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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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고로,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만, 바로 이 모성 때문에 과연 여성들은 자주 남성들보다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 주변에도 여인들이 퍽 많았는데, 그들은 모두 훼방과 위험, 죽음을 무릅쓰고 주님을 따르며 섬기던 용감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죠!
하나님은, 강하다고 스스로 자만하다 자칫 자빠지기 쉬운 남성의 면모들 때문에 여성의 이런 점으로 교회나 사회를 조화롭게 하신 모양입니다. After all, 왜 “돕는 짝”으로 붙여주셨겠나요.
이 것은 겥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체포될 당시 남성 제자들은 다 겁보처럼 도망가 버린 반면, 한 떼의 여인들은 주님의 십자가 근처와, 새벽 미명 로마 수비대가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무덤까지 찾아갔다는 점들로도 새삼 웅변됩니다. 그런가 하면, 수제자 역할을 하면서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만은..!” 하고 큰 소리 치던 페트로(베드로)는 한때나마 어린 여종 앞에서도 “벌벌 기는” 전형적인 ‘못난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사 실 이미 고대로부터 수많은 믿음의 여인들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은 역사가 줄기차게 이어져 왔습니다. 메시아 계보(참고: ‘메시아계보대장정 시리즈’)를 대대로 이어나간 여인들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겠습니다만. 그밖에도 크고 작은 일로 두드러진 역할을 한 여성들이 이루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매우 많습니다.
흔히 옛 동양사회가 그랬듯, 유대사회에서도 여성과 어린이는 사뭇 천시 당했습니다. 심지어 인구를 헤아릴 때 수로 쳐 주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당대의 남성은 물론 수많은 믿음의 여인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적극 도와 주셨고, 가련한 여인들을 불쌍히 여기시사 그들의 영/혼/몸을 구출하시고 돌보셨습니다. 할렐루야(=함께 주님 찬양)!
예수님을 따르던 여성 제자들 중 대다수도 그런 내력으로 도움을 받고 그 분을 섬기게 됐습니다. 주님께 용서와 사랑을 받으면 그만큼 사랑으로 섬기게 되지요(참고: 루카복음서=눅 7’47).
그런데 이 여인들이 유난히 빛나 뵈는 점은 주님이 가장 어렵던 극한상황인 수난 때도 가까이 하며 마음으로나마 동참했던 사실입니다.
기자 루카(누가)는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그분의 뒷바라지를 하며 따르던 여러 여성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루카복음서=눅 1’3).
일곱 악령들이 내쫓긴 막달라 마리아
헤로드 왕궁의 재산관리인 쿠자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히브리식 발음: ‘슈샨나’)
기타 여러 여성들
이 가운데서 물론 막달라 마리아가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만, 이들 대다수가 주님께 고침을 받고 감격하여 따르며 섬겼습니다. 갈릴리 호반의 막달라 마을 출신인 마리아는 일곱 악령이 들려 있다가 주님께 고침 받은 여인으로, 훗날 주님이 부활하신 새벽에 가장 먼저 뵌 후, 제자들에게 알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요.
그리고 주님을 섬긴 여인들 가운데 헤로드 왕실의 관리의 아내도 있었다는 것은 저으기 놀라운 일입니다. 이 요안나 역시 주님께 병 고침을 받았기에 아마도 남편의 양해를 얻어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 터입니다.
[ (사도)행전에서 보는대로 훗날, 샤울(파울)이 교사로 한때 사역했던 안티옼 교회에서는, 헤로드 안티파스 왕과 함께 젖을 먹고 자란 마나엔도 사역자(대언자 또는 교사)로 교회를 섬겼습니다(행전 13’1). 아마도 마나엔은 배다른 형인 헤로드 아켈라우스와 함께 왕실의 교육도 받았을 법 합니다. 화려 한 왕실 배경을 뒤로 하고 박해가 따르는 크리스천이 된 사람들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이 더 가치가 있는 것이냐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던져 줍니다. 고대에 모쉐도 미쯔라임(에귚트) 왕궁에서 호사할 수 있었으나 내버리고 떠났음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
이 요안나는 훗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죽으셔서 장사된 후에도 향품/향유 등을 준비하여 무덤을 찾은 여인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루카 24’10)1.
‘슈산나(또는 쇼샨나)’라는 여인 역시 주님과 제자들을 섬겼는데, 이름은 ‘나리/백합’이라는 뜻입니다2.
