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미국

 흔들리는 미국 

얼마전 친구가 “내 아들이 결혼해요”라고 말하자, 상대방이 “여자와 결혼하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과연 농담으로 듣고 웃어넘길 일인지 씁쓸했다. 

미국에 살면서 요즘처럼 내 삶의 정체성이 흔들린 때가 있었을까? 얼마전 연방대법원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는 발표를 듣고 미국의 기본이 뿌리째 흔들리는 느낌이다. 종교나 윤리, 도덕을 떠나, 사람답게 사는 인간의 도리를 송두리째 망각한 가슴아픈 결정이다. 아메리카 신대륙에 청교도들이 발을 디뎠던 날, 겸허한 마음으로 농사지은 곡식들을 하나님께 바치던 그 날을 미국인들은 잊었단 말인가? 

바로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기 전날, ‘채널8’ 방송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환자들의 삶을 소개한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게이들의 성생활, 말로 표현할수 없는 광란의 현장, 수십명을 상대한 동성애자들의 성생활 현장을 찍은 방송이었다. 에이즈란 동성애자들의 문란한 성생활을 통해 전파된 이 시대의 재앙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게이들의 삶을 폭로하고, 그러한 삶을 살다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한 사람들의 간증을 소개했다. 

유럽 여행 중 어느 시골동네에 들렀던 기억이 난다. 현지 주민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미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선뜻 “배드 컨츄리!”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냥 흘려들을수 없는 그 한마디가 지금 다시 내 가슴에 꽂힌다. 

만물은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데, 순리를 역행하는 것은 재앙의 시작이다. 꽃과 나비, 들꽃 한송이 ,나무들, 동물들도 쌍쌍이 자연의 순리에 따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이 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고, 하늘에 역행하는 죄를 범하는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인간임이 부끄러울 뿐이다. 미국은 남녀가 만나 한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고 기르는 부모의 천륜을 잊었단 말인가? 내 자녀들이 살아갈 이 땅에 이성을 잃은 야만의 역사가 침투하다니, 미국의 전통이 뿌리째 흔들리는 아픔을 느낀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동방예의지국 한국인의 긍지와 지조를 지키며, 이 땅에 우리 민족의 뿌리를 내리며 살아야한다. 유태인들이 갖은 박해의 역사속에도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는 유태인 어머니들이었다. 역사속 유태인은 어느 땅에 정착하든지, 그곳에 자신들의 문화를 소리없이 뿌리내렸다. 지금도 에모리 대학 근처 유태인 마을에는 허름한 옷의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손을 잡고 유태인의 회당으로 걸어가는 아이들을 볼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민족의 지조, 민족의 혼을 어떻게 지키며 살아왔는지 돌아볼 때이다. 이제는 미국땅에 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한국인의 지조와 뿌리를 가르칠 때이다. 미국땅에 평화롭게 살던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길 때 하던 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대의 가슴에 죽음이 들어올수 없는 삶을 살라.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라. 그대의 삶을 사랑하며, 그 삶속에 질서와 아름다움, 사람의 도리를 다하라. 누구와 마주치든지 인사를 나누며 사람을 존중하고 비굴한 삶을 살지말라. 온갖 추악함과 거짓을 멀리하라. 아이들을 자연에 가깝게 살게하고, 자연처럼 부드러운 심장을 갖도록 가르쳐라. 어떻게 우리가 공기를 사고팔수 있는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팔수 있는가? 부드러운 공기,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팔고 사며 그 누가 이땅을 소유할수 있단 말인가?” 

인디언 추장의 그 유명한 연설문을 읽으면서, 가장 우월한 존재라는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게 타락해가는 오늘의 미국을 돌아본다. 동성애, 총기난사 사건, 대법관들의 동성애 합법화, 대마초 합법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이민사회는 다시 우리의 갈 길을 돌아볼 때이다. 자녀 교육도 미국 학교에만 의존하지 말고, 부모 스스로가 한민족의 정체성을 직접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땅에 자유함을 누릴 권리만큼, 이땅에 살면서 그날의 인디언들처럼 미래를 헤아리는 지혜의 혜안에 눈을 떠야할 때이다.

 

글쓴이: 박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