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영웅일까? 

 

역사를 왜 공부하는가?

역사에는 가슴 뛰게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야기들은 어떤 때 음악 이상으로 우리를 흥분하게 한다.

뜨거운 야망과 처절한 몰락, 영광과 오욕의 시간이 교차한다.

역사를 보면 정의가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는다.

그냥 승자가 있을 뿐이다.

 확실한 건 그 어떤 역사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의 풍경들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민 낯이 보인다.

그 민 낯은 나의 얼굴이자 당신의 얼굴이기도 하다.
극장에 가서 보지는 못했어도 그 내용을 잘 아는 영화가 있다.

‘명량’이라는 영화다.

 누적관객 수가 1700만 명을 넘었다고 하니

 그런 걸 보고 대박이 났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보신 분들이 답해 보시라.

 사실 ‘명량’에 특별한 내용이 있던가.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들을 다른 각도에서 재구성했을 뿐이다.

그 많던 이순신 드라마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왜 그토록 열광할까.

아마도 현실에 대한 실망과 염증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된다.

현재 한국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리더십이 부재한가를 말해 주고 있다.

시대에 대한 반동으로 400년 전 영웅을 데려와

우리는 환호하고 대리 만족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명량”을 생각하면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역사에

손꼽을 만한 영웅은 고작 그 정도라는 말인가.

까닥하면 이순신과 세종대왕 자랑뿐이다.

 길거리와 공연장과 심지어 군함의 이름에도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찍혀 있다.

화폐에 그려져 있는 주인공도 그 옛날 인물들이 전부다.
우리네 반만년 역사에 내놓을 만한 인물은 그들 뿐인가. 그들만이 영웅인가?

우리가 환호해야 하고 우리가 멘토로 삼아야 할 분들이 그들 뿐인가?

 영웅에 대한 개념부터 잘못된 것이 아닐까?
미국의 3대 TV 중에 ABC가 있다.

황금 시청시간대의 생방송으로 방송하는 장면을 보았다.

 길거리 한 모퉁이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 흔들어 주는 노인의 모습을 특집처럼 방송한다.

 전정 터에서 개선하여 돌아온 영웅 이상으로 초라한 한 노인이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을 생중계한다.
누가 영웅인가? 나라를 맨 주먹으로 뒤집어 엎어놓은 사람만 영웅인가?

미국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왜 그리 미국에는 영웅이 많은지….

강아지 한 마리를 시궁창에서 건져내도 영웅이다.

불타는 집에 뛰어 들어가 사람을 구해 내도 영웅이다. 큰 영웅이다.

 조석간에 들려오는 방송이나 신문을 보면 영웅을 찾아 보기에 그리 어렵지 않다.
영웅을 나름대로 구분해 본다.

큰 영웅과 작은 영웅으로…

한국은 혹 큰 영웅만 영웅으로 쳐주고

작은 영웅은 별 볼일 없는 영웅으로 쳐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미국은 큰 영웅 보다 작은 영웅들이 주변에 널려 있어서

숨쉴 때 마다 가까이 접하며 도전을 받는다.
얼마 전 내가 사는 지역의 한 교회가 주변에서

개척 교회하는 가난한 젊은 목사님들을 쌍쌍이 초청하여 위로의 잔치를 베풀었다.

터 놓고 간증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은 너무 힘들어서 죄송한 표현이지만

 자살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느라 힘을 다하고 있다면서 울먹였다.

 이 사람이 누구인가? 영웅이다.

한국에서도 이 목사를 영웅이라 불러줄까?

무능하고 미련 한 것…… 쯤으로 치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