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의 시를 노래한다” -눈오는 지도


“윤동주의 시를 노래한다”

윤동주의 시에 음악을 붙여 노래하며 연주하는

“눈오는지도” 의 작은 공연

 


 

일제 치하의 암울햇던 시대를 살았던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시에 곡을붙여 노래하며 연주하는 젊은 음악인들의 공연이 2월4일 토요일저녁, 뉴저지 릿지필드 에있는 1&9 갤러리에서 열렸다.

 

시의 제목에서 “눈오는 지도”라는 이름을 붙인 이들 젊은 음악 그룹은 윤동주 시인의 “별헤는밤”, 십자가”, 소년등의 시에 한은준 (눈오는지도의 리더)이 곡을 붙인 노래를 연주했다.

 

윤동주 시인은 당시 크리스천으로 일본의 통치에 저항한 지식인 이었지만 사상범으로 일제에 체포되어 27세에 감옥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 하고 만다.

한은준등 윤동주의 시를 사랑하는 젊은  크리스천 음악인들이 6년째 2월이면 그의 시에 음악을 붙여 연주 해 오고 있다.

 

오는 24일에는 캐나다 토론토에서 윤동주 67주기 추모공연을 하게된다.

곡: 한은준 / 노래 :이지연 / 건반: 박윤혜 / 해금: 정제니 / 기타 :박주현,한은준 / 베이스:황두혁 / 드럼 :최보미

 


201-835-8692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한국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에서 출생,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하였다.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처형당하였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종형제간이기도 하다.

KCC news

 

 

*아래글은 뉴욕 뉴저지 서울대학교  동창회 골든클럽 멤버이며

뉴저지 상록회 편집장으로봉사하고 있는 김상준의 글을 소개한다.

(아콜라 교회 출석)

 



눈 오는 지도

생소한 이름이다.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여 연주하는 밴드이름이다.

60여 년 전 일제 압제하에서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애국시인의 아름다운 작품을 이 시대를 사는 젊은 후세들에게 다가가도록, 윤동주 시의 아름다움과 맑은 정신을 널리 알리는 기회를 갖고 저, 요즘 지각 있는 몇몇 젊은이 들이 만든 캄보형 악단 이름이다.

 

1950년대 후반, 고등학교5학년 작문시간이었다.

그 당시 대표적 시인이 셨던 조병화 선생님이 윤동주 시인을 처음으로 소개하며 그 유작을 낭송하여 주셨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윤동주 시인은 강인한 의지와 맑은 지성, 풍부한 서정을 지닌 민족적 저항시인이셨다는 것과, 27세 젊은 나이로 일본 후쿠오까 감옥에서 사상범으로 복역하다 조국해방 6개월 전에 고문 후유증으로 아깝게 요절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소개 강의가 너무 감동적이었고, 그 분의 짧은 인생이 너무 서글프고

애처로워서, 한 동안,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아 찹찹한 기분으로 보냈다

 

윤동주 유작, “ 바람과 하늘과 별과 시 초본이 출판 되자마자, 너도나도

구입하여 반복해서 읽고 낭송하곤 했다

예민한 사춘기에 그 아름다운 서정에 흠뻑 빠졌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출간된 초본으로 윤동주 라는 시인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대중들에게 큰 충격을 주면서 베스트 셀러로 등장하였다.

그 후 아직까지,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국민 시인으로 쭉 추앙 받아오고 있다.  

 

60년도 훨씬 지난 요즘, 젊은 후세들 중에 자기들과 비슷한 젊은 나이에 요절한 애국 시인을 못 잊고 그의 시정과 맑은 정신을 음악으로 재현하려는 젊은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정말 생소한 일이고 놀랍기 그지없다.

아름다운 그들 마음이 너무 대견하고 아름다워 마음껏 칭찬하고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앞서, 비록 졸필이지만 글이라도 써서 격려하고 저 한다..

