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목회

 

바보처럼 목회를 하다가 은퇴하신 어느 목사님의 아들이,

  아버지의 은퇴찬하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마음을 담아 쓴 글이다.

  

  “저의 아버지는 부산서지방 부일교회의 김무송 목사님이며,

  오늘 대구제일교회에서 은퇴하시면서 찬하예배를 드리신다.

  참석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대신한다.

  나는 아버지,어머니란 말로만도 가슴이 벅차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만 삼형제로 다섯 식구다.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뼈저리게 가난하셨던 분이다.

  옛날 부산의 최고 명문이었던 경남 중학교에 합격하시고도 가난해서 진학할 수 없었다.

  결혼 후에도 가난은 계속되었다.

  온 가족이 누우면 뒤척일 수도 없는 비좁은 단칸 방에서 살았고,

  40년 전의 이야기지만 생활비 만원으로 온 가족이 살아야 했었다.

  방 2개짜리 전세로 옮기신 후, 조카 한 명까지 거두어 돌보셨다.

  얼마 후, 다행스럽게도 그 사촌형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둘째인 나는 돐이 되기도 전에 원인불명의 설사병으로 3개월 이상 고생하다가, 탈수 및 영양 실조로 죽음 직전까지 갔지만, 병원에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결혼 예물까지, 전 재산 모두를 온전히 하나님께 내려놓고 눈물로 간구하셨다.

  그 눈물 때문에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부산서지방의 어느 교회에서 25세에 집사, 30세에 권사, 35세에 장로가 되신후, 목회를 조금 늦게 시작하셨다.

  부담임으로 사역을 하시다가, 1983년에 부산동지방에서 교회를 개척하시고,

  1993년에 서지방으로 옮기셔서 목회하셨다.

  담임목회는 2개 교회에서 27년간 하셨고, 이번에 1년 앞당겨 자원 은퇴를 하신다.

  내가 철없던 시절 아버지를 통하여 느낀 목회자의 모습은 가난, 희생, 봉사 뿐이었다.

  유창한 설교를 통하여 부흥시키는 목사님이 되시기를 바란 적도 있었고, 재미난 설교로 청중을 모으는 능력을 지닌 목사님이 되시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평범한 설교를 하는 작은 교회의 목사님으로 27년을 지나셨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김치보다 고구마 줄기를 더 많이 먹이셔야 했고, 때로는 간장을 아들에게 반찬으로, 그리고 어떤 날은 쌀이 떨어졌다고 눈물을 보이신 적도 있으셨다.

  주스가 먹고 싶다고 하니, 주스에 물과 설탕을 타서 양을 부풀렸던 아버지,

  떠먹는 요구르트가 나온 지 3-4년이 지난 후에나 사주신 것을 먹고, 시큼한 맛을 쉰것으로 알고, 온 가족이 가게에 항의하려 갔다가 이상한 사람 취급받았던 우리 가족이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삼겹살 외식을 못 시켜준 가장이 나의 아버지다.

  형이 고등학교 3학년일 때, 학급비 5만원을 못 내셔서 키 작은 우리 형을 제일 뒷자리에 앉히신 아버지다. 

  둘째인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심한 급성 간염으로 입원시키라는 의사의 말에도 3개월간 집에 있게 하신 아버지,

  동생은 영양실조와 소아 결핵에 결렸는대도, 보고만 계시던 아버지가 나의 자랑스런 아버지다.

  아버지는 27년간 새벽예배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으시다.

  또한 한 번도 휴가가 없었던 무능한 목사님이다.

  못하는 설교 준비는 뒤로 하고, 27년간 교회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하신, 설교 전문 목회자가 아닌, 미화 전문 목회자였던 나의 아버지, 장단 맞춘다고 27년간 교회의 부엌일을 하셨던 어머니 그분들이 이제는 자랑스럽다.

  2009년 만장일치로 부산서지방 감리사로 추대되시고도 사양하신 목사님이 우리 아버지다.

  다른 분들은 감독님, 감독 회장님도 하시는데 나의 아버지는 감리사도 못하시고 은퇴하신다.

  은퇴하시면서도 교회에서 빈손으로 나오시며 헌금 더하지 못해 죄스러워하시는 가난 전문가 우리 아버지, 퇴직적립금도 중간에 정산하셔서 전액 헌금하신 우리 아버지, 결혼 후 이제까지 40년간 추수감사헌금은 무조건 한 달 수입 전액을 바치셨던 무모한 우리 아버지,

  30년 전 운전 면허 따시고 좋아하셨는데, 결국 티코도 한 번 운전 못해보신 우리 아버지,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이웃을 도우시고, 가족을 위해 항상 기도하시고, 매일같이 전교인의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교인이 많지 않아서 가능함…….)하시고, 희생하시던 우리 아버지가 이제는 자랑스럽다.

  아들 한 명은 목회하기를 내심 바라셨지만 아버지의 가시밭길 같은 목회를 보면서 우리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기로 의기투합했던 우리 삼형제가 이제는 조금 부끄러워진다.

  어린 시절 철없이 30배, 60배, 100배 열매주신다고 하셨으니 내가 어른이 되면, 아버지보다 30배, 60배, 100배 돈 벌게 해 주세요 라고 어이없는 기도를 한 나에게 응답하신 것같다.

  지금 형은 세계1위라고 하는 S전자 책임연구원이 되었고,

  나는 전문의가 되어 개원하였고,

  동생은 한의사가 되었다.

  세 명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 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아닌 것이 없다.

  아마 이제껏 가난하게 사신 아버지를 잘 모시라는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

  아버지에게 축복하시면 또 다 바치고 가난하게 지내실 것 같으셔서 아들에게 맡기시는 하나님의 센스가 아닐까 싶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기도와 희생의 결실임을 우리 삼형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지금 지나고 보니 매주일 하셨던 아버지의 설교는 항상 평범했지만, 아버지의 70년 인생 자체가 가장 길고도 위대한 설교였다.

  그것을 마흔이 되어서야 이제 깨닫는다.

  깨닫고 보니 아버지가 은퇴하신다.

  아버지의 은퇴를 진심으로 찬하드린다.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감독회장 문제로 칼날을 시퍼렇게 세우고 밤낮없이 싸우는 감리교게시판에 오른 글이어서 여기에 전문을 실었다.

  참으로 바보같이 목회하신 분이시다.

  번영과 성공을 설교하는 시대에 복음을 설교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으셨기 때문이다.

 

  A. T. Robertson이 그의 저서 “The Glory of the Ministry” 에서 ‘위대한 명성을 지닌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 인격이 변화된 면에서는 초보자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날마다 키재기에, 힘겨루기에, 편가르기에 핏발을 세우는 목회자들이 이 글을 보았으면 좋겠다.

  선한목자는 정말 바보처럼 목회하고 바보처럼 산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기 때문이다.

  그렇다.

 

  할렐루야!   



류심현 목사 칼럼에서 가저옴(2010년4월23일에 쓴글)

 


 

류심현 목사

현재 소명감리교회 담임( 한국 경기도)

*Calling World Mission Center 대표

  미국, 러시아, 중국, 필립핀,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에선교사 파송

  일본, 방글라데시 협력선교

*국, 내외 부흥회, 선교지 집회, 선교사 수련회 1200 여회이상 집회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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