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군인, 참신앙인 채명신 장로


 

 

참군인이자 참신앙이었던 故 채명신 장로

베트남 선교 위해 힘써…유신 반대해 군복 벗기도

CBS노컷뉴스 이승규 기자



장군 출신이면서 장군 출신 묘역 안장을 포기하고, 사병 묘역에 안장 되는 故 채명신 장로. 유가족들이 슬퍼하고 있다.

주월남 한국군 초대 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중장 故 채명신 장로.

고인의 계급은 장군이었지만 베트남 전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장군 출신 묘역이 아닌, 사병 출신 묘역에 안장됐다.

장군 출신으로 장군 묘역 안장의 혜택을 포기하고, 사병 묘역에 안장이 된 것은 채 장로가 처음이다. 장군 묘역은 26.4㎡(8평)를 사용할 수 있지만, 사병 묘역은 3.3㎡(1평)만을 사용할 수 있다.

묘비 역시 장군들은 높이 90cm, 가로 36cm의 묘비를 세울 수 있지만, 사병들은 높이 76cm, 가로 30cm 정도의 묘비만 세울 수 있다.

권위나 의전에 연연하지 않는 채 장로의 이런 정신은 생전에 보여준 일화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베트남 전쟁 당시 장교 숙소를 거부하고, 소대원들과 함께 막사에서 지내 후배 군인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또 베트남 전에서 대민작전을 나간 소대원들에게 ‘베트콩 1백 명을 죽이는 것보다 한 명의 주민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 일화는 지금까지 군에서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군에서 제대한 뒤에는 베트남 선교협회 초대 회장을 맡는 등 우리나라가 수교를 맺기 전부터 베트남 선교를 위해서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채 장로가 군인으로서는 물론 일반 삶에서도 타인의 귀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의 신앙도 한몫 했다.

영결식에서 기독교 예식을 거행한 김태식 목사(육군 군종실장)은 “신앙과 삶이 일치하기가 쉽지 않은데, 故 채명신 장군이야 말로 일치했던 분”이라며 “정말 나라를 사랑하셨다”고 말했다.

황해도 출신인 채 장로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지만 신앙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던 공산주의자들을 보고, 군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전쟁에 참전하면서 수 십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채 장로는 지난 2002년 CBS TV 새롭게 하소서에 출연해 “목사가 되려고 했다가 군인이 된 것도, 수 십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고 간증하기도 했다 .

채 장로는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에 참여하긴 했지만, 유신독재를 반대해 군복을 벗을 정도로 강직한 군인이었다.

비록 故 채명신 장로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정신과 삶은 길이길이 남아 있을 것이다.

hanseij@c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