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회복하자


정체성을 회복하자


 

위기는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간… 정체성 회복은 위기 극복의 시작

몇 년 전 시골에 조그마한 농장을 구입했을 때 거기 구석진 곳에 물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장에 가서 새끼오리 여덟 마리와 기러기 두 마리를 사서 웅덩이에 넣어 주었다. 신기하게도 기러기는 다 큰 어른이 될 때까지도 날아가지 않았다. 오리들과 어울려 자라나면서 자기들도 오리인 줄 알았는지 뒤뚱거리면서 오리들 꽁무니를 따라다니기는 해도 도무지 날 생각을 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녀석들은 묶어놓았던 개의 목줄이 풀리면서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았다. 오리들은 날개를 파닥거리면서 발이 땅에서 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도망가는데 기러기는 완전히 달랐다. 도랑 건너편으로 훌쩍 건너 뛴 것이다. 그런 후부터 기러기는 자기가 기러기인 줄 알아차렸다. 조금씩 더 멀리 날아다니더니 얼마 후에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주인에게는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지만 당사자인 기러기에게는 그 위기가 자신의 존재를 되찾게 해준 고마운 일이었을 것이다.

요즈음 부쩍 사람들 사이에서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핵 도발로 안보에 위기감을 고조시키는데다가 큰 기업들이 부실해지면서 대량 해고와 금융 압박으로 경제적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다. 법조인들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사법질서의 위기감이 조성되고, 학생 수가 줄어든 대학사회는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교양과 인문학을 고사시켜 인간교육의 위기를 맞고 있다. 패권국가 미국에서는 극단적이고 과격한 이기주의자가 득세하여 국제사회가 더 어지러워질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광기를 피해 도망친 난민들이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고, 도처에서의 천재지변이 사람들의 마음을 스산하게 만든다. 이러한 위기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결혼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고 있다. 

안보, 경제, 가정, 교육, 도덕, 정치, 사법질서, 국제사회 더 나아가 생태환경의 위기까지 이 시대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데 그것에 더하여 위기불감증의 위기도 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2년, 가습기 살균제가 사람들을 대량으로 살상한 지 5년이 지나도 진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위기관리 능력의 부재도 큰 위기 중 하나라고 하겠다. 

그러나 가장 중요하고 큰 위기는 정체성의 위기다. 나는 누구냐, 너는 누구냐, 사람은 무엇이냐, 우리 민족은 어떤 민족이냐, 그리스도인은 어떤 존재냐, 대통령, 국회의원은 무엇이냐 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정체성의 위기다. 대학은 무엇이고, 기업은 무엇이며, 공무원은 무엇인가? 정체성을 상실한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아니고 인간은 인간이 아니며, 가족은 가족이 아니고, 민족은 민족이 아니다. 

정체성 상실은 위기를 불러일으키지만 위기는 또다시 정체성을 확인하게 한다. 흔히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가 공존하는 시간이라고 한다. 위기가 경험될 때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가치는 자기 자신의 발견이다. 나의 본질과 신념과 역량 그리고 그 한계까지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변화와 개혁의 기회를 맞게 된다. 정체성을 확인하고 회복하면 그 순간부터 위기는 기회로 바뀐다. 남한과 북한이 ‘적’이라고 대립하고 있지만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면 안보 문제는 끝이다. 기업이 ‘회장의 것’으로서 독단하고 있지만 ‘주주와 직원과 소비자의 것’이라고 그 정체성을 확인하면 경제 문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학교가 ‘직업훈련소’로 변형되고 있지만 ‘전인교육의 장’이 된다면 우리 사회는 건강해질 것이다. 

‘오리지날’이라는 말이 있다. ‘오리도 지×을 하면 날 수 있다’는 말이라고 한다. 오리도 날 수 있는데 하물며 기러기이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졌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바이블시론-유장춘] 정체성을 회복하자 기사의 사진

유장춘(한동대 교수·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