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컬 운동이란?

 에큐메니컬에 대하여

 

역사

교회가 동과 서로, 그리고 개혁으로 갈라지기 전의 교회는 에큐메니칼 한 교회, 하나의 교회였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원 후 312년 콘스탄디누스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발표한 후 그리스도교 안에는 여러 교파가 대립되어 각각 자기 주장을 내세워 혼란을 거듭할 때 콘스탄디누스 황제가 소집하여 교회의 교리를 확립한 니케아 공의회는 에큐메니칼 공의회 였다. 이단 논쟁이 격화되고 교회가 분열되자 온 교회의 대표들을 한 자리에 모으기가 어려워져서 어떤 공의회가 진정한 에큐메니칼 공의회인가가 분명치 않게 되었으나, 대부분의 교회들은 첫 번째의 일곱 공의회를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인정하고 그 공의회들로부터 나온 자료들과 가르침들이 교리와 신조의 기초로서 받아들여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 공의회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AD 325)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AD 381) 에페소 공의회(AD 431) 칼케돈 공의회(AD 451)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AD 553) 제3차 콘스탄디노플 공의회(AD 680-681) 제2차 니케아 공의회(AD 787) 이다. 루터교와 성공회는 첫 네번, 제1차 니케아, 제1차 콘스탄티노플, 에페소, 칼케돈 공의회가 진정한 에큐메니칼 공의회였다고 믿고 그 결정을 지지한다. 동방 교회와 많은 개신교회는 첫 다섯 번 공의회를, 로마 교회는 1962년에서 65년까지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20여개의 공의회를 모두 에큐메니칼 공의회로 간주하고 있다.


에큐메니즘의 어원

에큐메니칼, ecumenical, 이란 어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온 누리’ 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오이쿠메네(oikoumene)’ 에서 파생된 말로서 ‘전 세계적인 교회(world-wide Christian unity)’ 를 의미한다. 오리게네스는 새로운 의미를 부가해 오이쿠메네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인류로서 교회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교회는 민족적, 국가적 구별을 초월한 인류의 새로운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세계인 교회, 그 교회가 전세계로부터 모여서 개최한 교회 회의도 콘칠리움 에큐메니쿰(Comcilium Oecumenicum)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15회 사용되었다. 이 말은 교리문제로 인한 교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모인 교회회의에서 이미 사용되었다. 연합은 교회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에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고 고백하는 사도신경에 나타나며, 니케야 신조도 교회의 연합, 거룩, 보편성 및 사도성을 말한다. 그러나 전세계적이고도 조직적인 연합운동은 20세기의 선교문제로부터 시작된다. 곧 이 단어는 자신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교회들을 연합하는 운동을 지칭하게 되었으며, 특히 이 단어는 세계 교회협의회 즉 W.C.C.(The World Council of Churches)와 그 산하 기관의 신학 또는 공식적인 견해 및 신학적 경향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20세기에 들어면서 WCC 초대 총무를 역임한 비서트 후프트(Vissert Hooft)는 이 에큐메니칼 용어를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 ‘전 로마 제국’, ‘전 교회’, ‘교회의 우주적 타당성’, ‘교회의 세계적인 선교’, ‘교회간의 관계와 일치’, ‘기독교의 일치 의식’등 일곱가지로 표현하고 그 중 후자 세 개념, 교회의 세계적 선교, 교회들간의 일치, 기독교의 일치 의식을 20세기 현대적인 의미에 있어서 에큐메니칼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오늘날의 에큐메니즘이란 말은 금세기에 시작된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를 지향하는 운동으로 한정되고 있으나 본래의 의미로 본다면 그리스도교 세계의 일치뿐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진 말, 즉 그리스도 안에서 전세계의 일치, 전 인류의 일치도 포함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세 흐름

