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EVER 21 CEO 장도원 장로 이야기


미국내 88위 부자 – FOREVER 21 장도원 장로

제7차 2012 KWMC(한인세계선교대회) 대회에서 간증 전해







  • ▲장도원 회장

KWMC에 초청돼 간증을 전한 포에버 21 장도원 회장은 미국 내 부자 88위, 지난해 7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플’ 38위의 타이틀이 어색할만큼 겸손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나갔다. 

장 회장은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장사를 잘하냐? 묻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 잘 믿는 것 밖에 없다”면서 “예수 안에서 거듭나고 브라질, 중국 조선족 선교를 다녀오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간증했다.

“당 시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결심했다”는 그는 “선교를 다녀와 이전에 사랑했던 것을 다 버렸다. 가장 사랑했던 것이 뭐였는가 봤더니 돈이었다. 그래서 돈을 버리기 시작했고, 그 다음부터는 내 수입의 십분의 일로 살았다. 아이들에게 사고 싶은 거 안사주고 냉장고도 텅텅 비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고 했다.

또 장 회장은 “십여년 전에 회사에 유혹이 있었다. 계약을 통해 매출의 5%만 그 회사에 주고, 4천만불 현찰을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쓰게 해주겠다고 했다. 내일 사인을 하게 되는데 마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데 ‘네가 그 돈이 필요하니? 편안하고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너가 나를 찾겠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회사에 난리가 났다. 제가 사인을 안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돈이 나를 사로잡는 것이 되면,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장 회장은 “2년 전 경기가 안좋아졌을 때 미국에 투자를 덜하라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저는 미국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도와줄 것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일자리를 창출시키는 것이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친구들한테 ‘올해 7천명을 더 고용한다, 그러기 위해서 거기에 전력투구한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남들은 오픈안하는데 왜 너만 여나? 남들 장사 안되는 데 혼자 잘된다’는 식으로 시기질투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때 오픈했던 가게들이 장사가 더 잘된다. 어떻게 해서 비즈니스가 그렇게 잘 됐나고 하는데, 내가 한게 뭐가 있겠나? 내가 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 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아내도 화장 한번 안하고 명품 가방 하나 없다. 한번은 아내가 단기선교 갔다가 인천공항에서 이 닦고 세수하고 세면대에 흐른 물을 닦고 있는데 옆에 젊은 여자가 ‘아줌마 여기도 닦아주세요’ 했단다. 그 정도로 소박하다”며 “뭐가 성공이고 부자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자는 말을 전하고 싶어 이 자리에 나왔다”고 간증을 맺었다.

장도원 회장은 1981년 미국으로 이민와 84년 로스앤젤레스한인타운에 처음 옷 가게를 차렸다. 이민 초기, 사업 밑천을 마련하기위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마다 않고 닥치는 대로 했다. 건물 관리원과 주유소 주유원, 커피숍 종업원 일을 한번에 하기도 했다. 어렵게 시작한 옷가게에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면서 승부를 걸었는데 이게 적중했다. 창업 첫해 3만5천달러에 불과했던 매출을 이듬해 70만달러로 끌어올렸다. 이후 사업이 번창해 현재 전세계 500여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 이하는 장도원 회장의 간증 내용.

사람들은 어떻게 장사를 그렇게 잘 하느냐?고 묻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생각나는 게 없다. 딱 하나 생각나는 것은 예수 잘 믿는 것 밖에 없다. 그걸 얘기하면, 기자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거 말고. 다른 거 없나.’ 그거 이외에 생각나는 게 없다.

어린시절

믿 음으로는 5대째다. 저희 가정에 목사님만 27분이 나왔다. 독실하다 못해 지독하기까지 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돈을 좋아했다. 그래서 국민학교 3학년 때 부터 사업을 시작했다. 아이스께기를 먹는 순간, 이거다, 이거 갖다 팔면 된다고 생각해 치밀하게 계획했다. 자금을 모았고 장소를 물색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을 알아내고 점심 먹은 다음에 출출할 때 팔기로 했다. 10년 계획을 세우고 토요일 2시 경에 시작했다. 딱 열어서 ‘사세요 사세요.’ 작게 말하니까 아무도 안 거들떠봤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도망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스께끼 사세요’ 소리질렀지만 아무도 안 사줬다. 아이스께기는 녹기 시작하고, 녹으면 못 먹으니까 내가 다 먹었다. 그리고는 일주일 동안 앓아누웠다. 그렇게 쫄딱 망했던 경험이 있다. 

