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의 세상 읽기] 섭리의 눈, 선택의 눈


 

[공병호의 세상 읽기]


 섭리의 눈, 선택의 눈



 



“일제에 의한 한민족의 식민지와 남북 분단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장로의 자격으로 2011년 한 교회에서 가진 특강에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앞뒤 문장을 끊어버리고 “일본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으로 소개하면 일반인의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문 후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나님이 한민족을 더욱 귀하게 사용하기 위해 시련을 주셨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말을 조금 더 다듬어 사용하였더라면 오해를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에게는 민족의 불행과 하나님의 뜻을 연결시키는 것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비난받아야 할 내용으로 비칠 것입니다. 여기에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발언은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주는 주장이 아닌가라고 분노를 표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비판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런 발언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경험하는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세계관의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일상사뿐만 아니라 사회나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려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분들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믿는 자라면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 말씀이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롬 11:36)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믿는 분들은 창조와 천지만물을 주관하는 분으로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문을 갖지 않습니다.

이는 믿는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섭리(攝理)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됨을 뜻합니다. 섭리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1문답은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일들은 모든 피조물들과 그들의 모든 행위들에 대한 그의 가장 거룩하고 지혜롭고 능력 있는 보존하심과 통치하심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5:1은 섭리에 대해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를 제시합니다. “만물의 크신 창조자 하나님은 그의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에 의해 그의 무오(無誤)한 예지(豫知)와 그 자신의 뜻의 자유롭고 불변적인 계획을 따라 모든 피조물과 그 행위들과 일들을 가장 큰 것부터 가장 작은 것까지 붙들고 지도하시고 처리하시고 통치하셔서 그의 지혜와 능력과 의와 선과 자비의 영광을 찬송케 하십니다.”

성경을 절대 진리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섭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에게 이를 납득시키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닐 뿐더러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일찍이 이런 문제를 관심 있게 들여다본 학자가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 몸담았던 토머스 소웰 박사입니다. 그는 ‘세계관의 충돌’(The Conflict of Vision)이라는 책을 통해서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사이의 극명한 세계관의 차이가 어떤 것이며,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도 진보와 보수 사이의 간격이 만만치 않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이런 문제들이 더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되리라는 기대감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이런 간격이 더욱 확대되어 간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러면 세계관의 갈등이 발생하게 될 때 이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다른 세계관을 가진 분들에 대해 “저 분들의 세계관에 의하면 저렇게도 해석할 수도 있구나”는 점을 이해해 주는 일입니다. 관대함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볼 수 없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을 기꺼이 인정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걸음 나아가 내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내가 보고 아는 세상 그 너머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계관의 격차로 인한 문제를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보고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기대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한쪽은 섭리의 눈으로, 한쪽은 우연과 선택의 눈으로 보게 되면 같은 세상도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공병호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라이스대학교대학원 경제학 박사,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