아 무튼 이 여인들이 자신들의 가산을 기꺼이 바쳐 가며 주님을 섬겼다니, 고침 받은 뒤 얼마나 감사/감격한 맘으로 섬김에 정성을 쏟았는지 짐작이 갑니다. 우리말에 놀림이나 (때로) 비웃음이 담긴 우스갯소리로 “정성이 뻗쳤다”는 말이 있는데, 이들이야 말로 그런 여인들이었습니다.
아낙의 몸으로 자기네 가족들 돌보기만도 벅찰 텐데, 주님과 제자들까지 섬겼으니 대단한 믿음과 열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밖에도 주님께 페트로라는 이름을 선물로 받은 쉬몬(시몬)의 장모도 열병을 고침 받은 직후, 주님과 제자들을 섬긴 일이 있습니다(뤀 4’39). 또 예 수님의 친구로 죽었다 되살아난 (베타니 마을) 라자로의 두 누이인 마르타와 마리아, 향유병을 깨고 열어 주님께 향유를 부어 바친 몇몇 여인들 역시 늘 주님을 기억하고 각별히 사랑했던 여성들이지요. 아울러.. 갈릴리 지역에서 주님께 병 고침을 받은 다른 수많은 여인들도 주님의 사랑과 배려를 기억하고 있었을 터입니다.
이 간접적인 여성 사역자들은 복음서 여기저기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면서 그들의 숨은 봉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역시 가장 절정은 바로 십자가 사건 때라고 할 수 있겠지요.
겥세마네 체포 사건 뒤, 우리의 눈에 띄는 점은 남성 제자들과 여성들의 사뭇 대조적인 양상입니다.
남성들은 대체로 비겁하고 나약하게 비취는 데 비해, 여성들은 아주 담대하고 진정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모습입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12 제자들의 활동이 계속 우리의 주목을 끌다가 정작 주님의 수난과 함께 주눅이 들다시피 잦아들면서, 여태 숨은 듯 뵈던 여성들의 모습이 표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히 이들은 주님이 수난하시려고 예루샬렘으로 오실 때, 놀랍게도 먼 갈릴리에서부터 주님을 따라온 여인들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한결같이 이 사실을 공통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27’55; 루카 23’49,55, 요한복음서 19’25). 루카도 ‘갈릴리로부터’란 말을 두 번 썼습니다. 갈릴리는 지역에 따라 예루샬렘까지의 거리가 약 96마일(약155km)입니다. 나자렡에서는 약105km인데, 상황에 따라 3~5일 걸리는 노정입니다. 젊은 남자라면 모를까, 주로 가정 일을 돌보는 아낙들로서는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지요. 그런데 그들의 신앙 열정과 주님을 따르는 마음들이 이 정도였던 것입니다.
과거 한국 기독교 초기에도 이와 비슷한 강인한 여인들이 있었기에 한국 교회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고, 현재도 한국 교회 새벽기도회나 주일학교 교사들 가운데는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이 갈릴리 여인들은 본래부터 주님의 수난을 염두에 둔 게 아니라 매년 예루샬렘에서 국가적으로 개최되는 유월절 경배에 참여하려고 그 먼 곳에서 주님 및 제자들과 함께 온 것입니다. 이들 일부는 주님이 수난하신 뒤 부활하신다는 선언을 들었지만, 긴가민가 했습니다. 아무도 주님의 수난-부활을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엄청난 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만큼 왕/시인 다뷔드의 수난 시편(22편 등)이나 예샤야후(이사야)의 수난 예언(이 53장 등)이 예수님에 관한 것임을 쉽사리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활에 관한 예언은 더구나 믿지를 못한 것입니다.
아 무튼 이들은 주님과 함께 예루샬렘에 당도하여, 유월절 전 주님이 나귀를 타고 거리에 나타나시고 시민들이 호산나로 환영하는 모습을 보자, 한 때는 덩달아 들뜬 분위기였다가, 마르코스 어머니 다락방에서의 유월절 정찬 이후를 기점으로 상황은 급변하여 겥세마네에서 기도하시던 주님이 체포되고, 주님의 제자들이 모두 흩어지자, 여성들은 의혹과 슬픔 속에서 주님을 염려하고 있었던 참입니다.
