에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작가들을 대상으로 전시일을 하는 것도 흥미롭고 중요하지만, 한국과 관련된 프로젝트들도 많이 하고싶은 바램도 있지요. 아무래도 한국 현대미술, 그리고 작가들과의 관계는 저에게 큰 자산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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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동안 권선생이 해 온 전시기획이나 강의가 대단한 규모와 수준이라 기획자의 지성의 수준을 한 눈에 가늠할 수 있어요. 특히 한국이 자랑하는 이우환선생과의 토론이나, 타임즈 스퀘어에서 있었던 천경우작가의 퍼포먼스<Versus> 같은 기획은 대단한 것같아요.


권: 이우환선생과의 좌담이나 천경우작가의 그룹퍼포먼스였던 <Versus> 등은 유명한 기획자들과 공동작업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군요. 저는 거드는 정도였다고 해야 하나요?(웃음) 실력있는 전시기획자들과의 공동작업은 정말 값진 경험이지요. 특히 대규모 전시를 기획하는 선배 큐레이터들로부터 전시의 내용을 만드는 컨셉츄얼 한 부분 외에 전시가 실질적으로 어떻게 행해지는가 – 유명작품과 펀드를 끌어오는 부분 등-를 배웁니다. 그들에게 기획력이란 기동력을 포함합니다. 큰 프로젝트에 있어 필수적 요건이지요.


 

한: 이번에 예이스 갤러리의 기획전은 어떻게 이루어 졌나요?


권: 예이스 갤러리의 공동대표인 방연직 작가께서 올 초부터 전시/작업 공간을 구하였는데 감사하게도 MoMA PS 1근처의 좋은 위치에 자리를 찾게 되었지요. 그분과 오래 알고 지내면서 서로의 예술관과 취향을 많이 나누었던 터라 갤러리의 비젼을 세우는 과정자체가 흥미로왔습니다. 이후 전시를 할 수 있도록 공사를 하고 공간을 다듬는대로 곧 첫 전시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소에 눈여겨 봤던 두명의 훌륭한 작가, 조희정씨와 조엘 카레이로씨의 작품으로 구성된 전시 <무형의 그리드>를 개최하게 된 것이지요.


 

한: 앞으로 갤러리의 방향은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권: 갤러리의 작가선정과 전시가 매우 선별적으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좋은 작가와 함께 하면 그 주변의 좋은 작가가 또 모이기 마련이고 그렇게 됬을 때 좋은 컬렉터와 관람객들이 따라 모이게 되는 것이지요. 좋은 예술인들이 모이고 훌륭한 작품들이 널리 보여져서, 공급자(예술가)와 수용자(향유자) 간의 유대관계(紐帶關係)를 형성하는 것이 갤러리 최선의 목표입니다.


  

한: 현재 권선생이 하고 있는 작업은 무엇입니까?


권: 뉴욕의 미술관들을 다룬 책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출판사 측에서는 지금 한창 디자인 작업 중인데 이미지 작업 때문에 애초의 일정보다 늦어지고 있네요. 그동안 많은 수의 미술관 관련 서적들이 컬렉션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책은 한 미술관이 어떻게 세워졌고 어떤 기부자와 디렉터에 의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가에 집중한 책입니다. 제가 미술관을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실제로 서울대에서의 논문과 프랫에서의 논문 모두 미술관 관련한 주제였으며, 미술관의 여러 부분들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이 책은 학술서라기보다 대중서이긴 하지만 저의 관심과 연구를 바탕으로 시작된 책이지요.


 

한: 굉장히 흥미로운 주제인데요. 크고 넓게 말해서 미국과 한국의 미술관운영은 어떻게 다른가요?


권: 미국은 기부(寄附)문화와 박애(博愛)정신을 근간으로 대부분의 문화예술기관들이 설립되었습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수많은 개인단위의 컬렉터와 기부자들이 모여 지금의 방대한 컬렉션이 탄생했고, 휘트니 미술관의 경우 설립자가 조각가여서 예술가의 요구를 알았지요. 미술관이 이미 성숙단계에 있는 나라일 경우 미술관의 필요성이 우선시 되어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술관 설립이 세금혜택 등과 같은 개인이나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는 동기가 크게 작용하였습니다. 물론 좋은 취지로 크고 작은 사립 미술관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시작과 그 운영이 있어 많은 차이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지요. 저의 책이나 연구, 활동들이 한국 미술관의 발전에 조금이 나마 자극이 되었으면 합니다.