에큐메니칼 운동에는 세 흐름이 있다. 신앙과 직제(Faith and Order)운동, 삶과 봉사(Life and Work)운동, 그리고 세계 선교(World Mission)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1910년 ‘세계선교대회’ (W.M.C.:World Missionary Conference)를 계기로 에큐메니칼 운동이 본격화된 이래로 결국 1937년 ‘신앙과 직제’ 위원회 대표들과 ‘삶과 봉사’위원회 대표들이 W.C.C.를 창출해 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10년이 경과한 1948년에 암스테르담에서 제1차 세계교회협의회가 개회되었고, ‘세계선교대회’전통은 이 WCC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활동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에큐메니칼 운동은 이 세 흐름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다. 이 세 운동 중 ‘신앙과 직제’는 그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며, ‘삶과 봉사’는 1960년대에 ‘교회와 사회’로 그리고 1990년도에는 ‘정의, 평화, 창조세계의 보전'(JPIC: Justice, Peace and Intergrity of Creation)으로 바뀌었고, ‘세계 선교’는 1929년부터 IMC(국제선교대회)로 그리고 1974년 방콕 이래로 CWME(세계선교 및 복음전도대회)로 개칭 되었다.

 

 

복음주의 목사가 에큐메니칼 진영에 드리는 고언

사회 변혁 운동을 넘어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나는 1980 년 중학교 2 학년 때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여 1990 년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하기까지 예장 합동 측 교회를 출석했고, 몇 번의 외도(?)가 있기는 했지만 거의 합동 측 언저리를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86세대적 분위기 속에서 대학을 다니고 이른바 이념 서적을 읽으며, 에큐메니칼 운동의 전설을 막연하게나마 흠모하며 성장했다.

1993 년부터 발을 딛게 된 기독 운동을 통해 이름으로만 듣던 쟁쟁한 에큐메니칼 운동 선배들의 무용담을 들으며 열등감 같은 것도 느꼈다. 그 때 이 후 젊은 호기 외에 아무 것도 모르던 말단 간사로부터 시작해서 이제 제법 선배 축에 속하는 실무 책임자에 이르도록 10 여 년이 넘게 일해 왔다.
감사하게도 나는 처음 운동을 시작했던 93 년부터 지금까지 이른바 보수/복음주의 진영에 속해있으면서도, 진보/에큐메니칼 진영을 끊임없이 만나며 함께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비교적 많이 가진 사람 중 하나다.

나는 아직도 에큐메니칼 진영의 끈끈한 분위기를 좋아하고, 현장에 참여해 있으려는 열정에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나는 에큐메니칼 진영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가슴에 담게 되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1. 거대담론주의를 탈피해 주십시오.

에큐메니칼 진영을 보며 느끼는 이미지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마치 해충을 잡는데도 전차를 동원하고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 같은 경직성과 둔탁함을 느낀다. 한 예로 우리가 잘 알듯이 작년은 1987년 민주화운동 20주년, 1997년 IMF체제 10주년에 다시 정치적 보수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게 예견되던 해였다. 그런 만큼 에큐메니칼 진영이 주도가 되어 5월 기독교사회포럼을 통해 대선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판을 벌여 놓았지만 최소한의 행동합의도 없이 말의 잔치로 끝나고 말았다. 그로부터 대선이 벌어지던 12월까지 기독교계는 이명박 대세론을 넋 놓고 바라보며, 끝까지 범여권 후보단일화와 BBK 한방만을 기대하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내가 이해하는 한 지난 대선은 이명박 후보 혼자서 스스로와 겨룬 싸움이었다. 마지막까지 BBK 한방으로 막판뒤집기를 꿈꾸던 분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자기 몫의 무엇인가 있는 가운데서나 바랄 수 있는 반사이익이지 오직 반사이익만으로 대권을 잡겠다는 대박신화로 이룰 수 있는 꿈은 아니다. 솔직히 나는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만큼이나 정동영이 지겨웠다. 개혁진보세력은 차라리 미래를 위한 투자, 즉 국민을 상대로 하는 감동의 정치를 더 고민했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개혁진보이다. 사상과 이념의 경직성을 탈피하지 못한 채 이론 속에서만 존재하는 서민과 민중에 대한 사랑은 더 이상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한다. 슬프지만 그런 상황 가운데 범여권 후보 탄생에 끝까지 미련을 가졌던 우리 에큐메니칼 선배들이 그러한 미래적 개혁진보의 변화에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결국 이번 대선은 현실도 잃고, 미래도 잃었다.

