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mw1.jpg

 

주 기도문 시비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으레 기독교계와 무신론자들 간에 공방전이 벌어진다. 기독교인들이 공공장소에 성탄트리나 아기예수 탄생모형을 설치하면 무신론자들이 그 옆에 “신은 죽었다” “종교는 마약이다” 등의 사인 판을 세워놓는다. 하지만 올해는 교계가 스스로 색다른 논쟁에 열중하고 있다. 그것도 예수 자신이 생전에 한 말을 둘러싸고 티격태격 한다.

 

논란의 불을 지핀 사람도 보통사람이 아니다. 기독교 총수인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더군다나 그가 새로 번역하자는 예수의 말도 보통 성경구절이 아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암송하는 ‘주기도문’(Lord‘s Prayer, 가톨릭은 ’주님의 기도‘, 성공회는 ’주의 기도‘)이다. 교황이 오랜 관습과 교리를 변경할 권한까지 갖고 있느냐는 논란도 함께 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한 인터뷰에서 주기도문(마태목음 6:9~13) 가운데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lead us not into temptation)”가 적절치 못한 번역이라며 그보다는 “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옵고(do not let us fall into temptation)”가 좋다고 말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으로 이끌지 않는다. 그건 사탄이 하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먀태복음 외에 누가복음(11:2~4)에도 간결하게 기록된 이 주기도문은 예수가 유명한 ’산상수훈‘ 설교에서 무리에게 가르친 ’샘플‘ 기도이다. 이들 복음서는 그리스어로 쓰였지만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의 통용어였던 아람어(히브리어의 방언)로 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성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면서 예수의 말도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됐을 가능성이 있다.

 

주기도문을 새로 번역하도록 프란치스코 교황이 칙령을 내리거나 정식 제의한 것도 아닌데 즉각 반발이 일고 있다. 보수 신학자들은 주기도문이 ’교황기도문이 아닌 주기도문‘이라며 “성경의 예수님 말씀대로 따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기독교 언론인은 오래 동안 모든 신자들의 머리에 깊이 각인돼온 기존 주기도문이 쉽게 고쳐질 것 같으냐며 비아냥했다.

 

한 신학자는 성경이 역설과 불가사의와 비유로 가득 차 있다며 이런 문구들을 손보면 성경이 지닌 성령의 능력이 훼손되므로 이해되지 않더라도 그대로 둬야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마태복음에 예수가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는 대목(4:1)을 들어 뒤의 기도문은 제자들만은 ’시험으로 인도하지‘ 말아달라는 뜻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

 

나도 비슷한 혼란을 경험했다. 오래 전 성경을 처음 접했을 때 고리타분한 어휘가 너무나 많아 짜증났다. 대저, 무릇, 궁창, 체휼, 열방, 인자, 보혜사, 가라사대, 후패, 청종, 복록, 궤사, 강퍅, 곤비, 허탄 등 요상한 단어들이 ’무시로‘ 눈에 띄었다. 왜 현대어로 고쳐지지 않느냐고 투정하자 고 임동선 목사님이 “성경은 ’일점일획‘도 교정할 수 없는 책”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주기도문도 웃겼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까지는 좋은데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이어진다. ’나라가‘가 아닌 ’나라이‘는 까마득한 고어 투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의 오늘날도 ’오늘‘이 맞다. 영어성경엔 단수인 ’this day‘로 돼 있다. ’오늘날‘은 하루단위의 날보다는 ’요즘‘ 또는 ’현대‘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가장 웃기는 대목은 마지막 부분의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이다. 처음엔 ’대개‘가 ’대체로‘ ’일반적으로‘라는 뜻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다. 그리스어 성경의 원어는 ’왜냐하면‘이라는 뜻이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다. 요즘 새 한글성경엔 ’대개‘가 빠졌다. 이 대목은 예수가 가르친 본래의 주기도문에 들어 있지도 않다. 후세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붙인 말이다.

 

대부분의 이민1세 신자들은 여전히 ’나라이…‘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라며 주기도문을 읊조린다. 나도 별 수 없다. 35년간 뇌리에 각인된 옛 주기도문을 쉽게 지울 수 없다. 사실, 뜻만 제대로 이해하면 성경문구(주기도문 포함)의 번역을 꼭 바꿀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성경이 새로 번역돼 나올 때마다 구입한다면 책값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을 터이다. 

 

<윤여춘 / 시애틀 /한국일보