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2)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2)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소년가장 예수’

어머니·여섯 동생 부양하며 말씀과 순종 의미에 관심

바이블(Bible)이란 말은 헬라어 ‘비블리온(책)’에서 온 것이며, 이는 파피루스 나무껍질을 뜻하는 ‘비블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전에 모세와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책들은 천지 창조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역사에 대한 기록 속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땅에 보내신다는 약속으로 가득 차 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내가 경영한 것을 반드시 이루리라.”(사 14:24)

그 약속을 기록한 선지자들의 ‘책’과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증언한 제자들의 ‘기록’은 ‘성경’이 되었다. 또 이삭이 그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나무를 지고 올라간 모리아산, 마노아의 아들 나실인 삼손이 태어나고 묻힌 소라 땅, 새 왕이 태어날 곳으로 지정된 베들레헴, 장차 큰 빛을 보리라고 한 갈릴리 등 그 예표와 성취를 증거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작은 땅은 ‘성지’가 된 것이다.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마 2:22∼23)

로마 황제의 명령대로 호적 정리를 하려고 가는 나사렛의 목수 요셉과 함께 남편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던 마리아는 거기서 예수를 낳게 된다. 헤롯의 박해를 피해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했던 요셉은 헤롯이 죽은 후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고, 어린 예수는 그 나사렛에서 자라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를 비우고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인생의 출발선에 선 것이다.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마 2:23)

선지자들의 글 어디에도 그 이름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나사렛이란 곳은 신구약의 중간 시대쯤에 새로 생긴 마을로 보인다. ‘나사렛’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있다. 그 하나는 민수기에 나오는 ‘나실’이고 또 하나는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네첼(가지)’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이새의 뿌리에서 난 ‘가지’는 널리 알려진 그리스도의 상징이므로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전후 상황을 살펴 볼 때 칼뱅의 의견처럼 나사렛이라는 마을 이름은 ‘나실인’과 더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고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 하며.”(민 6:2∼3) 또 삼손의 사례처럼 머리털을 자르지 말라고 되어 있다.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 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민 6:5)

이 나실인의 서원은 30일 또는 그 이상의 기한이 있었다. 그러나 삼손은 평생 나실인이 되었고, 또 성경에는 평생 나실인으로 살았던 집단도 있었다.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 동안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살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가지지 아니하고 장막에 살면서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한 대로 다 지켜 행하였노라.”(렘 35:8∼10)

‘레갑’은 유다 지파의 기술자 집단으로 갈렙(글루배, 대상 2:9)이 그의 후처 에브랏에게서 낳은 ‘훌’의 제자들이었다. 훌의 손자 브살렐은 광야에서 성막의 제조를 지휘한 사람이다(출 31:2). 레갑 가문의 후예인 겐 족속의 기술자들도 훌의 문하가 되어 이들 모두가 ‘레갑 사람’으로 불렸다. 가나안 땅에 진입한 후 이들 집단은 베들레헴 근처 ‘에브라다’에 정착했는데 그 이름은 ‘에브랏’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이 기술 집단의 자존심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할 때 큰 상처를 입었다.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왕상 7:14)

가나안의 자손인 히람이 성전 공사의 총감독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부 15만명과 감독 3600명도 모두 이방인들로 채워졌다(대하 2:17∼18). 광야에서 성막을 제조한 레갑 기술자들이 성전 공사에서 완전히 소외된 것이다.

이때부터 레갑 사람들은 포도주를 끊고, 집도 짓지 않으며 방랑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후 레갑의 지도자 요나답은 분열된 왕국의 통일을 위해 북의 예후를 도와 혁명에 성공하지만 예후의 변심으로 다시 좌절에 빠진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시켜 레갑 사람들을 성전에 모아 포도주를 마시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그들이 조상의 명령을 지키겠다며 포도주 마시기를 거절하자 하나님은 그분의 명령을 거부한 레갑 사람들을 오히려 칭찬하신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렘 35:19)

그러나 이후로 레갑 사람들은 성경에서 사라진다. 이 ‘평생 나실인’의 집단이 모여 살았던 곳을 ‘나사렛’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기술자인 목수(τεκτον·건축기술자)였고, 그가 길러낸 예수도 목수였다. 미가가 그의 예언에 특별히 ‘에브라다’를 넣어 놓은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미 5:2)

나사렛에 모인 그 기술자 집단은 언젠가 하나님의 성전을 자신들의 손으로 짓는 데 헌신하리라고 서원한 나실인들이었을 수도 있다. 그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난 예수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이었을까?

목수 요셉에게는 예수 아래로도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의 네 아들이 더 있었고, 딸들도 있었다. 그러나 요셉이 일찍 죽은 것으로 보아 평소에 건강이 좋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예수가 10세 되던 AD 6년, 열심당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군은 반란군 2000여명을 나사렛의 8㎞ 북방 세포리스로 가는 가도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 처형 장면을 어린 예수도 보았을 것이고, 목수 요셉은 십자가 제작에 동원되어 무리한 작업을 하다가 건강을 더 해쳤을 것이다. 아버지의 건강 문제를 크게 걱정하던 어린 예수는 나사렛 회당에 비치된 선지자들의 두루마리에서 뜻밖의 말씀을 발견한다.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사 64:8)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다.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렘 3:19)

그래서 열두 살 때의 예수는 그를 찾고 있던 요셉과 마리아에게 말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요셉은 결국 일찍 죽었고, 소년 가장 예수는 목수 일로 어머니와 여섯 동생을 부양하며 다시 ‘죽음’의 문제가 시작된 ‘말씀’과 ‘순종’의 의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나이 30세가 되자 유대 광야에서 들려온 세례 요한의 소문을 듣고 그는 집을 나선다. 그가 요한에게로 가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았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7)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