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신드롬, 개신교인은 어떻게 볼 것인가


교황신드롬, 개신교인은 어떻게 볼 것인가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으로 온 나라가 들썩였다. 교황 신드롬은 마치 거룩한 마법의 절정을 이루는 것 같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기댈 곳 없던 국민들은 참 어른, 진정한 지도자를 만난 듯 열광을 감추지 못했다. 사람들은 사회가 불안하거나 위기를 느낄 때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줄 강한 리더십을 원한다. 세월호 참사나 윤모 일병 폭행사망 사건과 같은 충격적인 사고와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책임지는 정치인은 없고 관료는 무능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참 리더십의 갈망이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때 교황이 온 것이다. 그가 와서 우리 사회의 아픔과 상처를 한 방에 치유한 듯했다. 그가 말한 평화 정의 화해 섬김 등은 성경적 가치이기에 개신교인도 반대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난 우리 사회는 마치 하얀 물거품이 사라진 후 암초만 남듯, 오히려 허전하고 공허한 집단 우울증 같은 현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또한 그의 말을 역이용해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치적 무기로 삼는 세력이 있을까 하는 염려도 생긴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이 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렇게 겸손하고 청빈하며 귀감 되는 삶을 사는 교황일지라도 그 역시 가톨릭의 제도와 비성경적인 교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무신론자도 선행만 하면 천국에서 함께 만날 수 있다”고 설교한 적이 있는 그의 구원관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평화와 화해를 말해도 예수보다는 마리아를, 복음 외에도 선행을 통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면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래도 대다수 국민은 열광하며 감동했다. 그렇다면 우리 개신교인은 이런 교황 신드롬을 어떻게 봐야 하고,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첫째, 그럴수록 성경적 원리를 따르고 성경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바로 그것이 루터와 칼뱅 등이 외쳤던 종교개혁의 캐치프레이즈였다.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은 부패할 대로 부패했다. 면죄부(免罪符) 판매를 비롯해 성상숭배, 성골숭배, 천사숭배 등 온갖 미신 사상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이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을 외치며 개혁을 했던 것이다. 아무리 교황의 말과 삶이 훌륭해도 성경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이럴수록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정신과 외침을 따라 성경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둘째, 우리의 삶을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성경적 원리 위에 서 있다고 하더라도 삶이 달라지지 않으면 세인은 우리를 조롱하고 비웃을 것이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성경적 원리와 기준으로 우리를 바라보지 않는다. 그저 도덕적인 기준과 안목으로만 보고 판단한다. 교황의 겸손한 섬김에 대중이 환호하는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 때문에 세인들은 교회를 이기적 공동체요, 세상 기업이나 다름없다고 조소한다. 특히 지도자들이 그런 빌미를 주어서 한국교회는 반기독교적 정서로 욱여쌈을 당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뼈를 깎는 자성과 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와 권력과 명예를 추구했던 삶에서 가난한 자, 소외된 자를 섬기는 삶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시대와 사회로부터 끝내 외면당하고 말 것이다.

셋째, 다시 연합하고 지도자를 세워가야 한다. 불교는 교황 방문을 앞두고 대국민 종교 설문조사를 하는 등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준비를 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무슨 대책을 세우고 준비를 해왔는가. 개교회주의, 교단 우선주의, 교권 다툼을 하느라 속수무책이었다. 연합기관이라도 그토록 하나 되길 원했건만…. 지금 한국교회는 타 종교의 심각한 공격과 도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복음주의 안에서라면 지역과 교파와 모든 연합기관이 연합해야 한다. 또 지도자를 세우고 존중해야 한다. 왜 개신교에는 본질이 아닌 것도 자기 기준과 사욕의 동기로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고소하는 일을 반복하는가. 그것이 한국교회의 공멸을 초래하는 것임을 모르는가. 지금 한국교회는 대표성 있는 거물의 지도자를 목마르게 사모하고 있다. 한국교회여,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는 신앙개혁을 일으키자. 끊임없이 삶의 개혁을 하자. 1970년대, 80년대처럼 다시 연합하고 지도자를 세워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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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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