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제자들

 

주님의 제자들, 얼마나 바뀌었나?

김삼

 


 





요즘의 소위 영성가들은 ‘변화’를 많이 강조하죠. ‘변화’하지 못하면 건강한 교회나 신자일 수 없다고들 목청을 높여댑니다. 그런데 정작 그 변화가 어떤 변화인지를 따져 보면, 뭔가 시류(時流)를 타는 듯 세속 냄새가 나려 합니다. 오늘날 버랔 오바마 같은 정치인들, 세계 경제계, 뉴에이저들과 비밀집단 사람들도 한결같이 입 맞춰 ‘변화’를 강조해 왔거든요. 그런 기류의 변화라면, 정말 크리스천으로서 바람직한 변화이겠냐는 것입니다. 



물론 세계는 빠른 속도로 변해 가니까 우리가 그런 변화를 전혀 무시해서도 안 되겠죠. 가령 가시적 세상과는 별도의, 세상의 ‘미러 사이트’ 같은 인터넽 속 세상이 있죠. 인터넽을 완전 무시하고 교회가 유지될까 싶을 정도입니다. 웹을 깡그리 무시하는 어떤 기성세대가 과연 오늘날 차세대에 제대로 근접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변화 변화 변화를 떠드는 지도자들이 과연 성도의 온전한 변화를 얼마나 추구할까도 묻고 싶습니다. 변화다운 변화인가라는 것이죠.





우리가 성경에서 발견하는 정말 획기적인 변화 한 가지는 다수가 갈릴리 어부였던 주님의 제자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불과 50여일 전과 대조해 볼 때, 달라도 너무 달라졌습니다. 



어떻게 바뀌었는지 대강 전후를 살펴 보죠.





12 제자들 중에 으뜸으로 꼽히곤 하는 쉬몬 페트로(시몬 베드로)는 “주님은 크리스토(=메시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는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예수님께 칭찬 받은 사람이죠. 얼핏 아주 듬직하고 믿음직한, 마치 튼실한 바윗덩이처럼 느껴지곤 하죠. ‘페트로'(당대 통상어인 아람어로 ‘케파’. “돌”이란 뜻)란 이름도 주님이 지어 주셨죠. 수많은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버렸을 때도 그는 “영생의 말씀이 계신데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라고 고백한 사람입니다(요한복음서 6’66~69). 파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주님의 동생 야코보, 또 사도 요한과 함께 오순절 이후 교회의 “기둥 같은” 사도가 되었습니다(갈라티아서 2’9).



그런데 알고 보면 페트로는 본래 기둥답기보다 우리의 상상 밖으로 ‘기복’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하여 아내까지 둔 어른이었으나 사춘기 소년이나 ‘기분파’ 같은 면모를 보이니까요. 사실 그는 가장 어렵사리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이었고, 그래서 오래 갈고 닦여야만 했던 존재였죠. 주님께서 여러 차례 몸소 그를 방문하셔서 이런저런 친절을 베푸셨지만, 아마도 의혹과 거부감 속에서 방황했던 듯 우여곡절 끝에야 비로소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마태복음서와 마르코스(마가)복음서에는 이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주님을 만나자마자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선뜻 주님을 따라간 것처럼 묘사되어 있죠(마태 4’18~21). 그런데 또 다른 복음서인 루카(누가)복음과, 페트로와 가장 가깝던 인물인 (사도) 요한의 복음 등 두 복음서는 페트로의 제자 입문 과정을 좀 더 상세히 알려 줍니다. 



그래서 4복음서 기록 모두를 짜 맞추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납니다. 



쉬몬은 본래 동생 안드레와 함께 침례(세례) 요한의 여러 제자들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참고: 요한복음서 1’35~39). 그랬다가 침례 요한이 가리키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따라가 직접 만나 본 아우의 안내로 예수님을 처음으로 알게 됩니다(1’40~42). 처음 만나뵌 예수님께로부터 “그대는 바르요나(요한의 아들) 쉬몬. 앞으로 그대를 케파라고 부르게 될 것이오”라는 복스런 말씀까지 들었지만, 그다지 미덥지 않았던 모양인지 그는 쉽사리 어부 일을 놓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은 쉬몬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십니다(루카 4’38). 물론 쉬몬으로서는 고맙지 않을 리 없겠지만, 페트로는 여전히 어부 일을 놓지 못합니다. 



하루는 주님이 갈릴리 호숫가에 서서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이하 뤀 5’1~11 참조). 하나는 쉬몬의 것, 다른 하나는 그의 동업자인 야코보/요한 형제의 배였지요. 마침 이들은 간밤이 새도록 물고기를 찾았지만 도무지 잡히는 것이 없자, 하릴없이 호숫가에 배를 대어 놓고 배 밖에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 때 쉬몬의 배에 오르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십니다. 오랜 경력의 고기잡이인 쉬몬은 자신의 경험상으로 명백히 아는 정황을 말씀드리고도, 순종하여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런데..깊은 곳에서 잡힌 물고기떼가 엄청나게 많아 그물이 찢어졌고, 페트로를 돕는 모든 어부 일행과 동업자인 옆 배의 야코보/요한 형제가 다 동원되어 두 배에 나눠 채우는데도 배가 잠길 정도였습니다. 

