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이 나이가 들면 철이 드는가”|영적 성장의 길(way)


  “사림이 나이가 들면 철이 드는가”|영적 성장의 길(way)

 

나는 어릴때 장난끼가 심하여 부모님께 “홍아 제발 철좀 들어라 니가 언제쯤 철들래”이런 핀잔을  많이 들었다.

어릴때 그 소리를 자주 들었던 편이라 아! 사람은 나이가  들면 철이  드는가 보다 이렇게 생각 했었다.

그런데 어릴때 가졌던 나의 이러한 생각은 나이가 좀 들면서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오십을 지난지 한참 되었으니 인생을 짧지않게 산 내가 나 자신을 면밀히 살펴보면 온전히 철이 들었다 할 아무런 증거도 찾을 수 없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내 또래 사람들이나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볼 때에 나이를 오지게 먹은만큼 철도 야무지게 들었는가를 살펴보면 아!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하여 자동적으로 철이 드는 것은 아니구나를 깨달을 수 밖에 없다.

혹시 나이가 좀 지긋하신 분들중에서 허참! 이런 궤변을 봤나 우리의 어디를 보고 아직 철이 안들었다는 거냐 그 증거를 한번 대 보라고 항변하실지 모르겠다.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를 판단하는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가장 쉽게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의 취미와  오락, 그리고 좋아하는 것이 무언가를 보면 대충 그 사람의 인격과 됨됨이를 어느정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다 그러했듯이 아주 어릴때는 장난감 자동차를 좋아하고 구슬치기를 좋아했다.아빠가 최신형 장난감 자동차를 선물하면 아이는 다음날 친구들 앞에서 보란듯이 자랑할 생각에 잠도 설칠 것이다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친구들과 놀며 입으로 붕..붕 소리도 내고 구슬치기를 하며 땅따먹기를 하며 즐겁게 잘도 논다.

그렇게 놀던 아이들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쯤은 아마 나이가 지긋이 들어 머리도 희끗 희끗해졌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은 그들은 어떤 취미와 오락을 하며 즐거워할까

어떤 자동차회사 광고에 대충 이런 문구가 나온적있다 “남자들의 영원한 로망” ….무슨 무슨 자동차 내 가슴에 사자가 산다 등등..

왜 수십억을 주고 이런 광고들을 할까.그들은 사람들의 속내를 훤히 읽었기 때문이다.

어릴때는 장난감 자동차에 울고 웃다가 나이가 좀 들어서는 진짜 자동차에 울고 웃고… 

또 어떤 아이들은 구슬치기를 하며 잘도 논다.친구들의 구슬을 몽땅 따가지고 올때의 그 흐뭇함..

그 아이가 자라면서 다행히도 인생길이 척척 풀려서 나중에는 사회 지도층이라는 위치에까지 오른이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주말이면 친구들과 함께 필드에서 골프를 치면서 무언가 뿌듯함을 만끽한다.

특히 이들은 자동차 트렁크에서 골프백을 싣거나 내릴때 유달리 시간을 오래 끈다

괜시리 골프채를 이리 넣었다 저리 넣었다 하면서 말이다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혹시 이런것은 아닐까.

나 골프치는 사람이거든! 나 좀 봐 주라고…!

골프에 인생을 걸었다 싶을 정도로  심취한 사람들은 자신이 치는 골프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내가전에 좀 어려울때 대리 운전을 하면서 그분들을 많이 상대해 보았기에 크게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어릴 때 친구들과 구슬치기에 웃고 울던 것이나 나이가 지긋하여 한 시대의 상류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 골프에 심취한 것이나

무슨 차이가 있을까?

차이가 있다면 손으로 튕기던 유리 구슬에서 좀더 큰 싸이즈의 골프공을 골프채로 좀 멋있게 날린다는 점… .  

어릴때의 장난감 자동차에 심취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진짜 자동차에 심취하는 이 정도가 아닐까.

그래도 이런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어른들은 아주 모범생이라 할 만큼 이 시대의 어른들 중에는 차마 글로 옮길 수도 없을만치 저급하게 노는 이들도 아주 많다.

그렇다 자연 상태의 사람은 가장 나이값을 할때가 언제일까? 아마 태어난지 한 3개월 정도 지나서 방긋 방긋 웃기시작하는 아기가 가장 나이값을 하는것은 아닐까 그때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다른이에게 행복을 주지 않는가.

사람은 왜 금쪽같은 시간을 수 없이 지나면서도 더 아름답게 나이를 먹지 못하는가.

이것은 아담의 죄성을 이어받은 부패성 때문일 것이다.부패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더 심해지는 것이기에…

그러면 이제 모든 사람들은 철이라는 것이 도무지 들 수 없는것인가.

사도행전 2:17절에보면 희망의 메시지가 있다 사람의 나이와 상관없이 “철이드는 것보다 더 좋은 그 무엇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였다.

그 중에 한가지만 해석해보자.

젊은이가 어떤 이들인가 가슴에 뜨거운 피가 들끓어 이 세상 모든것이 마냥 로맨틱하게  보이는 가장 육적인 때가 아닌가.

그런 이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시면 환상을 본다 하였다 환상은 영적인 신령한 세계를 보는 눈이 열렸음을 가리킨다.

육적인 눈을 가진이는 그것에 심취하지만 신령한 영적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이는 그 찬란함과 영광스러움에 도취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우리나라에 처음 선교를 왔던 분들은 대부분 꽃다운 나이의 젊은 남녀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더이상 세상의 향락이나 오락, 취미 같은것이 흥미가 없었다.놀림과 매 맞음과 육체적으로 한없는 고통을 당해야하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신령한 시각을 가졌던 그들은 그 고난의 길을 시온의 대로처럼 기쁨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들이 단순히 철이 좀 든 정도의 사람이었다면 도저히 그 길을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철 그 이상의 것인 성령을 받아서 육신의 유혹에 잡히지 아니하고 영광스러운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특히 성직자들)이 이 세상의 것을 지나치게 탐하다가 세상으로부터 돌직구를 맞고있다.

그들이 철이 들지 않아서일까

본래부터 인간이 철이 든다는 것은 인간의 희망사항일 뿐 아담의 후손인 인간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철이 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세속적인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는다 신령한 것에 모든것이 집중될 것이다.

세상에 한눈 팔다가 돌직구를 맞고있는 저 어처구니 없는 기독교인들은 어떤 시각이 발달된 사람들이었을까.

세상것이 미치도록 좋아서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길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육적인 눈이 매우 밝은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오! 주님 우리에게 철 그 이상의 것인 성령을 충만히 부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세속에 빠지지 아니하고 신령한 세계를 보며 그 신령한 세계의 보배스러운 가치에 우리가 열광하고 도취하게 하옵소서 그리로 향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