정치인들은 4, 5년의 임기가 자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에 어차피 멀리 보기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종교인들이 현실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면, 제한적 4, 5년을 넘어서 좀 더 멀리보고 국민을 섬길 수 있는 그림을 보여줘야 하는데, 기독교 안팎의 현실 진보개혁세력은 조금만 정치에 관심 있으면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정권방어 방정식만을 거들었다. 그 지점에서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내가 청년시절 사표로 삼았던 김진홍 목사에 대해 나는 실망, 절망을 넘어 갈수록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그것은 그저 노선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피로 값주고 사신 소중한 교회의 가치를 한낱 이명박적 가치 아래 복무하는 도구처럼 전락시켜 버린 그의 불경하고 천박한 사고 때문이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린다면 에큐메니칼 진영도 특정 정파나 정치인을 하나님나라의 가치와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 달라는 간곡한 당부다. 보수든 진보든 모든 기독교운동은 사회변혁운동을 넘어 하나님나라 운동임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2.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힘써 주십시오.

교회사역을 하면서 가끔 놀라는 점은 제법 의식 있고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분인데도, 사역내용이나 시스템에 다음 세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에큐메니칼 운동도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를 바라보며 후배 세대에 대한 좀 더 깊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우리 에큐메니칼 선배들은 7~80년대 독재와 싸우며 민주화의 초석을 다졌고, 지난 10년 간 이른바 민주정부의 한 축을 담당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제 강력한 신자유주의와 보수화로 무장된 이명박 정부에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무엇에 좀 더 힘써야 할까? 다음 세대를 길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생각에는 지나치게 난립해 있는 많은 운동단체와 기관들을 필요에 따라 좀 더 통합하여 힘을 모으고, 활동 가능한 실무자들에게는 최대한 현실적 대우를 해 주어야 한다. 물론 기독교 안팎, 보수와 진보를 넘어 모든 시민사회단체들의 운영 상태는 기본적으로 열악하지만 해결하려는 책임의식이 없으면 운동의 책임 있는 재생산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뜻있고 준비된 에큐메니칼 실무자들 몇몇이 현장을 떠나야만 하는 현실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운동 후배들이 소신 있게 일해 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재정후원을 마련해 주고, 인터넷 신문 에큐메니안이 에큐메니칼 진영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전할 수 있도록 조금 더 힘을 기울여 주기 부탁드린다.

제3자의 입장에서 떠들기는 쉽지만, 감당하기에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선배세대와 후배세대를 연결할 수 있는 신뢰받는 중간 리더쉽들이 교통정리를 해 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3. 복음주의 운동과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 주십시오.

사회선교에 관한 한 에큐메니칼 선배들 앞에서 복음주의는 아직도 어린아이다. 이제 사회선교에 대한 개념을 일반화해 가는 첫 걸음을 시작해 가고 있지만, 이론에 그칠 뿐 현장에의 참여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런 면에서 무슨 사건, 사고가 생겨도 가장 먼저 달려가 여전히 현장을 지켜주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에큐메니칼 운동 전반은 그러한 경험과 자부심도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아낌없이 내려놓아 주기 바란다. 한국교회가 하나님나라의 올바른 도구로 사용되는데 도움이 된다면 우리의 모든 전통과 자부심도 아낌없이 내던질 수 있는 대승적인 마음을 부탁드린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우리를 함께 만나게 하신 그 분의 섭리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구 교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