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 후를 상상해 봤는가? = by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남북통일 후를 상상해 봤는가?

                            by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한국 사람들은 남북 통일 가능성에 대해 점점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통일이이뤄진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별로 안 하는 것 같다.



한때 북한에 살았던 입장에서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하나는 한국의 대체적인 여론과 달리 북한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통일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김씨 왕조의 폭압에서 벗어나 기뻐하는 북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진짜로 기뻐하는 지는 두고 볼 일이다. 

두 번째로는 통일은 끝이아니라 오히려 매우 상이하고 때로는 적대적인 두 사회를 하나로 묶는 작업의 시작일 뿐이라는 점이다.



평화로운 남북 통일이 이뤄진 날을 상상해 보자.

통합의 우세한 쪽은 대한민국 정부이고, 통일 한국의 수도는 서울이며, 북한 고위층은 태국에 고급 빌라를 사서 은퇴했다고 가정해 보자. 

내가 이렇게 가정하는 이유는 이것이 제일 무난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전쟁을 통한 통일은 원한과 적대심을 남겨 통일 후 과정을 힘들게 할 것이다. 

또 만약 통일한국의 정부에 북한 인사들을 포함시켜야 한다면 휴전선 이북지역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등의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통일의 그날, 

평양의 여성들은 치마 저고리를 입고 나와 기쁜 표정으로 꽃다발을 흔들 것이다. 꼭 기뻐서라기보다 그게 그들에게 기대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내는 복잡할 것이다. 

우선 그들은 남한이 북한보다 훨씬 부유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앞으로 먹고 살기가 나아지고 ‘천국의 계단’ 같은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고상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클 것이다.

김씨 왕조가 자신들에겐 인생의 전부였고 지금까지 모든 결정을 알아서 해줬다. 1989년 소련이 무너졌을 때 한 노인은 서방 기자에게 “이제 내 삶은 누가 책임져 줍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북한에서도 그런 질문들이 터져 나올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 사람들은 남한의 부(富)를 그냥 공유할 수 없고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 남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북한 사람 상당수는 평양으로 이주하려고 할 것이다.  

평양에서 사는 것이 특혜라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남한 지역으로 내려오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해 상당 기간 남북 간 이주의 자유를 제한 한다면, 

억지로 넘어오다 군사분계선(DMZ)에서 지뢰에 희생되는 사례도 속출할 것이다. 많은 북한 사람들이 실업자로 전락할 것이고 범죄율이 높아질 것이며 북한산 고품질 히로뽕이 남한에 밀려 내려올 것이다.



억압 체제에서 사는 게 힘들다 보니 북한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 물건을 훔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기술과 인프라다. 

북한 사람들은 어떤 학교에 가고, 돈을 어디에 저축하고, 심지어 언제 쉴 지에 대한 결정도 모두 당(黨)에 맡겨 왔다.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느끼고 있는 것처럼 뭔가를 스스로 결정한다는 자체가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교육 측면에서도 기초 수학, 과학 분야는 독보적이지만 그 이외의 과목들은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외국인을 만날 기회도 없으므로 외국어 능력이 있을 리 없다.



한국에선 지금도 일부 탈북자들이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통일이 되면 이보다 수천 수백 배의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이 경제적인 이유(노동력 활용)에서나 애국심의 발로(북한 사람들에게 일자리 제공)로 북한 지역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런 좋은 시도는 북한사람들을 통일 한국의 2급 시민으로 고착화하는 부작용도 낳을 것이다. 

남한 사람은 경영자, 북한 사람은 노동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정치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동독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만약 북한의 관리가 선거에 출마한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민주주의로 전환한 옛 공산권 국가에선 자유선거가 도입된 이후에도 주민들이 자신들이 알던 예전 공산당 지도자들에게 투표했다.



북한 관리가 통일 한국의 정부나 국회에서 활동하는 것이 한국의 보수층에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통일이 한국에 엄청난 경제적 부담이라는 얘기는 많이 나온다. 

그 대부분이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 때문이다. 

철도, 도로, 주택, 의료 할것 없이 추가로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내가 이렇게 통일의 어려움을 열거했다고 해서 남북한의 통일을 바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남북 통일을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동시에 한국 정부와 관계자들이 어떻게 통일할까 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도 계획하고 생각하길 바란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글보낸이: 김 광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