주 님이 드디어 재판을 받고 채찍형을 받으신 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신 채 예루샬렘 성 밖 골고타(해골. 라틴어: 칼바리)까지 시골 사람인 퀴레네(구레네) 시몬과 함께 행진하실 때, 갈릴리 여인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여인들이 충격과 슬픔 속에 가슴을 치고 통곡하면서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 예루샬렘의 딸들! 날 위해 울지 말고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자녀를 위해 울어요. 이제 사람들이 말하길 임신하지 못한 사람과 출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되다고 할 날이 올 테니…”
이 말씀은 이때로부터 불과 약 40년 후인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한 예루샬렘 멸망으로 그대로 성취됩니다.
거 기서 로마 군병들에게 겉옷과 속옷을 모두 앗기시고 벌거벗은 몸으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며 흐느낀 여인들 역시 갈릴리 여인들이었죠. 자신들이 그토록 존경하고 흠모하던 예수님의 비참한 수난을 지켜 본 이들의 충격과 절망감, 허탈감은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 없었고, 일부는 정신이 ‘공황’ 상태였음이 거의 틀림없습니다.
이 여인들 가운데는 막달라 마리아는 물론, 작은 야코보/요셒의 어머니인 마리아, 제베대의 아들들(야코보/요한 형제)의 어머니인 살로메 등도 끼어 있었습니다(마태 27’56 비교: 마르코스복음서=맑 15’40). 이들은 갈릴리에서 주님을 따라온 수많은 여성들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맑 15’41).
그중에서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이모, 클로파의 아내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 등 여러 여인들이 십자가 가까이에 서서 지켜보며 흐느껴 울거나 목놓아 애타게 통곡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주님이 죽으시고 나자, (역시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던 아리마테의 부자, 요셒이 앞서 골고타 부근 바위 속에다 자기 가족용으로 파 놓은) 그 새 무덤의 위치를 확인해 두고서는 향품과 향유를 마련해 놓습니다(뤀 24’54~56). 안식일 후 첫날 이른 새벽에 와서 시신의 수의 속에다 향품과 향유를 넣을 생각에서였지요.
그러나 이때는 이미 니코데모와 요셒이 몰약과 침향 등과 함께 주님의 몸을 (붕대형) 세마포 천인 수의로 감싼 뒤였습니다(요복 20’39-40). 이들이 무덤 안에서 작업을 했는지, 여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터입니다.
특 히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주님을 여읜 걷잡을 수 없는 슬픔 속에서 멀찌감치 무덤 건너 편에서 무덤 쪽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습니다(마 27’61. 비교: 맑 15’47). 3년동안 마음과 물질을 바쳐가며 섬기고 따르던 사랑하는 주님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셨으니 얼마나 슬프고 가슴이 저밀듯이 저렸겠습니까. 더구나 여성으로서 자칫 까무러치거나 졸도할 만한 상황이 아닐 수 없지요.
그런데도 이들은 주님이 죽으신 뒤에도 마지막까지 끝끝내, 정성껏 주님을 섬길 각오로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들이 준비한 향품과 향유 등은 당대에 매우 귀하고 값진 것이었습니다.
안 식일 후 첫날 새벽이었습니다. 해가 채 뜨기 전인 여명에, 여인들 몇몇이 용감하게 동산 무덤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코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요안나 등이었습니다(비교: 마 27’56, 맑 15’40,41, 요복 24’10).
앞서 수비대가 밤새 지키고 있었음을 미처 몰랐는지는 모르나, 두려움을 모르는 각별한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손 에는 주님 수의 속에 넣을 향품과 향유병 등을 든 채였습니다. 도와줄 아무 남자도 없이 총총 걸음으로 걸어가던 그들이 서로 주고 받은 큰 걱정거리는 무서움이 아니라 “무덤에 도착하더라도 과연 그 큰 돌문을 누가 굴려서 열어줄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맑 16’3). [ 당대의 무덤을 막은 둥근 돌문이 가로 방향으로 구르며 여닫도록 무덤 입구 바닥에 가로로 홈을 파 놓았음. ]
그 런데 거의 도착하여 미명 속에 멀찌감치서 바라보니, 놀랍게도 거대한 돌문은 이미 굴려져 열려있는 게 아닌가요! 여인들은 가슴이 철렁하도록 너무도 놀라 “아니, 누군가 주님 시신을 훔쳐간 게 아닐까?” 라는 생각에 서둘러 달려가 겁도 없이 황급히 무덤 속에 들어갔습니다.
