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역사                   이길주/ 버겐 커뮤니티 칼리지 교수

게티즈버그(Gettysburg). 그것은 환난 중의 비극이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7월 1일에서 3일 사이 이곳에서 벌어진 사흘간의 전투에서 15만 명이 격돌해 거의 5만 명이 죽고 다쳤다. 

포성이 멈추자 게티즈버그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여기저기 나뒹구는 약 8000의 주검이 여름 땡볕에 썩어갔다.

대충 흙을 뿌려 덮고 막대기를 꽃아 묘지 흉내를 냈지만 피비린내를 맡고 달려드는 뭇 짐승을 막을 길은 없었다. 죽은 말과 노새 5000마리는 태웠다. 그 역겨운 메케함 하나로도 게티즈버그는 아수라장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전사한 남편과 아들을 찾겠다고 달려온 가족들은 얕게 묻힌 시신들을 헤치고 파냈다. 다른 이의 것으로 확인되면 그냥 내던져 놓고 다음 묘지로 옮겨가 파헤치기를 계속했다.

이 와중에 땅 투기꾼도 몰려들었다. 언젠가 주검들을 제대로 묻으려면 토지가 필요할 것이고 지금 땅을 사두면 큰 이익을 볼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데이비드 윌스라는 지역 유지가 있었다. 그는 돼지들이 몰려와 흙을 파헤치고 시신을 훼손하는 광경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제대로 된 장례를 위해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노력의 결실로 공동묘지가 조성됐다(남부군 주검들은 추후 거의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다).

1983년 11월 19일. 묘지 봉헌식에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를 찾았다. 북군의 군통수권자인 그의 명령에 따라 게티즈버그 전투가 치러졌고 그 무모했던 격돌의 희생자들이 잠든 곳에 링컨은 섰다.

미국 사회의 시선은 링컨에게 고정되었다. 무엇을 위한 희생이고 죽음인가? 링컨은 이 물음에 답해야 했다. 장황한 연설을 하지 않았다. 272개의 단어로 남북전쟁의 의미를 정리했다. 2~3분 정도의 연설로 자신의 역사관을 전했다고 할 수 있다.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미국 탄생의 의미를 먼저 정립했다. 미국은 자유란 모태에서 잉태되었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고백 위에 세워진 위대한 실험적 공동체이다. 

이 이상이 치명적 도전을 받았다. 인간의 편견과 욕망 때문이다. 미국을 둘로 가르고 피 흘리게 한 노예제도의 저변에는 미국의 이상과 가치를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하지 않는 삐뚤어진 의식과 제도가 있었다. 

이를 종식시키기 위한 희생이 곧 남북전쟁이다. 더 구체적인 목표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이다. 남북전쟁의 50만 죽음은 민주주의의 발전적 재탄생을 위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며 환란이었다. 

링컨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미국이 ‘신의 가호 아래(Under God)’ 존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는 일생 동안 사전적 의미의 교회 생활을 하지 않았다. 종교적 교리가 자신의 정신적 토대인 합리주의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가 신을 언급했다. 왜 일까? 

인간의 비극은 신이 허락한 선을 인간이 거스르기 때문에 생겨난다. 신은 인간을 차별 두지 않고 평등하게 지었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허락했다.

그런데 인간이 신의 흉내를 내면서 이 신성한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고 빼앗았다(제국주의자들도 마찬가지다). 수백만의 흑인들이 열심히 교회를 다니면서 늘 성서를 인용하는 백인들에 의해 하늘이 허락한 인간성을 짓밟은 현실을 어떻게 바꾸나? 

간단하다. 태초의 신의 뜻 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신이 부여한 가치와 이상을 회복하기 위해 미국은 전쟁을 했다. 산하가 피로 물들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다. 이 시련과 환란의 결과는 하나 된 미국이다.

그후 미국은 통합된 사회의 에너지를 산업화와 공간적 팽창에 쏟는다. 거침이 없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30년도 지나지 않아 아시아 태평양의 패권 국가로 부상한다.

중남미는 아예 미국의 뒤뜰로 불리게 된다. 남북전쟁 반세기 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승자로서 세계의 지도자 국가로 부상했다. 

남북전쟁은 과연 신이 내린 축복인가? 그 축복 속에 하루 평균 1만5000명이 죽고 다친 게티즈버그도 포함되는가?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링컨의 사상에 비추어 답을 해본다.

인간이 신의 축복을 파괴해 역사의 비극이 생겨난다. 그 비극을 극복할 때 인간 공동체는 신의 축복을 회복한다. 제대로 교회 출석도 하지 않았던 링컨을 미국이 존경하는 이유에 그의 확고한 신과 역사에 대한 믿음도 포함된다.

뉴욕 중앙일보   2014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