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저주한 무화과 – ‘금단의 열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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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저주한 무화과 – ‘금단의 열매’일까



성서 식물 중 ‘무화과’는 번영과 심판의 상징이지만 첫 믿음의 회복을 촉구하는 ‘기억의 식물’이다. 무화과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했던 기억을 소환한다. 또 신앙의 첫 열매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주님을 기억하게 한다. 무화과의 비유와 상징은 성경에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평화와 번영의 상징으로 사용되는가 하면(왕상 4:25, 사 36:16) 나라의 파멸이 임박했음을 예언할 때도 빈번히 사용됐다.(욜 1:7,12)



기억의 식물



무화과는 인류 역사와 함께한 식물이다. 성서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 먹고 죄를 범한 후 벗은 몸이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가렸다고 기록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 선악과를 따 먹고 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가렸을까. 서양에서는 선악과를 사과나무로 보지만 사과는 중동지역에서 재배되지 않는다. 선악과나무를 무화과나무로 보는 유대인들의 전승도 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후 벗은 몸이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렸다.



이스라엘 선교사를 지낸 류모세 목사는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에서 성서의 공간적 배경인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은 쥐엄나무, 무화과나무를 선악과나무의 후보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악과 열매를 따 먹자마자 자신이 벗었음을 알고 곧바로 무화과잎으로 치마를 엮었다면 무화과나무가 선악과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있었든지 아니면 무화과나무 자체가 선악과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이스라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무화과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1년에 두 차례 이상 열매를 맺는다.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첫 열매는 히브리어로 ‘파게(Phage)’라고 하고 이후에 차례로 열리는 무화과는 ‘테에나(Thaena)’라고 한다. 히브리어에서는 첫 열매 무화과와 이후에 열리는 무화과의 이름이 다르지만 영어 성경과 한국어 성경에는 모두 ‘무화과’로 번역됐다. 파게는 테에나에 비해 작고 당도도 떨어진다. 그러나 먹거리가 부족하고 여름 과일을 못 먹는 가난한 소작농들은 초여름에 열리는 파게를 간절히 기다리며 긴 겨울을 버틴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 있는 베다니. 베다니는 ‘집’을 뜻하는 '베이트'와 ‘무화과’를 뜻하는 ‘테에나’가 합쳐져 ‘무화과 마을’로 번역된다. 예수님이 베다니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은 크리스천들에겐 친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사랑이 많으신 분이 왜 그토록 독한 말씀을 하셨는지 낯설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날은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르치고자 했다.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막 11:13~14)



신학자들은 당시 종교 행위는 화려하지만 껍데기만 남은 유대 종교와 제사장을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에 비유하며 저주한 것이라고 말한다. “유대 제사장은 거창한 종교의식을 행했으나 외식에 불과했으며 유대 종교는 타락해 성전은 강도의 굴혈이 됐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된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런 유대 종교와 제사장을 두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했다.”(한의택 ‘성경에 나타난 상징 계시’ 중에서)

 

이집트 일리아스 바심 쿠리 바치 라 히브가 그린 ‘예수,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다’(1684년), 미국 월터스미술관 소장.



유목민에게 무화과는 영양 과일이었고 약으로도 쓰였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의 병을 치료할 때 무화과를 처방전에 써주셨다. “이사야가 이르기를 한 뭉치 무화과를 가져다가 종처에 붙이면 왕이 나으리라 하였고”(사 38:21)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왕하 20:7) 다윗이 3일 동안 굶은 아멜렉의 종에게 무화과와 건포도를 먹인 것도 과학적인 처치였다. “그에게 무화과 뭉치에서 뗀 덩이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으니 그가 밤낮 사흘 동안 떡도 먹지 못하였고 물도 마시지 못하였음이니라 그가 먹고 정신을 차리매.”(삼상 30:12)



처음 사랑을 버렸는가



무화과는 이스라엘의 사계절을 알려주는 나무이다. 3~4월 앙상하게 달려있던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만 한 첫 번째 무화과 파게가 달린다. 5~6월이 되면 잎사귀가 커지고 두번째 무화과 테에나가 열린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무화과의 변화를 통해 말세의 심판과 종말이 다가옴을 비유한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 24:32~33) 이스라엘의 새해는 10월에 시작해 여름은 유대인들에게 사계절의 끝이다. 유대인들이게 여름이 가깝다는 것은 종말이 가깝다는 의미로 들린다.



주님은 우리에게 처음 신앙을 회복하라고 요청하신다. 무화과처럼 신앙의 첫 열매, ‘파게’를 맺고 다시 그 가지에 잘 익은 ‘테에나’를 맺어야 한다. 첫사랑의 감격이 있는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대한 첫 마음, 첫사랑을 회복할 의무가 있다. 주님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회개를 촉구하신다.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눅 13:7)



유다 왕국에서 우상 숭배가 가장 극심했던 아하스 왕 시대를 배경으로 활동했던 미가 선지자의 떨리는 목소리는 어떠한가.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미가 7:1) 미가 선지자가 말한 ‘처음 익은 무화과’란 파게, ‘처음 믿음’이다. 유월절 무렵 열리는 파게를 간절히 기다리며 긴 겨울을 버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파게가 없는 것만큼 절망적인 것이 있을까. 지금 우리가 간절히 기다리는 무화과는 언제쯤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