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사고 팔아서는 안되는 것들

돈으로사고 팔아서는 안 되는 것들

 

세상이 빠르게 망가져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무너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무서울 지경입니다. 물론 원인이야 많겠지만, 가장 큰 것은 돈 때문입니다.

돈으로 무엇이든 살 수 있다,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빠져, 결국은 돈의 노예가 되어 버린 세상… 그럴수록 돈의 위력은 더욱 당당해집니다. 악순환이 거듭되는 거죠. 작은 틈 하나로 큰 댐이 터지 듯 그렇게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겁니다.

 

하버드대학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이런 위험한 현실을 조목조목 살펴보는 책입니다.‘시장과 도덕’이라는 민감하고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시장이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고 있는가를 아누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인도 여성 대리모 서비스 6250달러, 미국으로 이민할 수 있는 권리 50만 달러, 교도소 감방 업그레이드 1박에 82달러, 용병으로 아프가니스탄 전투에 참가 매일 1천 달러, 대기에 탄소를 배출할 권리 1톤에 13유로……

 

이 책을 읽다보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들이 이제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해집니다. 기본적인 윤리, 친절, 시민적 참여, 공공성, 명예, 우정, 사랑…… 드디어는 사람의 목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돈으로 거래가 되면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이 책에서 다루는 현실은 대부분 우리가 이미 알고 있지만 고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만, 청소부 보험, 말기환금, 데스폴, 사망 채권… 등 우리가 잘 모르는 현실도 많이 알려줍니다. 죽음마저 돈으로만 따지는 끔찍한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 데스폴은 유명인사의 사망 시기를 추측하여 돈을 거는 도박 게임이고, 말기환금은 생(生)이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중환자나 노인들의 생명보험을 싸게 사서, 가입자 대신 보험금을 불입해주다가, 그 사람이 죽으면 보험금을 타는 생명을 담보로 한 도박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금융상품으로 만든 것이 사망 채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도박을 걸고 투자한 사람이 빨리 죽을수록 내게 이득이 많이 생기는 거죠. 얼마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생명보험을 샀는데, 그 가입자가 생각보다 오래 살면 손해를 보게 되니 낭패인 겁니다. 그러니…

 

세상이 이렇게까지 망가졌습니다. 하긴 뭐 우리 인류는 얼마 전까지도 사람을 사고팔았으니 할 말 없지요. 노예니 머슴이니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 아닌가요?

샌델 교수는 이 책에서 문제를 제기할 뿐이지, 섣부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우리가 시장의 무한한 확장에 속절없이 당할 것이 아니라 이런 사안들이 공적 담론과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허용할 것인지를 공적 검토를 통해 깊이 고민하고 서로 대화하고 합의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 돈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으로 사려 해서는 안 되는 것들, 돈으로 사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아직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랑, 행복, 인간적 품위, 자존심, 사람다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통계로도 증명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사랑은 어떨까요?

* * *

 

얼마 전 한국의 <조선일보>가 하는 종편 TV에서 한국의 결혼 풍습을 특집으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프로그램 이름이 <부모의 눈물로 올리는 웨딩마치>입니다.

그 프로그램에 따르면 한국의 혼사에서 혼수, 예단, 지참금 등 돈의 폐해가 매우 심각하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당연한 듯 벌어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5년 안에 이혼하는 부부의 50%는 예단 때문이랍니다. 사랑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이죠. 아니면 결혼을 비즈니스로 여기는 것인가요?

물론, 극히 일부분의 이야기겠지요. 그렇게 믿습니다. 다 그럴 리야 없겠지요.

 

그에 비하면 이곳에서 결혼하는 우리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고맙습니다. 자기들끼리 알아서 형편에 맞게 하니까요.

그런데 이곳에서도 한인들끼리 결혼하는 경우에는 한국의 몹쓸 풍조를 따르는 일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답답합니다.

* * *

 

돈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길은 전혀 없는 걸까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같지만, 저는 인디언들의 지혜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우리가 지금 인디언들처럼 살 수는 도저히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을 되새기면, 돈이 도덕을 밀어내는 속도를 조금은 줄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그대들은 깨닫게 되리라.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자, 당신이 그렇게 똑똑하다면 과연 누가 더 지혜로운지, 더 행복한지 한번 맞춰보십시오. 쉴 새 없이 일해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마음껏 쉬면서 사냥과 낚시를 즐기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구해 사는 사람이 행복합니까?”

북미대륙의 최북단인 퀘벡에 사는 인디언‘크리족’추장의 말입니다.(위베르 망시옹 지음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중에서)

 

자연과 어우러지며 느림의 철학으로 생활하는 크리족의 삶은 오로지 경제성, 합리성으로 대변되는 물질 만능과 성과 지상주의 사회에 진정한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묻고 있습니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돈과 속도를 따르고 마음과 자연을 거스른 대가로 잃어버린 행복과 평온함, 건강, 영적 성장과 치유를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으로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행복합니다.

“돈을 먹고 살 수 없다”는 한 마디의 울림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 인디언의 10계명을 다시 읽어봅니다.(류시화의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

 

1. 대지는 우리의 어머니, 그 어머니를 잘 보살피라.

2. 나무와 동물과 새들, 당신의 모든 친척들을 존중하라.

3. 위대한 신비를 향해 당신의 가슴과 영혼을 열라.

4. 모든 생명은 신성한 것, 모든 존재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라.

5. 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그냥 놓아두라.

6. 모두에게 선한 일을 행하라.

7. 모든 새로운 날마다 위대한 신비에게 감사하라.

8. 진실을 말하라. 하지만 사람들 속에선 오직 선한 것만을 보라.

9. 자연의 리듬을 따르라. 태양과 함께 일어나고 태양과 함께 잠들라.

10. 삶의 여행을 즐기라. 하지만 발자취를 남기지 말라.

 

현대인들에게 주는 큰 가르침입니다. 지금 세상이 이 계명과는 정반대로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어서, 자꾸만 곱씨버보게 됩니다. 이 중에서 단 한 두 가지만이라도 마음에 새기고 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특히“대지로부터 오직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그 이상은 그냥 놓아두라.”는 가르침… 자연을 모시며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랑, 행복, 인간적 품위, 자존심, 사람다움…… 같은 것들은 지키고 싶습니다. 그런 것들만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돈으로 사고팔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Califonia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