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이영자 (뉴저지 거주)

 

언제부터인가 나는 짝사랑에 몸살을 앓기 시작했다. 때론 길게 때론 잠시 동안. 짝사랑의 정의는 통상적으로 혼자 외롭게 사랑하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울고 행복해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짝사랑은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 혼자 사랑하는 것이라 하기보다 상대가 사랑한다는 것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자식을 짝사랑했다. 남편들은 아내의 아들 사랑에도 질투를 한다지만 때때로 나는 남편 눈치를 보며 아들을 짝사랑했다.

아이들은 나의 짝사랑을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결혼해 오롱조롱 두 딸 사랑에 푹 빠진 아들이야 조금은 이해하겠지만 싱글인 딸은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것이 부모의 짝사랑이다. 짝사랑이란 일방통행이다.

노년에 몇 십 년 함께 산 남편을 짝사랑한다고 말하면 그는 코웃음 칠 터이지만 고백한 적은 없어도 나는 남편을 짝사랑한다. 그가 인정하지 않기에 짝사랑이란 명칭을 붙인다. 한때는 지식을 흠모하고 명예를 때론 재물을 짝사랑한 적도 있었다.

짝사랑이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가 짝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바위에 부딪치는 포말과 같이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파도와 함께 밀려오기를 반복한다.

짝사랑의 최초 원조이며 최대 대가(great master)는 하나님이시다. 공허한 세상에 홀로 외로우셨던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을 찾아 인간을 만드셨다. 영광 받으시며 사랑을 나누시길 원했으나 결과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지만 오직 영적인 교감을 이룰 수 있는 인간만이 영원한 하나님의 동반자로 삼으셨다. 인간은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망과 고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죄의 길로 들어서는 인간들을 구원하여 짝사랑의 외로움에서 벗어나시기 위해 하나님은 구원의 통로를 열어 놓으셨다. 그 통로가 바로 분신이신 예수님이시다.

짝사랑의 값은 엄청난 희생을 지불해야 했다. 생명의 값은 죄가 없는 생명으로만 치를 수 있기에 그 값을 치르기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매달려 피 흘리시고 모든 죗값을 대신 치르셨다.

이것을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것이다. 짝사랑의 백미이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진정한 사랑은 자기 죽음을 동반하는 희생이 따른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이제는 모든 나의 짝사랑에서 헤어나 그분의 짝사랑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부활절을 맞아 사랑을 고백해본다. “Do you love Me?”

“Yes Lord. You know that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