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의 주인과 사용권


 헌금의 주인과 사용권

  “그런데 오늘날 헌금 사용하는데 있어 중, 대형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기업 같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은퇴 예우금과 은퇴후 급여와 혜택 등을 보면 그렇습니다.”

 

한국교회 특별히 중대형 교회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서 헌금 사용에 대해 저는 교회가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서 적어본 것입니다.

 

 

모기지 파동이후 많은 성도님들이 어렵습니다. 물론 영향 받지 않는 분들도 계실 것이지만 대부분 어렵다고 듣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하는 일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십일조 등 다양한 헌금을 해서 그 목표를 위해 사용하고자 하는 것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전임 사역자 사역비, 교회건물 유지 관리 보수비, 구제, 선교 로 사용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퇴직금이나 향후 생활보조비 등은 구제적인 차원일 것이다 생각됩니다. 일을 많이 하셨고 업적을 남겼기에 드리는 금품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 은혜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섬기니까요.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셨는가 라는 생각이 있으니까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야 하겠지요. 그리고 우리에겐 하늘나라 상급이 있다 말씀하시니까요.

 

[헌금의 주인과 사용권]

 

사도행전 6장에 보면 믿는 자들이 많아지면서 문제가 생긴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말을 하는 유대사람들이 히브리 말을 하는 유대 사람들에게 불평을 터뜨렸습니다. 그것은 매일 구제하는 일에 있어 자기네 과부들이 소홀히 여김을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사도들이 구제 사역도 담당했던 것 같습니다. 사도들이 담당하기에 무리가 있다 고 생각되어 사도들은 교회에 신망이 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뽑아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일을 맡을 사람들을 선출한 것입니다. 그것이 구제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구제 사역은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일이 꽤 중요한 사역이었음에 분명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구약에는 구제에 관한 많은 기록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아와 과부를 돌아볼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구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죄가 될 것 같지 않은데 말입니다.

 

왜 일까요?

 

아마도 광야 생활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할 때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 음식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공급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나를 거둘 때 먹을 만큼만 거두게 하셨습니다. 저울로 재면서 거둔 것도 아닌데 오멜로 되어 보면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습니다. (출16:16-18)

 

광야생활이 끝난 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그러한 삶의 원리는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희년제도(레25장), 간단하고 쉽게 표현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셨던 원래대로 되돌아가게 하는 제도 등을 세우신 것은 약속의 땅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신 것이라 생각됩니다.(레25:23,42) 하나님이 주인이요, 우리는 그분의 종으로서 관리하고 사용할 권리만을 가진 자라는 것이지요. 종이기에 주인의 뜻에 따라 관리하고 사용하도록 여러 가지 규정들을 주신 것이고요.

 

이스라엘 백성의 십일조에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먹고 살아가는 기본적인 원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일을 하는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인들, 노동 능력이 안 되는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신약시대에 와서도 동일하게 요구되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닌데 구제에 있어 균등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되고 이에 불만이 터졌고 교회의 구제의 일을 맡을 집사들을 세우게 된 것 같습니다.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이상한 것은 구제하는 일을 맡기면서 안수까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정을 베푸는 그런 구제가 아니다 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교회라는 공동체의 나눔, 분배 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구제는 교회라는 공동체에서의 구제와는 다를 것입니다. 일반적인 구제는 임의대로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라는 공동체에서 구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고 일반적인 지혜가 아닌 하나님 나라의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 공동체에서의 구제사역은 왜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 충만함이 필요할까요?

 

교회에서의 구제는 교회를 공동체로 보고 분배의 개념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신약성경에는 교회에서 십일조와 다른 예물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구제를 위한 헌금에 대해 기록된 것을 토대로 헌금에 관한 원리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기근으로 인하여 어려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일종의 구제 헌금에 동참해 줄 것을 명령이 아니라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말하면서 부탁합니다. 헌금에 동참하는 것은 ‘봉사의 일’ 이라고 표현하면서 헌금은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과 억지로나 인색함으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하라고 말합니다. (고후9:

 

 


5.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12.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헌금하라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그 대신에 고린도 교인들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구약에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않았다’ 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고후8: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균등하게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된 것 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교회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만 교회는 그 헌금을 관리하고 사용하는 권한을 받았습니다. 사용한다는 것은 분배를 포함하고 분배는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균등을 기본적인 원리로 해야 하겠지요.

 

 

사도바울은 절대적인 필요가 있는 과부를 도와줌에 있어서도 다음과 같은 원리를 따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가 짐지지 않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 주게 하려 함이라



 

 

그런데 오늘날 헌금 사용하는데 있어 중, 대형교회들의 모습을 보면 교회라는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기업 같아 보입니다. 예를 들면 은퇴 예우금과 은퇴후 급여와 혜택 등을 보면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목회하면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은퇴하시게 되면 나이는 들었고 몸은 늙고 저축한 것은 없고 막막하기에 은퇴할 때 교회에서 은퇴 예우금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미자립 교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이런 의도에서 주어진 은퇴 예우금이 의도와는 달리 악용되고 은퇴 후에도 급여와 혜택 등을 통해 개인 기업의 주식 지분처럼 받는 것 같습니다.

 

 

사회보장제도도 없고 교단 연금제도도 없고 사역하는 기간 동안 최저 생계비 정도로 살아오셨다면 교회에서 은퇴하시더라도 교회는 연대책임을 지고 생계를 지원해야 마땅합니다.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는 헌금 사용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큰 혜택을 누렸고 급여도 높았고 사회보장제도도 있고 교단 연금도 있고 자녀들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다면 ‘사역을 맡겨주셨던 것에 대한 감사와 함께 사역에 동참해 주신 교회에 감사하고 교회도 우리를 잘 목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목사님도 일반 성도의 자리에서 교회를 섬기기도 하고…… 그렇게 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나 하는 당연하다 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구약의 레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급 방법과 신약의 헌금의 사용 원리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같은 목표를 향해 지금도 나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사도행전 20장에는 사도바울이 마지막으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서 부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32.

나는 이제 하나님과 그의 은혜로운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을 튼튼히 세울 수 있고,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유업을 차지하게 할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고난이던 시절에 주신 말씀인데 앞으로 교회가 어떻게 될지 알고 미리 알려준 것 같습니다.

 

 

한국 교회에 대한 신문에 오르내리는 내용들을 생각하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는 절규처럼 느껴집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whose end is destruction, whose god is [their] appetite, and [whose] glory is in their shame, who set their minds on earthly things.


 


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당부한 것은 교회인 우리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겠지요.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개인은 교회에 짐을 지우지 않고 스스로 자기 짐을 지려는 태도, 개인적으로는 말씀을 받는 자가 가르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함께 하고자 하는 이것이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일 것 같습니다. 

 

Rose /Bethany Chu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