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모순이나 오류가 있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성경에 모순이나 오류가 있다는 주장은 타당한가?

 

 


성경에 모순이나 오류가 있다는 주장은 자주 성경을 믿지 않기 위한 하나의 구실이 되고 있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성경을 읽지 않았거나, 실제로 그것이 모순인지 아닌지를 세밀하게 분석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명백한 모순으로 보이는 구절을 읽게 될 때, 기독교인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성경의 모순이나 오류라고 주장되는 것들은 대개 1)모순이 아니거나 2)잘못된 번역이거나 3)세속적 과학(진화론)에 근거한 소위 과학적 오류에 속하는 것들이다.

 

성경은 비록 오랜기간에 걸쳐서 다양한 그룹의 저자들에 의해서 다양한 형식으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이라는 진정한 한분의 저자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에 처음에는 모순되어 보인다 하더라도 그분의 말씀은 진실로 모순되는 점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더 깊이 살펴보아야만 한다.

 

한 전문가가 말한 것처럼,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그리고 하나님이 진리의 하나님이시라면… 성경의 두부분이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 이 두 부분 또한 한부분에 대한 우리의 해석에 오류가 있음에 틀림없는 것이다.”

많은 추정되는 불일치들은 두 구절을 서로 잘못된 반대로 위치시킬 때임을 유념해야 한다. 예를 들면, 전도서 7장 29절은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시편 51편 5절은 “내가 죄악중에 출생하였음이여…”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전도서 7장 29절의 말씀은 원래 정직하도록 창조되었던 아담과 하와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고, 시편 51편에서 다윗왕은 아담의 타락한 후손들 중 하나로서 그의 개인적인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 모순이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공격하는 주장들은 자주 번역작업 동안에 생겨난 일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문제들의 대부분은 당신이 원문 성경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직접 찾아보거나, 그 언어들을 다룰 수 있는 동료를 가지고 있다면, 매우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레위기는 박쥐를 ‘새’로서, 곤충의 다리를 네 개로 기록했다는 것이다.

 

또한 4복음서는 십자기에 붙어 있었던 팻말에 대해 서로 다른 4가지의 설명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마 27:37)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막 15:26)

“그의 의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눅 23:38)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요 19:19).

 


그러므로 모순점을 찾고 있는 사람들은 “보라, 성경은 오류로 가득하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성경을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서, 전적으로 거부하기로 결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은 4복음서들을 조화시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만일 그 팻말이 단순하게 “이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면 전혀 모순이 없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신뢰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교만한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그의 말씀인 성경에 외견상의 모순들을 포함시키셨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 10:21).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고전 1:27).

 

만일 어떤 불경건한 사람이 스스로 교만하여져서 복음에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리고 대신 성경의 오류와 모순들을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의 교수대를 만들기에 충분한 목재와 재료들을 주시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원리는 유다왕 시드기야의 포로됨에 대한 설명에서 잘 나타나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시드기야 왕에게 하나님이 그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시드기야는 자기가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질 것을 전해 들었다.

 

“…보라 내가 이 성을 바벨론 왕의 손에 넘기리니 그가 차지할 것이며 유다 왕 시드기야는 갈대아인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반드시 바벨론 왕의 손에 넘겨진 바 되리니 입이 입을 대하여 말하고 눈이 서로 볼 것이며 그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어가리니 시드기야는 내가 돌볼 때까지 거기에 있으리라…”(렘 32:3-4).

 


이것은 예레미야 39장 5-7절에서 확인되는데, 그는 포로가 되어 느브갓네살에게 보내졌고, 그때 그들이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사슬로 결박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벨론의 왕이 립나에서 시드기야의 눈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였고 왕이 또 유다의 모든 귀족을 죽였으며 왕이 또 시드기야의 눈을 빼게 하고 바벨론으로 옮기려고 사슬로 결박하였더라”(렘 39:6-7)

 

그러나 에스겔 12장 13절에서는 하나님이 친히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다.

“내가… 그를 끌고 바벨론에 이르리니 그가 거기서 죽으려니와 그 땅을 보지 못하리라”(겔 12:13).

 

성경비판가들에게 이 구절은 성경을 공격하고 반대할 수 있는 재료가 된다. 이것은 분명히 성경의 오류처럼 보인다. 성경의 세 구절들은 왕이 바벨론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성경의 다른 구절에서는 그가 바벨론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비판가들은 사람이 어떤 곳으로 끌려갔는데 어떻게 그곳을 보지 못할 수가 있는가?라고 말한다. 만약 시드기야기 눈이 멀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사람의 말처럼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정확히 기록된 대로 일어났다. 시드기야는 느부갓네살을 대면했고, 목전에서 그의 아들이 살해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나서 바벨론 왕은 시드기야를 바벨론으로 끌고가기 전에 그의 두 눈을 뽑았다(렘 39:6-7).

 

이것이 성경의 많은 ‘모순과 오류들’처럼 보이는 구절들의 뒤에 있는 근본적인 원칙이다. 하나님은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기 지식을 자랑하고, 자기 의를 자랑하는 자들에게는 상황을 역전시켜 버리신다. 그가 거만하게 하나님의 나라 밖에 서서, 그가 생각하는 성경의 불신적 증거들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믿음을 실천할 준비가 되어있고 겸손하게 허리를 굽히는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영생의 문을 낮추신다는 것을 그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순이나 오류로 보이는 성경 구절들에 대해 즉각적인 설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진리의 말씀이라는 믿음 위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좀더 배우고 살펴보아야만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무지와 교만을 청소해 내기만 한다면, 모든 경우에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오류를 범하셨다는 생각은 가능성이 없는 생각이다.

 

한국창조과학회/이병수 편역, 정확무오한 성경’ (세창미디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