 

이럴 수가..! 도대체 이게 웬 일이랍니까? 수십 년 어부경력이 ‘무’가 돼 버린다는 느낌이..

“아니, 애들이 밤새 어딜 갔다가 이제서야..”

한편으로는 한탄을, 한편으로 찬탄을 하면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그물 속에서 몸부림 치는 수많은 싱싱한 물고기들을 내려다 보던 페트로는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자, 주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상대방은 여느 사람이 아니심을 절감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처음 대할 때 이런 두려움부터 찾아듭니다.

페트로 속에는 여태 몇 번 주님이 찾아와 불러 주셨어도 여전히 자신의 생업에 집착했던 데 대한 두려운 마음도 있었을 터입니다. 하지만 주 님은 “무서워 말게나. 이제 앞으로는 자네가 사람들을 취하게 될 것이라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페트로는 배를 육지에 대자, 모든 것을 접고 주님을 따르게 되죠. 그 날 비로소 주님께 온전히 승복하여, 대신 “사람을 취하는 어부”가 되는 길로 접어든 것입니다. 



그러고도 페트로는 훗날 주님의 죽음/부활 후에도 일시 고기잡이 일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요복 21’3). 그만큼 들쭉날쭉 기복이 많은 개성이고, 아울러 손에 익은 어부 생활에 집착이 많았다는 암시이죠.  



페트로는 걸핏하면 자신이 주님의 사람임을 잊은 것 같은 돌발행동을 하곤 합니다. 전술했듯이, 해프닝처럼 문득 훌쩍 옛날 어부생활로 돌아가는가 하면, 신앙고백에 대한 칭찬을 듣고 나서 우쭐해졌는지 마귀의 유혹을 받아 주님의 수난을 말렸다가 책망을 받기도 합니다(마 16’16~19; 21~23 참조). 

딴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목숨까지라도 기꺼이 내놓으며 주님을 따르겠다고 굳게 맹세와 장담을 해 놓고도 정작 주님의 체포 현장에서 딴 제 자들과 함께 뺑소니를 쳤던 그입니다. 멀찌감치서 주위의 눈치를 보며 주님의 뒤를 따르다 재판정 주변에 얼쩡거리는 그를 알아 본 여종들과 곁에 선 사람들의 말 몇 마디에 그만 와락 겁을 집어먹고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기도 했죠(마 26’56,58,69~75). 그러나 주님의 예언대로임을 알고 밖에서 심히 통곡합니다. 겥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체포되자 님을 보호한다는 심정으로 만용을 부리기도 합니다(26’31~35). 허리에 찼던 칼을 빼어 애꿎은 말쿠스라는 종의 귀를 베어버린 것이죠(마 26’51, 요복 18’11).  



하지만 이런 페트로의 모습이 곧 우리의 것일 수가 없다고 감히 장담을 못 하죠. 우리는 찬송가 가사대로 “(이스카리옽) 유다처럼 안 되기를..” 하고 간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페트로와 같은 시기에 주님께 부름받아 응했던 제베대의 두 아들인 (사도) 야코보/요한 형제는 어땠나요? 주님은 두 형제의 불 같은 성미 때문에 ‘보아네르게'(우레의 아들들)라는 유머러스한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마르코스복음서=맑 3’17). 형 제는, 사마리아의 한 동네가 주님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서 옛날의 소돔/고모라라도 연상한 양, “주님, 그냥 하늘에서 불이 확 떨어져 몽땅 태워 버리게 만들까요?”라고 치기어리고 얼토당토 않은 제안을 하여 주님께 책망을 듣습니다(뤀 9’52~55). 또 어머니까지 모시고 와서 형제가 함께 하늘나라에서 좌정승/우정승이 되게 해 달라고 참 철딱서니없는(?) 주문을 주님께 하여, 동료 제자들의 노골적인 불쾌감을 사기도 했지요(마 20’20~28). 

특히 제자들 중 막내인 요한은 주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주님이 되살아나신 날 페트로와 함께 무덤에 가서 먼저 달려갔으나 감히 들여다보지 못하다가 페트로가 도착해서야 비로소 들여다보는 소심함을 보이기도 합니다(요복 20’2~5). 

 



토마(도마/토마스)는 또 어떻습니까? 