 

한: 지금 하시는 분야에서 권선생이 가진 강점이라면 무엇을 꼽을 수 있을까요?

권: 앞서 말씀 드렸다시피 저는 예술을 둘러싼 영역-교육, 역사, 경영- 을 공부해왔습니다. 이것들은 제가 기획자가 되는 데에 하드웨어가 되어주었다면 소프트웨어인 그 내용과 대상에 있어서는 현대미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현대미술을 다루면서 저는 늘 디자인과 건축분야를 예술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의 한 맥(脈)이라 여겼습니다.


제 가 한동안 있었던 첼시의 아트컨설팅 회사는 건축가의 디자인 작품을 제작하고, 디자인 전시를 기획했던 곳으로 현대미술은 물론 디자인 프로젝트가 많았습니다.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디자인과 건축 분야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흐름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또한 건축잡지의 아트섹션에 글을 기고해 오면서 인테리어 디자인과 설치작품 경계(境界)에 있는 작품들을 많이 다루었습니다. 공공 조형물을 비롯하여 대규모 설치작품을 하는 작가들을 인터뷰하면서 점차 저의 주제는 아트와 디자인을 넘나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각예술 외의 주변 영역에 대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안목이 저의 강점이라면 큰 강점이 될 수 있겠네요.



 

한 : 한국에서도 큐레이터로 일을 했는데, 한국과 비교해서 뉴욕에서 큐레이터로서 활동하면서 힘든 부분이 있다면 어떤건가요.


권: 다양성으로 특징지워지는 뉴욕은 예술가는 말할 것도 없고 예술기관이나 단체들 역시 매우 다양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지만 동시에 자기의 색깔을 잘 찾지 않으면 그 활동이 드러나기 힘들다는 뜻이죠. 어떤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곳에서의 큐레이터 역할과 범위는 한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넓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다양한 작가들과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흥미로운 일입니다. 하지만 컬렉터를 양산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입니다. 그부분이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받은 저로써는 이곳에서 해야하는 새로운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전시든 전시비용이라는 것이 채워졌을 때 전시가 성립될 수 있고, 그러려면 컬렉터나 후원자가 있어야지요. 그러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들을 형성하여 교육하고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큰 과제중 하나인듯 합니다.


뉴욕=한동신 특파원 by Dong-sin Hahn opwo@aol.com



  

<꼬리뉴스>


큐레이터는 예술작품의 치유자


같 은 평론가요, 큐레이터인 입장에서 인터뷰가 부담스러울수도 있었을텐데 권이선씨는 흔쾌히 응했다. 나에 대한 첫인상이 “미국에서, 특히 아트정글인 뉴욕에서 후배 큐레이터들의 애환(?)을 이해해 줄 사람같이 보였기 때문”이라고 첫마디를 열 만큼, 뉴욕에서 큐레이터와 평론가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 한동신이 만난 사람>이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하며 권이선 씨를 첫번째 게스트로 초대한 이유는  지난 8일, 예이스 갤러리가 개관했을 때, 큐레이터라며 인사하는 그의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전시된 작품에서 반영하는 큐레이터의 안목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같 은 분야에서 일을 한다고 그들의 눈높이가, 또는 실력이 같을거라고 생각하면 오산(誤算)이다. 일류대학출신이라고 수준높은 전시기획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큐레이터(curator)는 단어가 그 의미를 말해주듯 ‘치유(Cure(a)하는 사람(tor)’ 사람이다.


감히 누가 누구를 치유할 수 있겠는가. 더더욱 예술작품으로 누구를 치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큐레이터는 남을 치유하기 전에 본인 스스로 구도자다운 생활을 해야 한다.


 

“마음은 닦는 것이 아니라 쓰는 것이다.”

권이선 큐레이터가 3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끝내고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법정스님의 말씀이 저절로 되살아 났다.
마음을 쓰며 자신의 일에 열정으로 불태우는 젊은 큐레이터가  완숙하게  성장하는 과정이  기대되는 사람이다. 
권이선이라는 사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