도무지 무서움이라곤 없는 대단한 담력들이죠. 오로지 주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나중 젊은 제자 요한은 찔끔하면서 무덤 속에 쉽게 들어가지 않았던 데 비하면, 남자보다 더한 용기이죠. 요복 20’8. 주님의 처참한 죽음에 너무나 충격 받은 제자들은 계속 두려움 속에 전전긍긍하며 지내고 있었으니까요. 요복 20’19,26).
그 런데 과연 엄연히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를 않자, 여인들은 “헉~, 주님 시신이~!” 하며 눈앞이 아찔한 절망감에 어쩔 줄 모르던 순간, 주님의 시신 자리 머리와 발 양쪽에 있는 두 ‘청년’을 발견했는데 찬란한 흰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돌문을 굴려내고 주님의 부활 후 움직임을 돕던 천사였던 것이죠.
여인들은 또 다시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땅바닥에 엎드렸는데,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닌 그들의 확연한 목소리가 낭랑히 들립니다.
“어찌해서 살아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소? 여기 계시지 않고 되살아나셨어요! 갈릴리에 계실 때 여러분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생각해 봐요.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힌 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하리라’ 하셨지요.”
그러나 여인들은 너무도 겁이 나고 멍하여, 한 동안 누구에게 아무 말도 못한 채 있다가 뒤늦게야 사도들 모두에게 알리는데, 이 전령 역할을 여성들이 주로 맡아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뤀 24’9,10).
그런데 황당하게도 제자들은 여인들의 전갈을 선뜻 믿지를 않습니다. “쯧쯧쯧, 여자들이 하도 슬프다 보니 가엽게도 허깨비를 본 모양이군. 에휴~” 정도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뤀 24’11).
남달리 주님 사랑을 많이 받은 페트로와 요한만 허겁지겁 무덤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뤀 24’12). 하지만 세마포만 보이기에 놀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과연 주님의 시신만 없어진 걸까? 도대체 누가 가져갔을까, 어떤 놈이?’ 둘은 무덤 속에 곱게 개켜진 세마포와 머릿수건을 보고도 아직까지 주님이 되살아나신 사실, 그리고 마땅히 되살아나셔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죽음 전 하신 말씀들을 되새겨보지도,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뭘 뜻할까요? 그만큼 성령의 도움과 권능 없이 믿기가 힘들다는 뜻이지요. [ 그러나 동시에 말씀에 의지하여 자신의 의지로 믿지 않으면 안됩니다. ‘절대주권’인가로 절로 믿어지진 않는다는 것입니다. ]
마 리아는 드디어 주님의 시신이 도난 당했다고 믿게 됐습니다. 그래서 너무나 슬퍼 혼자서 엉엉 울면서 동산 속 무덤 주위를 맴돕니다. 그러다 무덤을 들여다 보니 주님의 시신이 있던 자리의 머리 쪽과 발 쪽에 각각 천사가 한 명씩 앉아 있습니다.
천사가 그녀를 보더니 묻습니다.
“여인, 왜 우세요?”
웬만한 사람이면 빛나는 천사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랄 텐데, 아마도 이 때쯤 마리아는 무서움이 좀 덜해진 모양입니다. 어차피 새벽의 어둠 속을 겁도 없이 홀로 헤매고 있는 판이라..
“사람들이 저의 주님을 옮겨다 어디 두었는지 제가 모르기 때문이어요.”
이 때 문득 마리아가 뒤를 돌아보니 누군가 서 있었지만, 마리아는 그가 누군지를 선뜻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가 묻습니다.
“여인, 왜 울고 있소? 누구를 찾소?”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만 알고 답합니다.
“님! 님이 그 분을 옮기셨다면 어디 두었는지 제게 일러 주셔요. 그럼, 제가 옮겨 가렵니다.”
이때 주님은 부활하신 전능하신 분으로서 유한한 인간과의 차이를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셨을 터입니다. 이 시점에서 그 분은 마리아에게 당신을 드러내시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마리아.”
그 음성을 듣는 순간 마리아는 다시 돌아다보며 외칩니다!
“라뽀니!”