 

요즘 그림 스케취를 배우는 중인데, 하루는 여성 급우 한 분이 자기 아들이 주관하는 악단이 오늘 윤동주 추모음악회를 여니, 참석해 달라는 구두 초청을 받았다.

쌀쌀한고 우중충한 토요일 저녁에 혼자 가기가 뭣 해서, 다른 친구 두어 명을 권유하여 함께 꽃바구니를 들고 도착하니, 초청한 분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반갑게 맞이했다.   이미, 꽤 여러 사람들이 와서 웅성대고 있었다.

 

청중들이 좌정을 한 후, 연주자 댓 명이 무대에 나와 인사를 꾸벅 했다.  

입고 있는 복장이라니, 진 빤즈에 스웨터, 두툼한 겨울 잠바에 캐주얼 면바지, 평범한 셔츠에 카디건 스웨터, 등 평상시 캐주얼 복장이었고, 닛드 겨울모자 또는 알프스 등산모자를 푹 눌러쓰고, 신발도 등산화나 일반 농구화를 신고 있었다.

화장도 하지 않은 생 얼굴로 나와 인사를 하는 그들을 대하니, 연주회에 온 것이 아니라 등산이나 야유회 모임에 온 것 같은 착각이 잠시 스쳐갔다.

 

이 악단의 리더인 듯한 닛드 모자를 푹 눌러 쓴 기타리스트가 단원 개개인을 친구와 소근소근 얘기를 주고 받는 투로, 중 얼 얼 수줍은 억양으로 소개했다.

어느 대학원을 나온 음악 박사, 막 대학을 졸업한 학사, 한국에서 고전 기타음악을 공부 하려고, 온지 얼마 안된 유학생, 갓 결혼한 새댁인 학사란 투로 했다.

청중들에게 잘 보이려고, 우정 화장이나 치장도 안하고 자기들을 과장하여 알리겠다는 의도는 전혀 없어 보였다.  평상시 자기들 그대로의 모습들이었다. 

소개 중에도 머리만 꾸벅 하고 자기들 악기를 툭툭 치며 점검에만 열중했다..

그래도 거부감 보다는 내 식솔, 아들 딸 며느리 조카 같은 친근감이 들었다.

 

서시부 터 시작해서 십자가”, “별 헤는 밤”, “다른 고향등 대 여섯 곡 연주가 이여 졌다. 윤동주의 주옥 같은 시가 여성 보컬리스트의 곱고 깨끗한 성대에 실어 차분하게 불여지고, 드럼, 해금, 기타, 건반들의 수준급 기량의 협주가 좋은 화음을 이루었다.  아름답고 애조 띈 앙상블이 청중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시며 스며 들었다.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는 어린애 같이 순수하면서도 기품이 있고 쥐어 짜는 음색이 아님에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아 편안하게 기댈 수가 있었다.

60년여 년 전 베트남 전쟁 때, 자유, 반전을 노래하여 그 당시 전 세계의 음악 팬들을 열광시키고, 미국의 반전무드를 확산시켰던 슈퍼스타, 죤 바에즈를 연상시켰다.

복장과 노래하는 모습도 비슷했다.

한국인의 한을 애절하게 잘 표현하는 해금이 곁 들어져, 시인의 그 당시 답답하고 서글펐던 응어리진 정서를 가냘프고 서글픈 음으로 잘 이끌어내, 윤동주의 참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는 감흥을 받았다. 

화음 흐름의 구비구비를 잘 이끄는 드러머의 기량이 돋보였고, 능숙한 기량의 기타리스트가 화음을 잘 조율하며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특히, 직업적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한 아마추어의 청순하고 건강한 느낌이 들어 더 흐뭇한 감동을 주었다.

약간 아쉬운 점은 모든 곡이 포크버전이어서 좀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으니, “힙합이나  장르 작품도 끼어 넣으면 괜찮지 않겠나 생각해본다.

  

참 오랜만에, 토요일 저녁 한 때를 즐겁고 보람 있게 보냈다.

 

NJ 상록회 편집장,  김 상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