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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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세상에 어려움 없이 온실 속 화초처럼 곱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까? 없는 것 같다. 과학문명의 과부하로 기상이변과 천재지변이 속출하고 기술발달이 인간의 존엄을 발목 잡는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나날의 삶이 고행(苦行)이고 곳곳이 위험천만인 화약고같은 세상인데 말이다. 그야말로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 제목으로 삼아야 할 정도로 요즘은 자고 나면 끔찍한 사건사고들이 지구 곳곳에서 발생하다보니 정말 세상이 종말을 향해 빨려들어가는 것 아닌가 할 정도로 불안하다. 

 

사람들은 사회불안과 재난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자유를 갈망한다. 그래서 종교가 생겼고 종교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닥칠 불행이 막아지고 아울러 미래의 세계에 대한 보장을 받고 있다고 착각한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많은 종교와 미신들은 인간의 행.불행이 살아 생전 쌓는 선업(善業)이나 악업(惡業)의 인과응보(因果應報) 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며 마치 인간의 행위가 천국과 지옥을 결정하는 수단인양 현혹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의 가르침은 많이 다르다. 창조주 하나님이 복의 원천이고 무엇이든지 믿고 빌면 이뤄주시는 대상임은 틀림없지만 성경 어디에도 예수를 믿으면 무병장수한다거나 순풍에 돛단듯 매사가 형통한다는 구절은 없다. 오히려 성경 속 하나님은 악인.선인 구분 없이 햇빛과 바람. 비를 골고루 내리시는 좋으신 분으로 믿음의 식구들도 마냥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란과 곤고를 통해 하나님의 큰 그림과 맥락 속에 놓인 자신을 발견하게 하여 인내함으로 정금같이 다져지고 굳혀지는 성화의 단계로 성장하기를 기다리는 분이다. 

 

환란 속에 일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을 잘 변호하는 이론이 라이프니츠의 신정론이다. 그는 끔직한 사고가 발생하여 무죄한 사람들이 죽거나 악인들이 득세하여 세상을 혼탁케 하여도 가만히 계시는 하나님을, 악을 통해서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미학적 신정론과 환란을 통해 우리를 더 성숙되게 한다는 교육적 신정론으로 하나님을 두둔하고 변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표대로 쉬지 않고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고 섭리하시지만 때로는 자유의지를 가진 우리 인생들이 당신의 뜻에 따라 더 아름다운 세상, 더 성숙된 세상을 만들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를 장려하고 기다리시는 분이다. 

 

지난주 강원도 고성.속초.강릉.옥계 등에는 산불이 발생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특별히 필자에게 고성은 옛날 군생활 때 방어진지 구축공사를 위해 수도 없이 오르내린 지역이고 옥계 및 망상 지역은 해안소대장을 하면서 안 밟아본 땅이 없을 정도로 익숙하여 더욱 안타깝다. 달리 할 말이 없어 김석균씨가 쓴 복음성시를 올린다. 

 

"왜 나만 격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는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김도수 (자유 기고가/ 뉴욕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