그는 “주님과 함께 죽으러 가세!”라고 대단한 담력을 보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되살아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한 동료 제자들이 전하는 부활의 희보를 듣고도 주님의 못 구멍난 손(목)과 창에 찔린 옆구리에 자기 손가락을 직접 찔러 넣어보기 전에는 (그 손가락을 장에 지질지언정?) 절대로 못 믿겠다(!)고 한 사람이기에 ‘의심의 토마’라는 악명(?)을 얻은 사람이죠. 그러다 결국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말대로 주님의 상처를 만져 본 다음에 비로소 믿고 신앙을 고백하게 됩니다(요복 21’24~29). 주님은 그런 그에게 “자넨 날 보고야 믿는 건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복되다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타나엘(나다나엘, 바르톨로매=바돌로매)은 어떤가요? 그는 비록 선비처럼 무화과나무 아래서 묵상을 즐기던 사람이지만, 처음에 나자렡 예수에 대한 간접소개를 듣자, “나자렡에서 뭔 선한 것이 나겠냐?”고 지방색 같은 것을 풍기며 콧방귀를 뀐 사람입니다(요복 1’45,46). 물론 주님이 뭔가 다르신 분임을 느낀 뒤에는 승복했지만 말입니다(48~51절). 





그런가 하면, 12명 중 (쉬몬 페트로가 아닌) 또 다른 ‘쉬몬’은 당대 유대 애국정당의 하나였던 ‘젤롵'(열혈)당의 당원(a zealot)으로 추정되는 사람이었습니다(뤀 6’15; 행 1’13). 과연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그가 언제까지 이 당원 노릇을 겸하여 했는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중 간기인 마카비 당시의 열혈당은 고대 미쯔라임출국(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정의를 위하여 우상숭배 간음자를 창으로 찔러죽인 피네하스(민수기 25’11)를 본받아 율법을 중시한 나머지 폭력도 불사하던 무리였습니다. 그러던 훗날에는 애국심이 범죄에까지 이용될 정도였답니다. 하지만 단순히 쉬몬의 별명만 ‘열성분자’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밖에 이스카리옽 유다나 심지어 야코보-요한 형제도 당원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성경 본문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추정임. ]





그밖에도, 열 두 제자 축에 끼이진 못했지만, 나중 교회 주요 지도자와 성경기자가 된 주님의 동생-야코보와 유다(신약성경 야코보서/유다서 저자)가 있습니다. 처 음에는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한심한 사람들이었지요. 쉬몬/야코보/유다/요세(요셒) 등 네 아우들과 2명 이상의 누이 등 주님의 동생들은 갓 사역에 나선 주님을 비웃으며 좀체, 아니 거의 전혀 믿어 주지를 않았습니다(요복 7’2~6). 그 정도로 형/오빠를 우습게 봤지요. 또 어머니 마리아조차도 “우리 맏이가 혹시 좀 돈 거 아냐?”하고 되찾으러 나섰을 때, “우리 형님 미쳤나 보다”고 함께 실종자 탐색 나들이에 따라 나서기도 했습니다(맑 3’21, 참고 3’31~35). 





자, 한 때 이랬던 이들이 과연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어떻게 변했습니까?



페트로는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정말 놀랍게 변하여 첫날부터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합니다(행전 2’14). 그러나 훗날 한때나마 율법주의자 같은 외식된 모습을 보여 한참 후배 사도인 파울에게 책망을 듣기도 합니다(갈라티아서 2’11~14). 아무튼 페트로는 때로는 박해도 기꺼이 받으며(행 12’3~17) 동족과 이방인 대상 선교를 하다가(8’14~25; 10’24~48; 페트로A서=벧전 5’13) 주님의 예언대로(요복 21’18,19) 담담히 순교자의 길을 걷습니다.  



같은 제베대의 아들로서 요한의 형이었던 야코보는 12 제자들 중에서는 첫 순교자가 됩니다(행 12’2). 

그러나 동생 요한은 페트로와 함께 지도적 역할을 하면서 특히 과거 3년 동안 각별히 누렸던 주님의 사랑을 전하다가 성도들과 함께 복음 때문에 박해를 받던 중 파트모스 섬으로 유배를 가, 거기서 종말 묵시록인 요한계시록을 쓰게 됩니다(요계 1’1,9). 





이처럼 페트로/야코보/요한 등 주님의 ‘3총사’들은 각기 엄청난 변화를 보였고, 그밖에도 로마제국 정부에 아부해야 했던 세무관이었다가 주님의 부름을 받은 마태(레뷔)는 오순절 후 영광스럽게도 신약의 첫 권서(券書)인 마태복음을 썼으며, (배신자 이스카리옽 유다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제자들이 각각 맡은 대로 복음을 전하다가 승리와 순교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고 그렇게 비웃던 주님의 동생들도 오순절 이후인 훗날 담대히 복음을 전하면서, 야코보는 교회의 지도적 역할을 하며(행 15’13, 갈 2’9) 신약 성경 중 야코보서를, 유다는 유다서를 각각 썼습니다(유다 1).  



모두들 역동적인 사역자들, 섬김이들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였지요.

변화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상에서 벗어나 거듭난 성도는 누구나 반드시 이런 변화를 겪게 되어 있습니다. 

전에 세상을 위하다가 이젠 주님과 그 나라를 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세상을 닮아 현세에 유행하는 이상한 ‘영성’이나 뿌리는 자들은 자신이 진정 변화된 사람인가를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주님은 그런 ‘변화’를 바라시지 않기 때문이죠. 

 

글쓴이:   김 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