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을 넘으니
통증도 없어지더라
이성낙
편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서울 주재 한 독일 외교관이 필자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 외교관은 평소 동호인들과 함께 축구하는 걸 좋아했는데, 하루는 경기를 하던 중 그만 ‘발등골절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급히 응급 구조 차량에 실려 시내 병원으로 이송되었는데, 병원의 주치의가 환자를 입원시켜놓고는 며칠이 지나도록 수술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냥 다친 다리만 고정해놓은 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답답했지만, 주치의는 다친 발등이 너무 부어 있는 상태이며, 이른바 심한 부종(浮腫) 때문에 부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대답만 했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어쨌든 그 외교관은 결국 정형외과적 시술을 잘 받고 퇴원을 했답니다.
그런데 수술 후에도 발등 부종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통증도 통증이지만 지팡이에 의존하며 보행하는 게 너무 불편해 내심 주치의와 병원에 ‘수술이 잘 못돼서’라는 불만이 커져갔습니다. 그는 부상 당시 시내 저명 대학병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중소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위로한답시고 대학병원에서 수술받지 않아 그렇다는 둥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더욱더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더랍니다. 이 일로 인한 오만과 편견이 그의 속내에서 얼마나 ‘춤을 췄을지’ 짐작할 만합니다.
그러던 중 공무 때문에 독일 본부로 출장을 떠난 그는 그곳 대학병원 정형외과 주임교수의 진료를 받기 위해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동안 받은 치료와 수술 일지를 비롯해 서울에서 가져간 영상 자료도 제출했습니다. 주임교수는 서울의 병원에서 작성한 모든 병력 일지와 영상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더니 환자에게 다가와 “나는 이런 고도의 수술을 못합니다. 이런 시술은 진정 ‘예술’입니다” 하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습니다. 아울러 서울에 있는 동료 집도의에게 경의의 뜻을 전해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대학병원 현관을 거쳐 교수 진료실 앞까지 걸어가는 가는 동안에도 발등과 발목에 ‘오만과 편견’의 ‘뭉치 통증’이 있어 불편했는데, 교수의 진료실을 나오면서부터는 모든 통증과 불편함이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사라진 것입니다. 또한 그동안 품고 있던 한국 의료계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함께 사라지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 없더랍니다. 이후 한국의 의료 수준에 대해 무조건적인 믿음이 생긴 그는 노부모님을 서울로 모시고 와 철저한 치아 관리를 비롯해 모든 건강 체크를 하는 등 효도를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만과 편견’은 우리 인류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직까지 완전히 풀지 못한 마음의 고질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래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Jane Austen, 1775~1817년)이 1813년에 쓴 소설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이 다시금 우리의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는 처음으로 여성의 초상(肖像)이 영국 화폐에 등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오만과 편견’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전 세계 지성인에게 던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매우 고무적인 현상은 누적 수치로 볼 때 국내 출판계 역사상 외국 고전 중에서는 가장 많이 읽힌 책이 바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오만과 편견이 횡행하는 우리 사회에서 말입니다. 여기서 필자는 ‘오만과 편견’이 우리 사회가 넘어야 할 큰 사회 문제라는 공감대와 함께 지성의 몸부림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작은 빛입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는 뜻입니다.**
<필자 소개> 이성낙: 가천의과대 명예총장
뮌헨의과대학 졸업, 프랑크푸르트대학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학교 의무부총장 등을 역임/ 현재 가천대학교 명예총장, 의사평론가, (사)현대미술관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