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부활의 은총

IMG_0016.JPG

 

매일 부활의 은총

친구가 프랑스 예수회 사제이자 신학자며 고생물학자인 피에르 테이야르드샤르뎅 신부의 기도문을 보내왔다. 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몸에 하나, 둘 나이 먹은 흔적이 생길 때/ 그리고 이 흔적들이 내 마음을 흔들어놓을 때/ 나를 조금씩 움츠러들게 하고, 쇠약하게 하는 질병이 몸 안팎에서 생겨날 때/ 병들고 늙어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으며 두려워질 때’. 이 시작부터 꼭 내 얘기 같아 마음이 복잡해졌다. 나는 늙었고, 몸도 건강하지 못하니까.



그러다가 나머지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만들어 왔던, 알지 못하는 위대한 힘들의 손길 안에서 자신을 잃어가고 있으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마침내 느낄 때!/ 이 모든 암울한 순간에, 오 하나님, 저로 하여금 알게 하소서/ 그 모든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제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와/ 저를 하나님께로 데려가기 위해 저를 조금씩 분해하는 과정임을!’까지 읽고, 마지막으로 ‘그 과정에서 하나님도 저만큼이나 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을 읽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내 병이나 늙음이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은 그렇다 쳐도, 하나님도 나만큼이나 아프시다는 대목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신앙의 핵심이다. 자식을 키울 때, 자식을 꾸짖고 때릴 때마다 우리의 마음이 더 찢어질 듯 아픔을 숱하게 경험했으면서도 신의 아픔을 간과한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



내일이 부활절이다. 젊었을 때는 무턱대고 신앙이 뜨거웠다. 가톨릭에 입교한 것은 단순히 결혼을 성당에서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뜬금없이 시작한 신앙생활이었지만, 차츰 신앙에 귀가 트이고 아울러 나의 남달랐던 정의감이 신앙과 접목하면서부터 신앙은 내게 구원의 진리가 되었다. 하지만 신앙생활도 인생처럼 굴곡이 있다. 불타오르다가 사그라지다가. 그러다가 어느 시간, 아,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느꼈을 때, 마치 철학자처럼, 우리의 매일이 부활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후론 아침마다 만나는 매일의 부활이 얼마나 귀하고 아까운지 일분일초가 달고, 맛있고, 소중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특별히 지난 일 년간의 삶을 복기하면서 반성과 새로운 역동적 희망을 창조하는 시간이 되었다.

 

한국에선 지난 수요일, 재의 수요일부터 1. 교만을 이기는 겸손, 2. 인색을 이기는 나눔, 3. 질투를 이기는 인자함, 4. 분노를 이기는 인내, 5. 음욕을 이기는 정결, 6. 탐욕을 이기는 절제, 7. 나태를 이기는 근면의 일곱 가지를 극기를 통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자는 안내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이런 덕목이야 수난 주일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해야 할 삶의 훌륭한 지침이다. 하지만 막상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그런 탐욕이며 재물이나 권력이, 명예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하나씩 그런 욕망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불교의 큰 스승인 띨로빠가 말했다. “기억하지 마라. 지나간 것을 내려놔라. 상상하지 마라. 앞으로 올 것을 내려놔라. 생각하지 마라. 이 순간의 일을 내려놔라. 분석하지 마라. 무엇을 알아내려고 하지 마라. 통제하지 마라. 뭘 하려고 하지 마라. 쉬어라. 이 순간에 편히 쉬어라.”



하여, 무념무상(無念無想)이긴 하나 이 아침, 진심을 모아 예수님의 부활을 맞는다.

          이 영 주 / 수필가

*수필가 이영주는 캐톨릭 신자이다 /중앙일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