공부는 비교적 잘했다. 서울 중학교 갈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집에서 이민을 가려고 결정을 한 것이다. 그때 들어선 안될 소리를 들어버렸다. 옆 방에서 ‘쟤 도원이는 굳이 한국에서 공부할 필요없다, 영어하고 수학만 가르치고 다른 것은 가르치지 말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미국가기로 한 계획이 1,2년을 지나도록 자꾸 미뤄져 못가게 됐다. 5년이 지나 고등학교 2학년 되는 때, 부모님이 상의도 없이 미국에서 돌아왔다. 아들 하나 있는데, 두 분이 나오신 거다. 나는 미국 가는 것을 목표로 세웠는데 희망이 무너졌다. 그전에는 교수나 학교 선생이나 군인이 되는게 꿈이었는데 (그동안 공부를 놓았으니)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 말씀에 보면 참새 두마리도 하나님 허락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 우연이란 결코 없다. 딴 길은 다 막으셨고, 돈을 벌어야겠다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결정했다. DJ를 하면서 너무 커피가 잘팔리는 걸 보고 명동에서 커피를 팔아야 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당시 한국이 살기가 좀 괜찮아지면서 우후죽순 패션샵이 생기고 다방도 많이 생길 때다. 그때 커피배달만 하는 찻집을 시작하게 됐다. 때로는 직접 배달을 갔다. 장사가 꽤 잘 될 때였다. 현실에 그저 만족할 수 있었는데,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다. 이민을 갈 수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한국에서 잘 되고 있는데 이대로 머물것인가. 미국에 갈 것인가. 사실 미국에 한이 맺혀 있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결혼

사 람들이 결혼을 하고 가라고 했다. 미국에 가면 결혼을 못하는 줄 알고, 선을 봤는데, 선을 보기로 한 저녁에 특별한 일이 생겨서 선보는 여자한테 내일 점심 만나면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미안하다고 약속을 미뤘다. 점심을 뭘 사줄까 너무 미안해서, 가장 좋은 것 갈비탕을 사줘야 되겠다 해서 그 여자를 데리고 갈비탕 집에 갔다. 그 집이 유명한 게 갈비가 있었다. 꽤 비쌌다. 고민하다가 그래도 돈을 좀 써야겠다 결심하고 갈비 3대를 시켰다. 그랬더니 앞에 여자가 피식 웃으면서 여기 그냥 갈비 10대 주세요 하는 거다. 그리고는 ‘제가 살게요’ 그랬다. 자기가 사겠다는 말에 도망은 안갔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만 쳐다보고 안 먹는 거다. 그러다니 아주머니 여기 10대 더 주세요 했다. 10대 더 시키는 그 순간에 결정했다. 이 사람 하고 결혼해야 되겠다. (웃음)

바 로 결혼을 했는데, 우연이 안되는게 저희 아내는 불교집안이다. 저희 집은 딱 하나 따지는게 예수 믿느냐 안 믿느냐는 것. 바꿀 수 있는게 아니었다. 제 아내는 네 그런 거다. 나중에 알고보니까 두 주전에 혼자 교회가는게 쑥스럽다는 친구를 따라 억지로 교회 두번 갔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게 됐다. 

이민

미 국 이민을 와서, 고생한 것은 다 같은 처지니까 아실 거다. 잡을 구하기도 너무 어렵고. 그래서 그릇 닦는 거. 점심은 주유소에서 기름 넣어주는 것 하며 일했다. 좋은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 지 물어봤더니 옷장사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옷장사를 결심했다. 장사가 잘 됐다. 어떤 사람들은 엘에이 돈을 다 쓸어담는다고도 말했다.

그러다 한국에 가보니까 친구들이 너무 쉽게 돈을 벌고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수억 씩 불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맨날 골프치러 다녔다. 나는 세상 재미 하나도 모르고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가, 결심을 하고 주말에는 골프치러 가다보니까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살기 시작했다. 이 또한 우연이 아니라 준비시키신 것이라 생각한다. 

교회

그 때 교회를 향하기 시작한 것이 제 아내다. 아내가 매달릴 데가 없으니까 눈물로 매달리는 것이다. 아내가 나에게 오늘 하루만 나 따라서 교회 가자고 부탁했다. 그 주에 교회를 가게 됐다. 교회가 개척교회여서 맨 뒷 좌석에 앉아있었다. 예배가 시작되면서 찬송가 소리, 무슨 찬송이었는지 기억도 안나는데 고개 숙여 하염없이 생각이 주마등 처럼 스쳐갔다. 과거가 생각났다. 부모님이 이민가고 나혼자 앞이 캄캄했던 시간들,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르고 방황하던 시절, 미국와서 죽도록 고생하던 시절, 다리가 아파서, 그릇 닦으면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나. 모든 시간들이 생각이 나면서 그냥 눈물이 났다. 내 안에 뭔지는 모르겠는데 세상 즐거움에서 채울 수 없었던 그 어떤 것이 채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하나님을 제대로 믿기를 원합니다. 똑바로 제대로 알고싶습니다. 왔다 갔다 하기 싫으니까 똑바로 가고 싶습니다. 고백했다.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눈 뜨면 찬송가 부르고, 하나님을 알기를 원했다. 선교를 떠나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브라질 아마존에 갔다. 처음 가는 선교지 치고 너무 어려운 곳이었다. 찬양 몇가지. 아이들을위해 놀아주는. 다리에는 벌레들이 왔다갔다. 그 나라말로 찬양을 부르는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주님을 찬양하고 말씀공부를 가르치고 함께 있다가 왔다.

