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病



‘아아~ 불쌍한 대학강사여. 새벽부터 열두 시간 하고 오니까
집에 오면 애기 업으라 하고 밤중에는 촛불 켜라 하네….’
국어학자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30대에 이런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수필에서 썼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 곡조에 자신의 작사를 붙인 것이다.
강신항-정양완 교수는 맞벌이 부부였고 아이들은 한 살부터
네 살까지 넷이었다.
 
강 교수가 야간강의를 마치고 11시쯤 집에 오면 엄마는
이미 지쳐 있고 아이 넷이 병아리처럼 아빠를 반겼다.
아침에 아이들을 남에게 맡기고 대문을 나설 때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강 교수 부부는 아이들이 제 앞가림할 때쯤 되면 시골 할머니
에게 보내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지내게 했다. 강 교수는
“어머니는 손주를 가까이할 수 있어 좋아하셨고 아이들은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아 좋았다”고 썼다.


1960년대 초만 해도 맞벌이 부부를 찾기 힘들 때였다.
대가족 제도의 풍습도 많이 남아 어린 시절 한때나 방학을
시골 조부모 밑에서 보내는 일이 흔했다. 도시의 아이들은
일생 잊지 못할 ‘시골 체험’을 하고 예절이나 근검·절약 같은
덕목을 할아버지 할머니 무릎 밑에서 배웠다.
 
지금은 많은 게 달라졌다. 젊은 부부 가운데 맞벌이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0~3세 영·유아의 70%, 미취학 어린이의
35%가 조부모 밑에서 크고 있다고 한다. 팍팍한 살림살이에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면 부부 모두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실리를 위해서나 믿을 수 있다는 점에서나 아이는 부모에게
맡기는 게 제일 낫다. 그러나 평생 자식 키우고 결혼시켜
이제 느긋하게 발 좀 편하게 뻗어보려는 부모 입장에선
‘황혼 육아’가 그리 반가운 것은 아니다.
 
하버드대 연구팀이 일주일에 9시간 이상 손주를 보는
할머니 1만3000여명을 4년에 걸쳐 조사했다. 심장병 발병률이
손주를 보지 않는 할머니에 비해 55%나 높게 나왔다.
 
몸무게 6~7㎏ 되는 돌 무렵 아이를 들면 그냥 서 있을 때보다
허리가 4배의 압력을 받는다고 한다. 국내 어느 병원에선
허리통증 환자의 25%가 육아 때문에 병을 얻은 것으로 조사됐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주들이지만 말도 안 통하는
아이들을 하루 10시간 이상 돌보다 보면 스트레스, 식욕저하,
불면증도 생긴다. 손주는 보고 싶고, ‘손주병(病)’은 무섭고….
이래저래 이 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우울하다

 

글보낸이: 민 용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