라 뽀니란, 아람어/히브리어로 라삐(선생/교사)의 최고 존칭입니다. 당대 산헤드린 공의회(유대교 법정) 의장 정도에게 쓰이던 호칭이었습니다. 성경엔 요한복음 20’16 외에, 맹인 바르티매오에 의하여 (마르코스복음서 10’51의 원문에) 한 번 쓰인 것 등 단 두 번 나타나는데, 모두 예수님께만 쓰였습니다.
죽으신 뒤 여태도 시신으로, 그나마 설상가상으로 도난 당하여 어딘가 딴 데 있는 줄로만 알았던 주님의 음성을 알아챈 마리아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실 분은 곧 예수님이시며, 다시 말해서 죽음에서 되살아나신 주님이실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마리아는 그 주님의 음성에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나마나 마리아는 너무나도 반갑고 기쁜 나머지 버럭 주님께 달려들어 껴안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그녀를 말리시며, 자신이 이제 곧 성부님 아버지 하나님을 뵈러 하늘로 올라가셨다가 다시 오실 것을 그녀에게 몇 가지를 시사하고 지시하십니다.
첫 째로, 주님의 제자들은 이제 모두 주님의 형제자매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20’17). 이것은 주님의 부활 후 신자의 신분이 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부활은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 분의 진정한 탄생을 뜻하며(참고: 행전 13’33, 시편 2’7), 이것은 동시에 그분을 믿는 사람들이 모두 그분의 아우가 됐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시 22’22. 참고: 히브리서 1’5,6; 2’10~17)
둘째로, 주님이 조금 전에도 비치셨듯, 부활 직후 일차 승천하셨다가 하강하신다는 사실입니다(20’18). 바로 그래서 마리아에게 당신의 몸을 만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 이 부분의 이해를 위해 저의 글 ‘예수 승천은 딱 한 번?‘을 참조하기 바람 ]
이 진리를 대다수 교회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은 퍽 슬픈 일입니다. 카톨맄교에서 개혁가들이 그냥 전수받은 소위 ‘단회승천설'(승천 사건은 감람산 승천 밖에는 없다는 설)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주 님은 분명히 부활 후 당장 성부님을 뵈러 하늘에 올라가셨다가 다시 돌아오실 것을 마리아에게 분명히 천명하셨습니다(요복 20’17). 그렇지 않다면, 나중 남성인 토마에게만 몸을 만지게 하시고(요 20’27) 여성인 마리아에게 만지지 못하게 하셨다는, 남녀차별의 “웃기는 짬뽕” 같은 주장이 되고 맙니다. 수많은 신학자들이 ‘단회승천론’을 절대진리화하기 위해 만들어내고 꾸며내는 온갖 학설들에 그저 혀가 내둘릴 뿐입니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모순을 영 깨닫지 못하는지 매우 안타깝습니다.
성 경은 절대로 단회승천론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심지어 구약 시대 때도 성삼위 하나님을 대리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신 성자님으로서 인간들의 눈에 보이게 지상에 오르내리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 어찌 주님의 승천/하강이 단지 일회용이어야만 하나요? 그것은 유한한 인간의 짧은 해석일 뿐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이런 사실과 진리를 제자/형제들에게 전할 사명을 놀랍게도 여성인 마리아에게 맨 처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여성으로서는 정말 굉장한 미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파울의 단편적 교훈에 근거하여 여성들이 무조건 교회에서 잠잠해야 하고 남자들만 떠들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3
주님은 부활 후 부활 사실과 여기 엮인 너무나 심오한 진리를 제자들 모두에게 알리도록 한 믿음의 여성에게 부탁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지요. 만약 마리아가 단지 여성이라서 이런 심대한 진리를 전할 자격이 없다면, 마리아더러 페트로 등 딴 제자들을 즉각 불러 오라고 하셔서 대신 시키셨을 터입니다.
여 기서 우리가 또 느끼는 것은 여인들도 역시 이젠 주님의 형제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늘에서는 성 구분 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들(호이 휘오이 테우)입니다. “아들/딸 구분하지 말고..” 운운들 하는데, 하늘이야 말로 정말 남녀, 아들/딸 구분 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늘나라에서도 여성이고 싶고 페미니스트로서 여권을 주장하겠다면 문제가 큰 셈이지요.
아무러나 중요한 것은 이처럼 성경에서는 여성 신자들의 역할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컸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처음 유혹받고 죄를 범했던 하와의 남편 유혹 탓에 여인들의 위치가 현저히 낮아졌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글쓴이: TLT 김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