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화 – “매 순간 감사하며 삶니다”


 “매 순간 감사하며 삶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돌려주고 싶다. 내사랑하는 한국에서 받은 축복

 

 “정말 괜찮아요. 이제 저는 하루살이죠. (삶이) 감사합니다. 그 전에도 매일 매일 감사하고 살았지만, 이제는 마음을 더 비워서 매초 매초 감사해하고 있어요. 호호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6)는 2005년 왼손 검지를 다쳤고 2011년 재기했다.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한 연주활동을 벌였다. 특히 지난해 아시아 15개 도시 투어를 시작으로 국제 무대에서 건재를 과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국내 연주회 때까지만 하더라도 손가락에 통증이 왔다. 현재는 그러나 “아주 좋아졌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21일 서울 구기동 자택에서 만난 정경화는 밝았다. 위대한 작곡가의 이름을 딴 두 마리의 강아지 ‘클라라’, ‘요하네스’와 집 구석구석을 뛰어다녔다.

부상 이전과 부상에서 회복한 뒤 연주하는 자세나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 달라진 것은 “몸이 집인데 이제는, 다 망가져서 그것을 고치려고 난리”라며 웃었다. “가장 달라진 건 노쇠했다는 점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바이올린을 5년 동안 건드리지 않아서 완전히 (과거의) 자신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어요.”

그간 너무 완벽주의자로 살고자 했다. “완벽해지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을 가까운 사람들이 지켜보게 하는 것도 미안했죠. 지금은 마음을 비워서 너무 행복해요. 작년까지는 기적적으로 (연주자로) 돌아와서 감사했는데 지금은 더 다른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됐죠.”

최근에도 통증 클리닉을 다니는 등 꾸준히 손 관리를 받고 있지만 많이 좋아졌다. “여태까지 연습을 머리로 했어요. 한두시간쯤 밖에 안 했죠. 지금은 하루 종일 생각하고 연습하는 날을 많이 보내고 있어요.”

정경화는 적을 두던 미국 줄리아드 음악원 교수 일을 줄이는 대신 이화여대 음악대학 석좌교수로 왔다. 한국의 후학 양성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자 함이다.

“한국에 돌아온 이유는 제가 받은 걸 돌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축복을 기가 막히게 받았는데 내 사랑하는 나라에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돌려주고 싶은 거죠.”

클래식 뮤직이 지구에서 마이너리티라는 판단도 한몫했다. “소수지만 클래식은 없어서는 안 되는 과목입니다. 클래식 문화가 없으면 사회가 문란해집니다. 팝 문화는 기분적, 흥분적인 것을 자아내지요. 클래식 문화는 자신의 영을 지배하는 것이에요. 그걸 알리는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28일 오후 8시 명동성당에서 펼치는 자선음악회 ‘그래도 사랑’과 6월13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어린이, 미래, 생명을 위한 헌정음악회-그래도, 희망…’이 그 예다.

무료로 여는 28일 프로그램은 G선상의 아리아를 비롯해 슈베르트 아베마리아, 바흐 샤콘느, 프랑크소나타로 구성했다. 대관령국제음악제로 인연을 맺은 뒤 그녀와 꾸준히 호흡을 맞추고 있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가 함께 한다.

“지금 한국은 가슴이 찢어지는 상황(세월호 참사)이죠. 하지만, 음악은 정말 위로가 됩니다. 명동 공연은 음악인으로서 많은 분들께 위로를 드리고 싶은 자리에요.” G선상의 아리아는 자신과 ‘정 트리오’도 활약하는 첼리스트 인 언니 정명화(70),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인 동생 정명훈(61)을 키운 어머니 이원숙(1918~2011) 여사와 아버지 정준채(1980년 작고) 선생을 위해 연주한 곡이기도 했다.

6월13일 공연에서는 정트리오 활동 이후 페스티벌을 제외한 무대에서는 처음으로 실내악을 들려준다. 케너와 슈베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그랜드 두오’를 연주한다. 또 케너, 첼리스트 양성원과 함께 슈베르트 피아노 트리오 Eb장조 D.929도 선사한다.

특히 꿈나무 아티스트와 무대에 오르는 자리도 마련된다. 임일균(14·피아노)은 정경화와 함께 드보르작 네 개의 낭만적 소품 Op75, 유지인(13·첼로)은 케너와 함께 사라사테 치고이네르바이젠 Op.20을 연주할 예정이다.

“영재 교육이 중요해요. 예술의전당 콘서트로 영재를 돕고 싶어요. 이제는 (음악교육을 위해) 유럽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돼요. 제가 유럽에 갔을 때 나이가 19세였는데 그 때 가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소프트웨어를 세련되게 다듬을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사람 각자의 섬세함에 따라 이 나라가 기가 막히게 발전할 수 있거든요.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해서 지금은 온 세계가 인정을 했어요. 하지만, 그 섬세함을 지켜주고 보호해주지 않으면 실망을 하게 될 거예요.”

음악의 깊이는 나이가 먹어가면서 달라진다고 했다. “인생의 겪음이 자기 음악에 자연스레 표현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변화했다.

“그간 제 자신을 너무 헐뜯고 살았어요. 괴롭게 살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연주하는 음악이 그래도 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순수해지지 않을까라는 기대가 있어요. 원래 저는 순수한 부모 밑에 태어나서 순수한 사람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마음을 끝까지 비워야 해요. 무엇을 하든 자기 행복은 두 손 안에 다 있거든요.”

정경화의 향후 일정은 빠듯하다. 10월에는 상하이와 항저우 등 중국 투어를 열고 12월에는 영국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에서 10년 만의 유럽 컴백 무대를 선보인다. 이어 영국의 리버풀, 퍼스 등지에서도 연주한다. 2015년 4월에는 일본투어를 연다.

다만, 많은 이들이 기다리는 정트리오 연주 계획은 아직 없다. “동생은 서울시향에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사람이에요. 같이 월드투어를 다니고, 최근 피아노 연주도 시작했으니 바쁘죠. 언니랑도 시간을 맞추기 힘들고요. 시간이 지나면 계획해봐야죠.”

예술의전당 공연 수익금은 아프리카 르완다 어린이들을 중점적으로 돕고 있는 온누리교회 산하 NGO 더멋진세상의 의료지원사업을 후원하는 데 쓴다. 일부로는 한국의 어린 음악가들을 지원한다. 지난 20년 간 3명의 르완다 어린이를 후원해온 정경화는 8월말께 르완다를 방문, 연주회도 연다

“르완다 현지 악기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케너도 같이 가기로 했어요. 주는 게 받는 것보다 만배는 행복하더라고요. 제가 항상 받아오기도 했고요.”

르완다든 한국이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나라의 희망이다. “이번에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아이들은 하늘의 별이 됐죠. 영웅이 될 거예요. 이 나라가 셈세함을 다지고 인내를 고쳐먹는데 큰 힘을 주는 생명이 될 겁니다. 그들의 이런 희망을 받고 온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나아가야 해요. 아이들 생명이 뜻이 될 수 있도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사진> 제이앤씨코퍼레이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