그때부터 선교에 대한 마음이 끓어, 아이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다음에 간 곳이 중국 조선족 중학생들을 가르쳤다. 부모들이 다 돈벌러 가서 대부분 혼자 살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아이들이 졸고 있다. 왜 이렇게 산만한가. 지금은 그런 들을 준비가 안돼 있다고 판단, 이 아이들의 오빠, 형이 돼 주자고 했다. 007빵, 사바사바 같은 거 하는 데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바사바만 했다. 아이들의 취향이 소양강 처녀, 이런 것, 뽕짝을 너무 좋아한다.

눈 떠서 잘 때까지, 같이 먹고 놀고 자고. 3주가 지나서 마지막 만남 속에서 그렇게 슬피 우는 것.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게임해서 너네가 이기면 하루 더 있겠다’고 했다. 게임 마지막에 저희가 이겼다. 너무 기뻐서 이제 갈 수 있다고 막 좋아하는데 아이들이 울고 있는 거에요. 고속버스 터미널로 걸어오는데, 함께 손을 잡고 걸어왔다. ‘내년엔 또 오실거죠? 겨울에 또 오실거죠?’ 버스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괜찮던 아이들이 버스에 타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버스를 향해 뛰어오면서 도로에 누워 대성통곡을 하고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보며 선생님들이 기도했다. 우리 가면 쟤들은 누가 돌봐주냐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고맙다. 와서 이렇게 애들하고 놀아줘서. 내 대신 와줘서 고맙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데 고맙다는 거에요. ‘네가 죽고 싶을 때, 네가 외로울 때 한번도 너와 떨어진 적이 없다. 내가 그렇게 너를 사랑했노라.’하시는 그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뼛속 깊숙이까지 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잘 몰라도 내가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그 때 결심했다. 

내가 하나님보다 사랑했던 것 다 버렸다. 그 이외에 사랑했던 것. 가장 좋아했던 것이 뭐였는가 봤더니 돈이었다. 돈을 버리기 시작했다. 그 다음부터 내 인생의 십분의 일로 살았다. 아이들에게 사고싶은 거 안사주고 냉장고가 텅텅 비었다.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십여년 전에 회사에 유혹이 있었다. 계약을 통해 5%만 그 회사에 주고, 4천만불 현찰을 개인적으로 마음대로 쓰게 해주겠다고 했다. 내일 사인을 하게 되는데 마음을 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는데 ‘네가 그 돈이 필요하니? 너무 편안하고 배부르고 등 따뜻해지면 너가 나를 찾겠니?’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날 회사에 난리가 났다. 제가 안 받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돈이 나를 잡는 것이 되면, 하지 않았다. 

2년 전 미국 경기가 안좋아졌다. 미국에 투자를 덜하자 라는 얘기가 나왔다. 저는 미국에 도와줄 것이 없을까 하다가 일자리를 창출시키는 것이 미국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친구들한테 ‘올해 7천명을 더 고용한다, 그러기 위해서 거기에 전력투구한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남들은 오픈안하는데 왜 너만 여나? 남들 장사 안되는 데 혼자 잘된다’는 식으로 시기질투를 많이 받았다. 그 때 오픈했던 가게들이 장사가 더 잘된다. 어떻게 해서 비즈니스가 그렇게 잘 됐나고 하는데, 내가 한게 뭐가 있어요? 내가 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 밖에 없다.

모든 것이 협력해 선을 이룬다. 약 2주 전에 아내가 북한에 갔다왔다. 상황을 너무 잘 안다. 내 손을 잡고, 계속 말은 안하고 울면서 ‘집 팔어 집 팔어’ 그런다. 거기에 옥수수 사서 보내야 된다고. 아내가 단기선교 갔다가 인천공항에서 이빨닦고 세수를 하고 세면대에 젖은 물기를 닦는 청소를 하는데, 옆에 젊은 여자가 아줌마 여기도 닦아주세요…. (아내는)명품 가방 하나 없다. 세계 영향력있는 39인에 뽑혔는데 화장 한번 안해요. 집팔아서 다 갚아주재요. 어떻게해서 장사가 잘 되냐고요? 선교 얘기 하면, 주님이 작은 소자한테 한 것이 나한테 한 것이라고 하는 말이 마음에 들리는 데, 다른 거 생각할 것 뭐가 있어요? 뭐가 성공이고 부자인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이 자리에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