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욕쟁이 엄마가 왜 무릎 꿇고 울었냐고요?
개그우먼 이성미 집사
연예인 VS 엄마로 사는 법
‘욕쟁이 엄마’는 아들에게 말할 때 거침없었다. 칭찬도 욕으로 할 정도다. “넌 어쩜 그렇게 잘하냐, 이 미친놈아!” “이 XX 진짜 똑똑하다.”
그런 엄마를 둔 아들은 수시로 학교 수업을 빼먹었다. 폭력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욕쟁이 엄마 밑에 ‘문제 아들’. 이런 콩가루 집안이 또 있을까.
그런데 지금 그 아들이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공부를 한다. 욕쟁이 엄마 입에선 사랑, 사랑, 사랑이 흘러넘친다. 하나님 손을 잡았더니 엄마와 아들이 변한 것이다.
개그우먼 이성미(55·베이직교회) 집사네 이야기다.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온누리교회에서 이 집사를 만났다. ‘연예인 맞아?’란 생각이 들 정도로 수수한 모습. 민낯이었다. 지난해 1월 유방암 수술을 받은 그는 편안해 보였다.
“아 픈 것에 묶이면 계속 아픈 사람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수술할 때 ‘난 아프지 않다’고 마음을 다잡았어요. 30번 방사선 치료를 할 때 제일 힘들었어요. 매일매일 방사선 치료를 하면서 ‘하나님 이 빛으로 나를 좀 제대로 쏴주세요. 저 좀 사람 만들어 주세요’ 기도했어요.”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2012년 늦가을, 그는 두 명의 암 환자 친구를 만났다. 그들의 아픔까지 알 리 없는 이 집사는 그저 낫게 해 달라고 기도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검진 받는 촬영을 했는데, 암이 발견된 것이다. 비로소 암 환자들의 아픔을 알 수 있었다.
“살아야 기적이고 나아야 주님이 일하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마지막 떠날 때 아름답고 환한 모습을 한 것을 보며 내가 기도한 대로 살아야만 응답이 아니다, 이렇게 웃으며 천국 가는 것도 응답이다, 어쩌면 더 큰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그러고 나니 두려울 게 없더라고요. 앞으로 하나님이 어떤 일을 시키실지 상당히 기대돼요.”
7년 만에 캐나다에서 귀국해 방송 활동을 재개하며 그가 들려준 자녀 교육법은 화제였다. 2002년 9월 한국을 떠날 때 이 집사는 마흔셋, 큰아들은 열셋, 둘째 딸은 다섯 살이었다. 막내딸은 태어난 지 14개월. 낯선 곳에서 가족은 힘들었다. 특히 아들은 심하게 사춘기를 보냈다.
학교 수업을 빠진 아들 뒤통수에 대고 이 집사는 험한 말을 쏟아냈다. “너 때문에 내가 창피해서 못 살겠다” “넌 뭐가 되려고 하냐 미친놈아” “날 샜다, 이 쓰레기 같은 놈”….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네 아들, 네가 말한 대로 만들어 줄까?”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하나님 안돼요”라며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17년간 아들에게 쏟아냈던 욕이 입에서 완전히 떠나고, 학교에서 폭력사건에 휘말린 아들을 보면서 그는 그동안의 잘못을 빌었다. 아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엄마를 용서해라. 다 엄마 탓이야”라며 진심으로 사과했다. 아들은 참았던 울분을 토해냈고 둘은 부둥켜안고 꺼이꺼이 울었다. 새벽기도를 드리러 가는 엄마를 따라 아들이 나섰다.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는 삶으로 변했다. 이 집사는 아들에게 다른 말 안 하고 그저 기다려줬다.
요즘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냥 애들 좀 내버려두세요. 엄마들의 ‘자녀 염려증’은 결코 도움 안돼요. 애들이 창작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해요. 제 아들은 제가 변해서 같이 변한 경우예요. 지금 트리니티대학에서 신학 공부하는데,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해요. 25세이면 학비도 자기가 알아서 할 나이입니다. 개고생하고 있어요. 괜찮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20대에 네가 고생했으면 30대에 기초가 되고, 그 기초를 세우면 40대에 네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50이 되면 네가 어떻게 살았는지, 열매를 볼 것이다’고 말해줘요. 하나님만 붙잡고 스스로 살아내면 됩니다. 오빠를 옆에서 본 두 딸도 벌써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둘째는 열일곱 살인데, 틈틈이 아기 봐주는 아르바이트하고 있어요.”
이 집사는 이런 자녀 이야기 등을 담아 간증집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두란노·사진)를 최근 출간했다. “책 써”라고 명한 고(故) 하용조 목사의 말씀을 마음에 담았다 이번에 결실을 봤다. “2년간 배불러 있다가 애 나온 거 같아 너무 시원하다”며 웃었다.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뒤 겪은 상실감, 낳아 준 엄마는 얼굴도 모르고 그 뒤로 세 엄마와 함께 살아야 했던 시간들, 그의 마음속에 내재된 외로움과 분노의 아픈 상처들, 유명 개그맨이 됐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던 이야기들도 있다. 혹 ‘이혼했나?’ 궁금해할 이들을 위해 남편 이야기도 살짝 곁들였다고 했다. “7년 떨어져 지낸 만큼 다시 가족이 사랑하고 화합하기까지 7년이 걸리는 것 같다”며 “남편도 나도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마 이어질 책은 남편과의 회복이 중심이 될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 집사의 롤 모델은 구레네 사람 시몬. 뭐든 받아주고 뭐든 먹게 해주고 들어주는 ‘쓰레기통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암 수술 뒤 업그레이드된 간증을 털어놓는 그는 이미 용량이 차고 넘치는 ‘사랑통’의 모습이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